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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김훈
  • 번역:
  • 출판사: 출판사/문학동네
  • 발행일: 2022-08-03
  • origin_title: -
  • 나의 평점: 10
  • 완독일: 2022-08-11 00:00:00

tags: #_독서록/2022년 #역사 #안중근 #한국소설

하얼빈

Sub title: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Issue date: 2022년 8월 3일

#저자/김훈 #출판사/문학동네

2.질문 (책 읽전에 먼저 작성할 것)

4. 내생각

  • 나는 삶을 잘 살고 있나. 2022-08-15 광복절 의미를 돌아보며 이 책을 읽었다.
  • 자신의 삶을 버리고, 자신의 가족과 처/자식 삶까지 담보로 한 거사, 그 결심과 신념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 나라를 위한 위인의 큰 마음. 그 마음에 보답하는 것은 내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내며, 나라와 민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일 것이다.
  • 그보다 먼저 그 선조들의 마음을, 최소한 그들의 이름 석자를 불러 기억하려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 아직도 이땅에, 저 권력의 자리에 앉은 자들이 부끄럼움 내던지고 자신의 허물을 덥기위해,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의 뿌리를 흔드는 정치인들이 드글한 이 세태가 한탄 스럽다.
  • 1백년, 1세기가 지나도 우리는 아직도 그 시절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구나

오늘 네가 잘 왔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 내 삶을 돌아본다. 31살의 청년이 지키고자 했던 신념, 죽음이 두렵지 않음을, 거사이후의 것들을 준비하지 않고 온전히 마낀 안중근, 우덕순의 태도에서 나는 무엇을 본받을 것인가.

  • 내게 주어진 삶을 어영부영 살지 말자. 게으른자에게 가난은 도둑같이 임한다

  • 안중근의 자녀들이 이토 사건에 사과한 상황이 억장이 무너진다.

    • 그들을 비난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짊어졌을 삶의 무게 말이다. 어떠한 무게였기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 나라의 국력이 약하여 일개 개인이 그 짊을 지게 만드는 구나.
  • 종교의 및낱도 적날하다.

    • 뮈텔 명동대성당 주교의 생각 구조는 철저히 세속적이고 이해타산적이다.
    • 안중근에게 자신의 삶을 하나님뜻으로 덮으려 하지 말하지만, 본인들의 행동은 더 하다.
    • 더러운 것으로 지켜진 성당,교회가 과연 부끄러움 없는 생명을 낳는게 가능한가.
    • 뮈텔,빌렘 신부!!

5.책 밑줄 정리 (책 밑줄 전체,page)

![Pasted image 20220815203228.png](Pasted image 20220815203228.png)

  • 안태훈 - 조마리아

    • 안중근
    • 안정근
    • 안공근
  • 안중근 - 김아려 - (김홍섭 아버지)

    • 안 현생
    • 안 분도
    • 안 준생
  • 우덕순 - 거사 동기,

  • 이석산

  • 김성백

  • 정대호

  • 발렘신부,

26 안태훈(아버지)의 죽음앞에서 안중근은 친숙했 한 세상이 끝났으며, 적의에 찬 시간 앞에 홀로 서 있음을 느꼈다.

30 발렘이 손가락에 성수를 찍어서 아이의 이마를 적셨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신부를 올려다보았다. 안중근 도마와 김아려 아그네스는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했다.

73 여기는 이미 이토의 땅이다. 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살길을 찾아가겠다. 이것은 벌레나 짐승이나 사람이 다 마찬가지다.이것이 장자의 길이다. 안정근은 형이 의논하러 온 것이 아니고 통고하러 온 것임을…

178 한국 황실은 불령한 신민 한 명이 잘못 태어나서 저지른 죄업을 일본 황실에 거듭사죄했다. 뮈텔은 이 황급한 사죄에서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지 않으려는 한국 황실의 두려움을 읽었다.

265 (면회온 안공근에게)

  • 오늘 네가 잘 왔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작가의말 …안중근을 그의 시대 안에 가두어놓을 수는 없다. ‘무직’ 이며 ‘포수’인 안중근은 약육강식하는 인간세의 운명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안중근은 말하고 또 말한다. 안중근의 총은 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사진

출처 : https://mania.kr/g2/bbs/board.php?bo_table=freetalk&wr_id=2756685 추가 사진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275482

![Pasted image 20220815110012.png](Pasted image 20220815110012.png)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을 결심하고 동지인 우덕순(가운데), 유동하와 함께 하얼빈에 도착한 다음날인 1909년 10월 23일 아침에 3인이 이발 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중국인 사진관에서 기념 촬영한 것

![Pasted image 20220815110059.png](Pasted image 20220815110059.png)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체포되어, 그 당시의 옷차림대로 촬영한 사진

![Pasted image 20220815110606.png](Pasted image 20220815110606.png) 안중근이 하얼빈 일본 영사관 구치소에 수감되었을 때 촬영한 것으로, 쇠사슬에 묶이고 족쇄가 채워진 전신사진

![Pasted image 20220815110546.png](Pasted image 20220815110546.png) 여순(뤼순) 감옥에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명찰을 가슴에 붙이고 단지한 손가락이 잘 보이게 가슴 가까이 얹은 모습으로 촬영된 사진입니다

![Pasted image 20220815110524.png](Pasted image 20220815110524.png)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감옥에서 초췌한 모습으로 단지한 손이 잘 보이게 가슴에 얹고 찍은 사진입니다.

![Pasted image 20220815110351.png](Pasted image 20220815110351.png) 안중근이 옥중에서 일본 간수들의 입회 아래 두 아우 정근과 공근을 면회하는 사진입니다. 1910년 3월 9일에 촬영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Pasted image 20220815110428.png](Pasted image 20220815110428.png) 1910년 3월 26일, 흰색의 두루마기와 검은 바지를 입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장면입니다. 어떠한 초조한 기색도 보이지 않습니다.

![Pasted image 20220815110501.png](Pasted image 20220815110501.png) 사형장으로 향하는 최후의 모습입니다. 동양평화론이라는 저서를 완성하기 위해 형집행을 보름만 늦춰달라는 안중근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출처: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22/03/260942/

![Pasted image 20220815155908.png](Pasted image 20220815155908.png)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안중근 의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 옆에 큰아들 분도(오른쪽)가 서있고, 작은아들 준생이 무릎에 안겨있다. 사진 제공 = 삼성문화재단

6.연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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