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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김훈
  • 번역:
  • 출판사: 출판사/문학동네
  • 발행일: -
  • origin_title: -
  • 나의 평점:
  • 완독일: 2020-05-24 13:05:55

‘)< 회사와 아이들과 가정에서, 또 나의 삶을 살아 내는 ‘나’에 대해 이순신의 성품, 그를 둘러싼 환경에 굴하지 않고 도리를 다하는 그 성품, 백성을 아끼는 그 성품,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장군’을 길을 가는 그 성품을 보았다. 참으로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작은것에 , 환경에 불평하고 , 허약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이세상 그 누구도 완벽한 환경을 주지 않을것이다. 큰 자가 되자, 따라라도 해보자

너무 짧다!

김훈 작가의 글을 배워보고자 명문을 배우고, 이순신 장군을 알아보고자 읽었다 .글을 이렇게 멋지게 쓸수 있구나, 이런 글이 이런 감동을 주는구나, 역시나 내공이 필요하구나

.환경에 불평불만하는 나의 마음의 크기가 백성을 향하고 소명을 다하는 이순신 장군의 큰 심성앞에서 더더욱 초라해 진다. 어른의 기품을 본받고 싶다. 리더의 고뇌를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54   ….신의 몸이 아직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65 가장 확실하고 가장 절박하게 내 몸을 조여오는 그 거대한 적의의 근본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알수 없었으나, 내 적이 나와 나의 함대를 향해 창검과 총포를 겨누는 한 나는 내 적의 적이었다.  그것은 자명했다. **내 적에 의하여 자리매겨지는 나의 위치가 피할 수 없는 나의 자리였다 **

  🤔 내 자리가 어디이고 어떤 자리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67 _덕령은 섬군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다. 누가 능이 이자를 묶을 수 있겠는가?

     라면서 발을 굴렀다고 한다. 김덕령은 용맹했기 때문에 죽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75 …이제 수군을 폐하시면, 전하의 적들은 서해를 따라 충청 해안을 거쳐서 한강으로 들어가 전하에게로 갈 것이므로, 신은 멀리서 이것을 염려하는 바입니다.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그리고 나는 한 줄을 더 써서 글을 마쳤다.      ….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_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 대인은 다르다.  적은 50척이상 60척이상.. 아니 더많은 배를 가지고 있는것을 알았으나… 열두척!! 역시!!       🤔 300척이 넘는다!

141 임진년 싸움은 힘겨웠고 정유년의 싸움은 다급했다. 모든 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 개별적인 것이어서 ,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 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는다. 모든 전쟁은 처음하는듯 어려운 것이다.

144 _탑니다. 어서 드십시오       나는 먹었다. 김수철이 말했다.        _나으리의 몸이 수군의 몸입니다.        _그렇지 않다.수군의 몸이 나의 몸이다.

165 나를 죽이면 나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은 나를 풀어준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를  살려준 것은 결국은 적이었다. 살아서, 나는 다시 나를 살려준 적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은 뒤엉켜 있었다

203 나는 죽음을 죽음으로써 각오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각오되지 않는 죽음이 두려웠다.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두려웠다기보다는 죽어서 더 이상 이 무내용한 고통의 세상에 손댈 수 없되는 운명이 두려웠다…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278 진린(명나라 수장)은 철수하는 적의 배후에서, 먼바다에서 얼씬거리다가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진린은 적의 불가피한 철수를 이미 알고 함대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진린이 돌아가는 적의 뒤통수를 부술 리는 없었다.

진린은 적과 알맞은 거리에 떨어져서 전쟁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부스러기들을 이득으로 챙겨서 돌아갈 것이었다. 임금은 이 진린을 나에게 보내왔다

적의 인후 앞에서 나는 온 천지의 적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는, 이 세상의 손댈 수 없는 무내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숨죽여 울었다

🤔 이순신장군의 마음, 그를 둘러싼 고달푸고 힘겨운 환경들 속에서 숨죽여 우는 그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리더의 짐은 크고 깊다.

    이해 받으려고 하는 마음,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리더의 임무를 완수 할 수 없다. 이해하고 알아주는 위치로 바뀌어야 한다. 공동체 각 원들에 대해서.

317 (포위 망에 명군 진린은 뇌물을 받고 일본 연락선을 통과시켜주었다)…..이 자를 여기서 베어야 하나, 허리에 찬 칼이 천근의 무게로 늘어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진린의 선실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이 자를 베어버리면, 아마도 사직은 끝장이 나고, 전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 세계 전체를 적으로 맞아야 할 것이었다. 나는 겨우 말했다.

