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제러미_애덜먼
- 번역: 번역/김승진
- 출판사: 출판사/부키
- 발행일: 2020-11-30
- origin_title: Worldly Philosopher- The Odyssey of Albert O. Hirschman (2013년)
- 나의 평점: 10
- 완독일: 2024-03-05 00:00:00
앨버트 허시먼

1. Befor Qu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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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역사를 살아낸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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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듣는 분이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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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를 한개인의 삶을 통해 체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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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에 대한 특징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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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사이트-어떤?- 가 크다느누독서클럽장의 추천이 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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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읽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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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님. 나는 의사다에서도 만났던것 같은… 기자분 얼굴첵 포스트 보고 찾아들어오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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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이라는 단어가 주는 매력에 끌림
- 벽돌책을 읽고 깊이있는 이해까지는 못하는 실력이지만
- 벽돌책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 그래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생기고 도전을 한다.2024-03-07
2. Synopsis (개요)
2.1 저자 - 제러미 애덜먼
Jeremy Adelman 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같은 대학교 글로벌역사연구소 소장이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역사학 학과장, 국제교육연구협의회 의장, 라틴아메리카연구프로그램 책임자를 역임했다. 전문 연구 분야는 라틴아메리카사와 세계사다. 토론토대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정경대학교에서 경제사로 석사 학위를,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현대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르헨티나의 토르콰토 디텔라 연구소, 영국의 에식스대학교 등을 거쳐 1992년부터 프린스턴대학교에 재직 중이다.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파리정치대학,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방문연구원 및 방문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변경 개발: 아르헨티나와 캐나다 밀 생산지의 토지, 노동, 자본(Frontier Development: Land, Labour, and Capital on the Wheatlands of Argentina and Canada)》 《자본의 공화국: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대서양 세계의 법적 변화(Republic of Capital: Buenos Aires and the Legal Transformation of the Atlantic World)》 《이베리아-대서양 시기의 주권과 혁명(Sovereignty and Revolution in the Iberian Atlantic)》 《함께하는 세계, 분열하는 세계(Worlds Together, Worlds Apart)》(공저) 등이 있다. 존 사이먼 구겐하임 메모리얼 펠로십과 미국학술단체협의회의 프레더릭 버크하트 펠로십을 수상했다.
2.2 주제
- 실요적 이상주의자가 어떤과정을 거쳐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탐색한 책이다. 20
2.3 기획 및 지필 의도
2.4 주요 등장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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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및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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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4월 7일 독일 베를린 출생 , 허먼,앨버트,히르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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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카를(칼) 허시만 (Carl Hirschmann) - 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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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헤트비히 (헤드비그) 마르쿠제 허시만 (Hedwig Marcuse Hirschmann) , 헤다
- 첫번째 결혼 - 중매로 만난 히르슈만 - 뉘른베르크의 변호사
- 두번째 결혼을 칼 허시만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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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우르술라 허시만 (Ursula Hirsch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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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 에바 허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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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사라(새러) 허시만 (Sarah Hirschman)과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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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제니오 콜로르니 - 이탈리아 철학자 , 허시먼는 이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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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리니 스라파 영국에서 허시먼과 만남, 에우제니오의 사촌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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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드 몽테뉴 ,
- 모든 것을 관찰자의 탐색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지식의 ‘절대적’인 형태적이지 않다는 생각들
- 경구와 인용문을 모으는 몽테뉴, 허시만도 모은다
- 몽테뉴에 대한 책 <어떻게 살것인가>
2.5 전체 줄거리
2.5.1 연보
1915년:
- 4월 7일: 독일 베를린에서 출생
- 아버지: 칼 허시만 (Carl Hirschmann) - 외과 의사
- 어머니: 헤드비그 마르쿠제 허시만 (Hedwig Marcuse Hirschmann)
-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
1915년 4월 7일 독일 베를린의 중상류층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혁명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
1931년 사회주의 노동자 청년단SA 가입, 반나치 활동 참가. 1932년 프란최지셔스 김나지움 졸업. 베를린대학 법학부 입학. 1933년 아버지 카를 사망. 나치당 집권 후 파리로 도피. [히틀러 나치당](히틀러 나치당)
- 파리경영대학HEC 입학 1935년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수학. 1936년 에스파냐내전 참전.
