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한홍구
- 번역:
- 출판사: 출판사/한겨레출판
- 발행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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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평점:
- 완독일: 2020-07-05 22:45:25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박정희의 그림자. 수구세력, 뉴라이트, 그리고 일본 극우파와 야스쿠니 신사참배, 국가의 신은 될지언정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없는 야스쿠니의 혼령들. 일본 위안부 문제를 흑탕물로 바꾸는 더러운 수구세력들 , 그리고 탄핵. 간첩은 우리나라 근대서의 중요한 정치적 상황에 구원투수로 등장하며 어떤 자들의 승진과 휴가와 보너스를 제공해 주웠다. 한국의 군대는 아직도 육탄전을 대비하는가 70만군이 현대전에서 유횽한것인가, 그렇게 많은 군인을 인권유린되도록 방치하는 대한민국 국군은 누구를 위한 군인들이 필요한 것인가.
22 반면, 정통성 있는 정부를 총칼로 뒤업고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일단 급전이 필요했다. 조건은 상관없었다. 정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급전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민족의 역사도, 피해 당사자인 개인의 권리도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독도 문제가 한.일협상의 걸림돌이 되자 김종필이 “그까짓 바위섬 폭파시켜버리자"고 망언을 한것도 정통성 없는 정권의 주역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이 없다. 그래서 돈이 필요했고, 민족의 역사의 상처를 몇푼에 팔아버렸다, 이완용과 다를게 무엇인가?
73 뉴라이트 마냥 남의 등에 칼을 꽂아야 행동하는 보수 지성으로 찬양을 받는 세상이니, 등 뒤에 칼 꽂는 짓 대신 정책과 대안으로 승부를 해보려는 차분한 보수 지식인들이야 어디에 설 수 있을까?
사상과 이념을 절대화하지 말라. 어디 전태일이 사상이나 이념 때문에 우리 가슴속에 살아 있는 것일까? 🤔 우리 인간사에서 절대화는 설자리가 없다. 그것으로 인한 상처와 분열 그리고 원한만 증폭되어 후대에 전해질 뿐이다
77 60년 만의 대청소가 두려운가 _진정한 과거 청산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 해방 뒤 거꾸로 청산당한 역사 이민족의 강제 점령과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그에 뒤이은 분단과 전쟁 엄청난 규모의 민간인 학살과 군사반란 그리고 정신없이 빠른 경제 성장과 치열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참으로 울퉁불퉁했던 역사를 살아내면서
우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과거 청산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청산해야 할 과거의 만물상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게되었다
🤔 2020년 현재 대한민국 땅은 아직도 수구세력의 영향권에 있다. “빨갱이"가 판쳐 나라를 망가트린다 떠들어 대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린다
그들이 버젖이 그들만의 그룹에서 강성화 되고 살아 남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관련된 일만 하더라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친일 청산의 문제가 있는가 하면, 강제 연행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처럼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가 있다.
해방 뒤에도 4.3이나 민간인 학살, 의문사처럼 한국 정부가 기본적인 책임을 져야 할 문제가 있고..
84 과거 청산에서…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진상 규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상 규명 없이 명예 회복이나 배상, 보상에만 매달린 경우가 많았다. 진상 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개인 안에서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그리고 국가와 사회, 국가와 개인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85 악질 친일파들은 빨갱이들이 자신들과 같이 진짜 애국자이자 반공투사들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몬다면서 “친일파를 처단하자고 주장하는 자들이 진짜 빨갱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악질 친일파가 승리의 노래를 구가하는 세상에서는 자신의 작은 친일해위를 고백하고 사죄하는 일조차 어쩌면 빨갱이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236 가슴 아픈 일이지만,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국가의 이름으로 엄청난 폭력을 휘둘렀고, 그 피해자는 너무나 많다. 전쟁을 치르지 않았는데도 한국의 군대는 1980년대부터 1995년까지 이라크 전쟁의 미군 사망자 수의 아홉 배나 되는 사망자를 냈다.
멀쩡한 목숨이 3년마다 1개 연대씩 전쟁을 치르지도 않고 사라졌다. 허원근 일병 사건처럼 수천 건의 죽음이 의믄에 싸여 있으나, 의문사위가 다룰 수 있는 ‘의문사’란 오로지 민주화운동 관련 의문사뿐이다.
민주화운동의 근처라도 갔던 사람들에게 정말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그리고 당신들이 했던 민주화운동이란 것이 과연 민주화운동 관련자의 죽음과 관련이 없는 죽음을 차별할 만큼 잘난 것이었는가를.
한 인간이 자신의 자손심과 존엄을 지키고자 발버둥치다가 스러져간 그런 죽음 앞에서 좀더 겸허해질 수 없는 것일까? 국민의 정서상 간첩들의 행위를 민주화운동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사람들이여, 뒤돌아보자. 6월항쟁 같은 정말 짜릿했던 순간을 빼고, 언제 민주화운동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적이 있는가를.
259 김일성을 한국전쟁의 ‘전법’으로 규탄하는 일은 친일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탈출구였다. 그들에게 모든 역사는 1950년 6월 25일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 우리가 왜 분단됐는지,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누가 일제의 앞잡이였고, 누가 항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이 찾아왔는지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처음 군대를 동원한 자가 모두 뒤집어쓰는 그런 게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사상자들, 특히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이 누구 손에 죽었는가도 상관이 없었다.
301 한국전쟁 때도 인해전술을 쓰는 중국군을 상대로 20만 조금 넘는 군대를 운용한 한국 땅에서, 경제력에서 우리의 30분의 1, 인구에서 우리의 2분의 1에 불과한 이북을 상대로 과연 69만 대군을 운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