_이번 싸움에서,모든 수급을 장군께 바치리다 진린은 대답했다

_가는 적을 보내는 것은 병법의 이치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 아니오. 장수의 용기는 사졸의 용기와는 다른 것이오. 아시겠소, 통제공. 수급은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소.

🤔  위는 일본육군   남쪽은  일본의 수군들,  일본 육군을 광양에서 압박하는데 연락선이 도망쳐 수군을 불러모으면 이순신은  위아래서 앞박을 받는다. 명나라 진린은  오로지 전쟁의 성과만 챙기고, 일본 육군을 몰아주기로한 다른 명 육군은 약속을 어긴다.  애통하다!!

326 _관음포가 급하다. 관음포로 가자. 난간에 도열한 적들이, 일제히, 무더기로 쏘아댔다.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_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내 갑옷을 벗기면서 송희립은 울었다. _나으리 ,  총알은 깊지 않사옵니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 _북을 … 계속 … 울려라. 관음포 …… 멀었느냐? ….

세상의 끝이…. 이처럼….가볍고 ….. 또 ….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충무공 연보 을사년(1545년) 월 일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_소년시절 충남 아산으로 이주 _1576년 32세 식년무관에 급제하고 _함경도 국경에서 근무하던 초급 장교 시절 <함경도일기>라는 진중 일기를 남김 _1580년 36세 전라도 고흥 발포진의 수군 만호(종팔품) 부임, 최초로 수군의 초급 지휘관이 된다 _1586년 42세  종사품, _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큐슈의 시마즈 일가 타도. 일본의 모든 무력과 영지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1인 권력 밑으로 집결 _1590년 46세   이순신의 승진이 너무 빠르다는 핑계로 사간원은 모든 그의 부임을 반대한다 _1591년 47세  여수 좌수영에 부임, 좌수사는 독자적 작전수행 가능한 해역 사령관

_1592년 임진년 48세,  4월 13일 왜군이 처들어 온다(도요토미 히데요시) , 4/14 부산 함락,15일 동래성 함락, 19일 김해 함락,4/28일 조선 방어군 붕괴, 4/30일 임금은 서울버리고 의주로 향함, 5/2 서울 함락

  .옥포만 전투는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 최초의 승전, 이순신과 수군 장졸들은 해전 경험이 없었다.  적을 향해 돌격할 때 이순신은 “너희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너희는 태산과 같이 진중하라”’

  .5/29일 사천 선창에서 교준중 이순신 외편어께에 적탄을 맞았다. 총알은 관통되어 등으로 뚫고 나갔다   .7/6일 3차 출정 한산도해전 _1593년  49세 “행주대첩”, 8/1일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 전라,경상,충청의 수군을 총괄 지휘 사령관

_1597년 정유년 53세, 이순신 체포, 죄목은 군공을 날조, 임금기만,가토의 머리 바치라는 기동출격 명령 불응,  4/1 출옥해서 백의종군 시작, 혼자몸으로 남해안까지 간다, 백의종군길에 모친상

   .후임 원균이 참패    .7/23일 조정은 상중의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    .9/16일 명량전 대승  12척으로 우수영 발진, 적 330척,  33척 파괴되고 도주했다    .10/14일 충남아산에서  아들이면이 전사    .10/29 목표 고하도로 수군 진영 이동

_1598 무술년 54세 ,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11/19 철수하는 적의 주력을 노량 앞바다에서 맞아 싸우다 전사,  이싸움에서 적선 2백여척 격침, 50척 도주

이순신의 죽음은 전투가 끝난 뒤에 알려졌다. 통곡이 바다를 덮었다. 이날 전쟁은 끝났다 20200719_211800535.jpg (20200719_211800535.jpg) 20200719_211750399.jpg (20200719_211750399.jpg)

🤔 회사와 아이들과 가정에서, 또 나의 삶을 살아 내는 ‘나’에 대해  이순신의 성품, 그를 둘러싼 환경에 굴하지 않고 도리를 다하는 그 성품, 백성을 아끼는 그 성품, 요행을 바라지 않고 ‘장군’을 길을 가는 그 성품을 보았다. 참으로 나의 모습이 부끄럽다. 작은것에 , 환경에 불평하고 , 허약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이세상 그 누구도 완벽한 환경을 주지 않을것이다.  큰 자가 되자, 따라라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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