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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재판정 참관기

☝️동아시아의 흐름과 일본의 야망을 간파한 안중근 의사,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은 민족과 아시아의 공존을 보고있는가. 자신의 계좌를 보고 있는가.

[!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김흥식
  • 번역:
  • 출판사: 출판사/서해문집
  • 발행일: 2015-08-14
  • origin_title: -
  • 나의 평점: 9
  • 완독일: 2024-02-27 00:00:00

안중근의 재판정 참관기

1. Befor Qustion

  • RHC 독서모임 3월 도서
  • 하일빈 책과 같이 기억하면 좋을 듯해서 선택했다.

2. Synopsis (개요)

2.1 저자 - 김흥식

엮은이 김흥식은 어려서부터 한문과 역사가 주는 즐거움에 빠져 온갖 고전과 역사 지식을 두루 섭렵했다. 그 결과 우리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은 ‘오래된 책방’ 시리즈를 비롯해 ‘서해클래식’ 등을 기획, 출간했다. 그를 저자로서 유명하게 만들어 준 작품은 《세상의 모든 지식》이다. 책을 좋아하는 자신의 독서편력을 바탕으로 정말 자신을 깜짝 놀라게 했던 지식을 모아 만든 이 책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외에도 우리말 우리글의 5천년 쟁투사를 다룬 《한글전쟁》과 한국인이 알아야 할 지식을 총망라한 《한국의 모든 지식》을 썼고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 2, 3》 외 다수의 책을 기획했다. 유성룡이 쓴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징비록》을 번역했으며 조선 선비들의 눈에 비친 동물 이야기 《조선동물기》를 엮었다.

2.2 주제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반경

하얼빈역에 울려 퍼진 세 발의 총 소리. 일본 초대 총리이자 제1대 대한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가 괴한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하얼빈 의거였다.

이토에게 총을 겨눈 안중근 의사는 현장에서 바로 붙잡혀 뤼순감옥에 수감되었고 뤼순관동법원 재판정에서 여섯 번의 공판을 받는다.

2.3 기획 및 지필 의도

2.4 주요 등장 인물

공판 기록 속 
안응칠은 안중근, 
우연준은 우덕순, 
류강로는 유동하
로 표기했다.

2.5 전체 줄거리

3. After My Idea

3.1 Insight

3.2 After Qustion

  • (why)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 (how)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 (where) 어느 곳에서 쓴 책인가? 어느 것을 위해 쓴건인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디에서 읽어야 하나? 그곳은 어떤 곳인가?

  • (when) 이책은 언제 쓰여졌는가?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언제를 기준으로 쓰였는가? 언제 할것인가?

  • (who) 저자는 누구인가?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 누구를 위해 저자는 말하는가?

  • (why) 이책을 통한 질문을 만들기

    • 질문 1.
    • 질문 2.
  • (what)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라는 무엇?

    • 알게된 것은 무엇인가?
    • 해야할건 먼가?
    •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먼가?
    • 이 책의 특징은 먼가?

3.3 Top 3 Highlight

우리 나라의 외교는 매우 중요하다. 역사를 묻으려는 자들과 싸우는 힘겨운 서민들, 거대한 지배층에 서민들은 아직도 , 역사 자체를 잊고 살아가며, 고통속에 살고 있다. 그 고통을 다른 서민을 밟고 올라서 , 자신도 기득권 행세를 하려는 탐욕으로 불탄다 대한민국의 수준은 아직 몇 세대는 지나야 될것 처럼 답답하다. 아무리 빠른 경제성장을 했다고 하지만, 우리의 역사와 민족을 위한 철학적 문화적 기반이 너무나 부족하다. 아직도 , 우리는 기득권의 영향력 아래 방황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 대한민국은 갈길이 멀다.

일본은 미국 등과 힘을 합처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한다 미국은 100년 전에 그러했듯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일본을 지원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견제에 나서고

2024년 대한민국은 건국전쟁의 이념 전쟁이 다시 올라오고 이승만을 추켜새우는 이승만의 후예들이 기세가 커져간다. 기독교를 등에 업은 이승만, 참 풀기 어려운 문제를 무기로 가졌다.