- 누나 우르줄라가 사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로 이주해 매형(에우제니오 콜로 르니)의 저항운동에 가담하는 한편
- 트리에스테대 학 통계연구소에서 연구 활동.
1938년 트리에스테대학에서 라우레아 학위(나중에 박사 학위가 됨) 취득.
- 이탈리아의 유대인 탄압이 심해 지면서 파리로 다시 이주.
1939년 독일의 프랑스 침공. 프랑스군 입대. 1940년 ‘알베르 에르망’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마르세유 에서 유대인들의 유럽 탈출 지원.
1941년 유럽을 탈출해 미국으로 이주.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에서 연구. 새러 샤피로와 결혼.
1943년 미군 입대. 전략사무국oss 배속.
1944년 북아프리카 및 이탈리아에서 통역병으로 복무(~1945).
- 첫딸 카티아 출생.
1945년 《국가권력과 교역 구조》 출간.
1946년 미군에서 전역. 둘째딸 리사 출생.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근무.
1947년 경제협조처로 파견되어 마셜 플랜 입안에 필요한 연구 활동 수행(~1951).
1952년 세계은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콜롬비아 경제개발과 관련한 국가계획위원회 자문관으로 근 무(~1954).
- 콜롬비아 보고타로 이주.
1954년 보고타에서 민간 경제 컨설턴트로 활동.
1956년 예일대학 방문교수(~1958). 어머니 헤트비히 사망.
저서들
1958년 랜드코퍼레이션 방문연구원. 컬럼비아대학 교수(~1964). 《경제발전 전략》 출간. 1960년 보고타에서 현장연구(~1962)
1961년 《라틴아메리카의 사안들》 출간, 1963년 《진보를 향한 여정》 출간 1964년 하버드대학 교수(~1974). 1967년 《개발 프로젝트 현장》 출간. 1968년 스탠퍼드대학 방문 거주연구원(~1969).
1970년 《이탈, 발언, 충성심》 출간. 1971년 《희망으로의 편향》 출간.
1972년 프린스턴대학 고등연구소 방문연구원(~1973).
1973년 사회과학연구위원회sSRC 산하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위한 합동위원회 위원장.
1974년 프린스턴대학 고등연구소 종신연구원(~1985). 1977년 《정념과 이해관계》 출간 1978년 럿거스대학 명예박사.
1980년 프랭크 E. 시드먼 상 수상.
1981년 《금지된 경계를 넘어서》 출간. 1982년 《참여의 시계추 운동》 출간. 1983년 탤컷 파슨스 상 수상. 1984년 《집단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출간.
1986년 남캘리포니아대학 명예박사. 칼만 실버트 상 수
3. After My Idea
3.1 Insight
🎙️ 미셸 드 몽테뉴 우리가 이성과 교육의 힘를 아무리 강하게 믿고 있을 때라도, 그것이 우리를 행동에 나서게 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이성과 교육에 더해 체험과 경험으로도 정신을 훈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동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우리의 정신은 미적대고만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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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현상의 ,혁명의, 이데올로기의 극단 말고, 중도의 위치에서 실천 가능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몸소 실현하려한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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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간의 흑역사, 암흑기를 역사를 온몬으로 살아낸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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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피하고자 하고, 자유주의-사회주의, 정치-경제등으로 이분화 하고 극단화 하는것을 싫어한 허시먼, 어떤 일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하는 모습과 중도를 지키고, 가교 역할을 중시하려 했던 모습이 , 내 가치관하고도 맞아서 좋았다.
3.2 After Qu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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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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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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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어느 곳에서 쓴 책인가? 어느 것을 위해 쓴건인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디에서 읽어야 하나? 그곳은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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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이책은 언제 쓰여졌는가?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언제를 기준으로 쓰였는가? 언제 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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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저자는 누구인가?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 누구를 위해 저자는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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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이책을 통한 질문을 만들기
- 질문 1.
- 질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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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라는 무엇?
- 알게된 것은 무엇인가?
- 해야할건 먼가?
-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먼가?
- 이 책의 특징은 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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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왜 그의 책이나 주장에 대해서 자신이 걸어온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까?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그의 생각에 기반이 되었지만 그것을 외부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상처였을까? 조금더 대중적 호소를 위해서 였을까?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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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도그마 - 실용적이지 않은 정책과 생각,행동을 억지로 추구는 행태는 싫다. 좌우 양극단으로 , 흑백과, 선악의 극단을 치닫게 하는 이데올로기들을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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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인 , 좌우가, 흑백이, 선악이 서로를 견재하며 중도를 걷는, 그런 실용적이고 자유로운 실제 행동을 수반한 생각들이 중요하다고, 허시먼에게 공감한다 (1100)
3.3 Top 3 Highlight
49 허시먼의 이야기는 - 개인사의 형태를 취한 한 시대의 기억이고, 실망에서 희망을, 긴장에서 해법을, 불확설성에서 자유를 발견하는 새로운 사회과학의 이야기이며 - 지식인들이 겸손하면서도 대담한 태도로 #관찰 할 때 더 잘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들의 원천으로서 -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문학적 스타일의 이야기 이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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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 의 가치
- 회의야 말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콜로르니
- 회의는 종종 불확실성과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 #불확실성 은 -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것
- #회의 는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것이다 221
- 의심과 회의가 #창조성을 갖는다고 확신 - 콜로르니
- 세상을 보는 대안적인 방식을 허용하기 때문 -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한다
- #의심 은 동기부여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데올로기 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다양한 정치 전략에 가능성이 열리고,
- 알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인정하면 행동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행동의 전제조건으로 ‘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아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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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가졌던 신념의 순수성에 집착하지 위해 의심과 회의라는 더 풍성한 지적 태도를 포기하지 않을 터였다
- 또 냉전 시기 미국인들의 확신에 부합하고 주류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자유 개념에 끼워맞추기 위해 의심과 회의의 태도를 포기하지도 않을 터였다 487 #의심 #회의 #가치관 #변화 #유연성 🤔 _자신의 낡은 똥고집을 지키기 위해 더 풍성한 지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면 된다.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새로 만나게 되는 세계에 대해 의심과 회의의 태도를 유지해야한다. 그것으 나쁜 것이 아닌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_
살아가고 창조하는 것이 아무런 중요한 것도 만들지 못하는 시기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걸까? 그러니까 생존만이 문제가 되는 시기로 말이야. 그 결정은 대체로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대응하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 허시먼 494
🤔 그냥 먹고사는 문제만 고민하는 삶, 허시먼은 그런 삶보다, 창조하고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런 의미를 찾는 일을 하는것을 원했다.
누군가의 비르투(역량, 결단, 용기)는 다른 누군가의 포르투나(행운, 기회, 운명)가 된다. 578
작은 아이디어들과 그것이 향하는 예기치 않은 방향들을 생각하라 779 (에우제니오의 허시먼에게 준 말)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비전의 충동에서 시작된 …너무 거대한 비전을 가졌던 탓에,..매우 제한적인 진보는 진보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날의 상상력은 급진적인 변화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경향(집착)은 ‘중간적인 결과’, ‘중간 단계의 성과들’ 을 가시화해 내지 못한다
핵심은,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느냐 가 아니라 더 낫게 만들 수 있느냐 이어야 했다. 1027
4. Key Word 책에서 뽑은 키워드 정리
4.1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창출한다
747
6.책 밑줄 정리 (책 밑줄 전체,page)
선택을 통해 우연을 최대로 활용하는 것의 핵심은 ‘가능성’들에 열린 자세를 갖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이는 가능성들을 창출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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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우연 이 인간사에서 수행하는 역활 - 27
- #행운 = 포르투나 Fortuna
- #선택 Virtu 을 통해 우연을 최대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 #가능성 들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는것 창출하기도한다
- #분리 = 새로운 조합의 가능성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허시먼에게는.
- #가능주의 possiblilism 말을 만들었다.
쾌락은 실망을 주지만 가능성은 절대로 실망을 주지 않는다 - 쇠렌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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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에서 봉착하는 #난관 이 삶 자채를 비극으로 끌고가 버리지 않게 하는 #방법 중 하나
- #유머 와 #해학 으로 #거리두기 하는 것이다 28
삶에서 봉착하는 난관이 삶 전체를 비극으로 끌고가 버리지 않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유머와 해학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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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 라틴어 단어로 “도덕적 용기”, “능숙함”, “뛰어난 능력"을 의미합니다.
- 허시만은 Virtu를 개인의 의지와 노력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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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una: 라틴어 단어로 “운명”, “행운”, “우연"을 의미합니다.