4. Key Word 책에서 뽑은 키워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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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책 밑줄 정리 (책 밑줄 전체,page)


#형사재판 은 형법刑法, 즉 어떠한 행위가 범죄인지, 
그리고 그러한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규정한 법을 위반한 사람을 재판하는 것이다. 

검찰만이 도둑을 대상으로 재판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기소독점주의’라고 하는데, 
형사사건의 #피의자 (범죄 혐의를 받아 수사기관에 의해 수사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공소 (검사가 특정 형사사건에 대해 법원의 재판을 구하는 신청) 제기 권한은 #검사 에게만 있다는 원칙이다.

#민사 재판은 개인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옳고 그름을 법원이 판단해 주는 재판을 가리킨다. 
민사재판에서는  법원에 대하여 권리보호를 요구하는 #원고, 
그리고 고소를 당한 #피고 
모두 개인(법인, 즉 단체나 회사 등도 가능한데, 국가가 관여하지는 않는다.)이 된다.


재판정에서는 법원을 대표하는 판사, 원고, 피고, 그리고 변호사만이 발언할 수 있다. 그 외에 재판에 반드시 필요한 증인의 경우에는 판사의 허락을 받아 발언할 수 있다.
형사사건에서는 피고 측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데, 이는 원고인 검사가 법률 전문가이므로 또 다른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를 변호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의 가족은 한국인 변호사를 선임했으며, 외국인 변호사들 또한 자발적으로 안중근 의사를 변호하기 위해 법원에 직접 변호를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모두 거절하고 자신들이 선발한 일본인 국선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겼다.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강력하게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의자 를 재판에 넘기는 일, 즉 공소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이 역할을 재판 전에 담당하는 이가 바로 검사다. 
그래서 검사는 재판이 있기 전 피의자 신문訊問을 통해 범죄 사실도 확인하고 증거도 수집함으로써 피의자의 범죄 사실을 법원에서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피의자 신문을 통해 범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면 
검사는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는데, 이때부터 피의자는 ‘피고’가 된다.


왜 안중근 의사는 남은 재판을 포기하고 순순히 사형 판결을 받아들였을까?
안중근 의사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목숨을 살려 달라고 구걸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하여 전 세계에 한국인의 기상을 높이고 일본의 침략과 만행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이미 달성하였다

2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가 안 의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앞서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어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재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3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을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새로이 생각한 것인가? 안  3년 전부터 품고 있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행동은 내가 한국의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역에서 독립전쟁을 일으켜 이토를 죽인 것이기 때문에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를 전쟁포로로 취급을 해야 함에도 한낱 살인자로 여기며 피고인 취급을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재: 만약 거사가 성공하면 그 자리에서 자결할 결심을 하지는 않았는가? 안: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지 이토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  그대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으니 그 자리에서 잡히지 않고 도망칠 계책을 세웠겠지? 안  도망칠 까닭이 없다. 이토를 죽이는 것은 오로지 한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함인데, 뭐가 그릇된 일인가? 그러니 도주할 필요도 없다.


재  그대 왼손 두 번째 손가락인 약지의 절반이 없는 까닭이 무엇인가? -약지:다섯 손가락 가운데 둘째 손가락. 쉽게 약손가락이라고 한다. 안  올봄에 여러 동지들과 모여 동양 평화를 이룰 때까지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손가락을 잘라 서약했기 때문이다.


재  한국 국기에 손가락을 자른 직후 흐르는 피로 ‘독립’이라는 글자를 썼다고 하던데, 그런 적이 있는가? 안  ‘대한독립’이라고 썼다.

재  그때 작성한 취지서와 국기는 지금 어디 있는가? 안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재  그렇게 서약을 할 정도였다면 이번 거사도 그들과 상의했거나 미리 알려 주었을 거라고 판단되는데, 어떤가? 안  서약을 한 후 사방으로 흩어졌기 때문에 알리고 싶어도 알릴 수 없었다. 또 나도 그럴 틈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는 열차가 아침 6시에 채가구역에 도착한다면 너무 이른 시간이라 이토가 열차에서 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일을 대비하여 안 의사는 채가구역 구내 다방에서 우덕순에게 총알 몇 개를 건네주고 우덕순은 채가구에, 안 의사 자신은 하얼빈으로 이동해 대기하였다

  • 만약 이토가 재가구역에 내렸다면, 우덕순에 의해 처형다했을까.

변호사 …더욱이 한국인은 일본의 한국인에 대한 지원과 보호가 공평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서도 유례가 없는 극형을 피고에게 내린다면, 한국인들은 의문과 아울러 분노를 품게 될 게 분명해 오히려 이러한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시 안중근의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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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가  / 안중근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시함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천하를 웅시함이여 어느 날에 업적을 이룰까.
동풍이 점차 차지니 장사의 의기가 뜨겁도다.
분개해 한 번 가니 반드시 목적을 이루리로다.
쥐도적 이등이여 어찌 즐겨 목숨을 비길고
어찌 이 지경에 이를 줄을 알았으리오 시세가 굳었도다.
동포 동포여 속이 대업을 이룰지어다.
만세 만세여, 대한독립이로다.
만세 만세여, 대한 동포로다.

우덕순의 자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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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가  / 우덕순

만났구나 만났구나 원수의 너를 만났구나.
평생 한 번 만나기가 왜 그렇게도 늦었던가.
너를 한 번 만나려고 물로 땅으로 몇 만 리에
천신만고를 다해 윤선 기차를 갈아타고
러시아 청나라 지날 때에
행장 검사할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에게도 경배하며 보살피소서 도우소서.
동쪽 반도 대한제국을 보살피소서.
원컨대 내 뜻을 도와주소서.
그 간악한 늙은 도적놈이
우리와 우리 민족 이천만 멸종 후에
삼천리 금수강산을 소리 없이 빼앗으려고
흉계를 꾸미고 악을 꾸며 참담한 수단으로
열 개 강국을 속여 가며 내장을 다 뽑아먹고도
무엇이 부족하여 그 욕망을 채우려고
쥐새끼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누그를 또 속이고 누구의 땅을 또 빼앗으로고
그같이 뛰어다니는 교활한 늙은 도적을 만나고자
이와 같이 급히 가고 있으니
지공무사하옵시고
지인지애 우리 상주님
대한민족 이천만민을
다 같이 불쌍히 여기시어
도적놈을 만나보게 하옵소서.
그렇게 정거장에 천만 번 기도 올리고
주야를 잊고 만나려던 이토를 마침내 만났구나.
네 수단의 간교함은 세계에 유명하여
우리 동포 도륙 후에 우리 강산 빼앗기고
행락 함께 못한 것을
오늘에 이르러서야 네 목숨이 내 손에 끊긴다면
너 역시 생각이 없으리라
갑오년 독립과 을사년 신조약 후
양양자득 할 때에 오늘 일을 몰랐더냐
범하는 자는 죄를 짓고 덕을 닦으면 덕이 온다.
너도 이리 될 줄 알았느냐.
너 같은 무리 사천만은 이제부터 한 사람이 두 사람씩
우리들 손으로 죽이리라.
오호, 우리 동포들아 일심단결로 왜구를 모두 멸하여
우리 국권 회복하고 부국강민을 도모하면
세계 안에 뉘 있어서 우리 자유 압박하고
하등으로 냉대할 수 있으랴.
자! 일어서라! 빨리 합심하여
그들 무리도 이토와 같이 자, 빨리 죽일 뿐
우리가 우리 일을 하지 않고
아무 일 하지 않고 평안히 앉아 있다면
국권회복은 스스로 될 수 없으리라.
자! 일어서자! 용감한 힘을 갖자!
국민된 의무를 다하여 보자!

최후진술

우  오늘에 와서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한두 가지만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이번에 거사한 것은 일본과 한국 사이에 장벽이 하나 있어, 이 장벽을 없애기 위해 행한 것이니 앞으로는 일본 천황이 내린 선전조칙의 뜻에 따라 한국인을 일본인과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해 주고 또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해 달라는 것이다.

안 …다시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이토를 죽인 것은 그가 동양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이기 때문에 의병 참모중장 자격으로 한 일이다. 결코 일개 자객이 저지른 일이 아니란 말이다. 내 희망은 일본 천황의 뜻과 같이 동양 평화를 실현하고, 나아가 오대양 육대주에까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내가 잘못했고 죄를 저질렀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밸런타인데이로 우리에게 익숙한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이다. 1910년 2월 14일 중국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2월 7일부터 2월 14일까지 겨우 일주일 동안 여섯 번의 졸속 공판을 치르고 각본대로 끝내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은 일본제국주의가 극에 이른 시점이자 한국 독립운동이 가열차게 시작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로만 기억되기에는 안타까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기념일이다.


안중근 의사는 책 집필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사형 집행을 미뤄 줄 것을 요구하였지만 일본은 책 집필을 마치기 전에 사형을 집행하였고, 《동양평화론》은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동양평화론》에는 한·중·일 간 평화회의 조직과 국제분쟁지역인 뤼순항의 중립화, 공동은행 설립과 공동화폐 발행, 평화유지군 창설 등에 관한 제안이 담겨 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 여전히 평화와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동아시아의 현실을 떠올리면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당시 얼마나 진보적인 구상이었는지 알 수 있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오전 9시에 뤼순감옥 사형장으로 끌려가 한 시간 뒤인 오전 10시에 순국했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이 민중들에게 공개되면 그곳이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묻힌 곳을 끝까지 비밀에 부쳤다.

지금까지 유해가 묻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이유다.


한국 근대사와 맞물린 안중근 의사의 파란 많은 삶

대한제국 국권 피탈 과정

  • [강화도조약 1876년](강화도조약 1876년)
  • [아관파천 1896년](아관파천 1896년)
  • [러일전쟁 1904년](러일전쟁 1904년) 한일의정서, 제1차 한일협약
  • [을사늑약 1905년](을사늑약 1905년) 제2차 한일협약
  • [정미7조약 1907년](정미7조약 1907년)
  • [스티븐슨 저격사건 1908년](스티븐슨 저격사건 1908년)
  • [한일병합조약 1910년](한일병합조약 1910년)
  • #1910년 2월 14일 중국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

#1876년 강화도조약.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부 안태훈 모 백천조 씨 사이에서 출생.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16세에 김아려와 혼인. 김구와의 첫 만남. 동학농민운동 전국적으로 확산. 갑오개혁. 청일전쟁 발발.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발생. #1896년 부친 안태훈이 천주교에 입교. 고종황제 아관파천. #1897년 19세에 천주교에 입교. #1898년1904년 천주교 전교 사업. 천주교대학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불발.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1905년1905년 러일전쟁 발발. 을사늑약 체결. 부친 안태훈 사망. #1906년 삼흥학교, 돈의학교 운영. 서북학회 가입. #1907년 석탄회사를 설립했으나, 같은 해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만주로 망명. 정미7조약 체결. #1908년 대한의병 참모중장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 #1909년 동지 11명과 단지동맹 결성. 1909년 10월 20일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우덕순과 함께 비밀리에 논의. 1909년 10월 21일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으로 출발. 1909년 10월 24일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채가구역으로 이동. 1909년 10월 25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으로 귀환.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 저격・체포. 1910년 2월 14일 일본 재판부,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 선고. 1910년 3월 15일 《안응칠역사》 탈고. 《동양평화론》 미완.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뤼순감옥에서 순국. 1910년 한일합병.


3. 연관 문서

  • 하얼빈 에서 이야기가 재판정의 흐름을 따른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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