- 허시만은 Fortuna를 개인의 통제 밖에서 작용하는 외부적인 힘으로 정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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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적이고 비타협적인 형태의 주장 → 선택지와 대안의 범위를 좁혀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주장 31
-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치와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31 🤔 정치인,리더가 사용하는 단어나 철학등이 대중, 그룹,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
허시먼은 경직적이고 비타협적인 형태의 주장들이 선택지와 대안의 범위를 좁혀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이는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정치와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포착한 주장이었다.
- 허시먼의 저술에는 사회과학을 문학으로서 풀어내고자 한 노력이 드러나 있다.
실증근거 evidence,주장전개 agrumentation에 대한 태도에서 그는 화법 rhetoric 를 중시했다사회과학의 휴머니즘의 대표격- 그가 쓴 논문, 책 은 몇 세대에 걸처 독자들을 사로 잡았고,
- 그를
인문학적인 사회과학자라는 도특한 위치에 서게 했다 🤔 우리나라에서는 이어령 선생이 있었다
42 #전기
전기는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존재하는 것과 부재하는 것을 혼합하는 것이며, 한 사람의 인생에 있을 수 있었던 ‘가지 않은 길’, 우연히 생긴일 , 어쩌면 생길 수도 있었을 일,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가능성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 재구성할 수 있다
- 허마이오니 전기 작가
43
- 허시먼은 꿈꾸는 자
- #현실 세계에 깊이 발을 딛고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실천에 나섰던 꿈꾸는 자였다
45 정통과 확실성만 추구하다 보면 의심과 회의가 가져다줄 수 있는 창조적인 가능성들과 예기치 못했던 경로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들을 배제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 🤔 창조성은 어떤 것에대해 의심해 보고 회의적으로 보고,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 그런 시도들 #창조 #창의 #의심
46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는 다는 말은,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가정을 버림으로써 세상 속에서의 경험과 시도를 통해 새로이 알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믿는 것을 의미했다.
47
- 허시먼이 살아간 20세기는 힘겨운 시대였다
- 우연으로, 그의 선택으로 그의 삶은 20세기의 세계사적 비극에 계속 맞닥뜨려졌다
- #20세기 = 혁명, 전쟁, 인종 학살의 세기 라 불린다.
- 인류가 이제껏 스스로를 전혀 존엄한 존재로 만들지 못했으며
- 끔찍하게 공포스러운 일을 대규모로 저지를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을 드러낸 시기였다
- 🤔 인간은 인간을 위함이 아닌 인간에게 고통을 줄수 있는 초대형 사고를 칠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한 시기
- 에릭 홉스봅
극단들의 시대라고 칭함
- 인류가 이제껏 스스로를 전혀 존엄한 존재로 만들지 못했으며
- #20세기 = 혁명, 전쟁, 인종 학살의 세기 라 불린다.
- 허시먼은
- 혁명과 반형명사이
-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사이
-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
- 그 사이에 또 다른 영역이 있다고 생각 #중도 !!!
- #개혁 의 영역 - 목적과 지향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합의되어 있지는 않으며
- 무성한 논쟁과 갈등 속에서 변화해 나가는 영력 47
- 이런 #변화 를 추동하는 동력 - 완벽한 인류를 만들겠다는 열망이 아니라
- 인류를 조금 더 낫게 만들겠다는 열망이었다
- #결함 없는 #완벽 의 추구는 끔찍한 공포로 귀결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 너무 완벽한 사상, 이데올로기는 가짜이고 실패임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현재 살아가는 문화 시대를 통해 배우고 살아내고 있다. 이런 글을 어느책에서 봤는데 기억이 안난다
- 우연으로, 그의 선택으로 그의 삶은 20세기의 세계사적 비극에 계속 맞닥뜨려졌다
48
- 혁명의 낭만과 반동의 우울 사이에서 파괴되거나 간과된 영역을 진지하게 숙고하고 그 영역 안에 존재하고자 분투했던 한 지식인에 대한 이야기
- 세상 속에 발을 딛고서 그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 헌신한 인물의 개인적이고 학문적인 #중도 의 이야기
- 허시먼은 시계가 처한 문제들의 해법은 기술적인 발견보다는 #상상력 의 힘에 있다고 강조
- 우리가 집중해야할 ‘개혁의 영역’에 집중 49
- 허시먼의 이야기는
- 개인사의 형태를 취한 한 시대의 기억이고, 실망에서 희망을, 긴장에서 해법을, 불확설성에서 자유를 발견하는 새로운 사회과학의 이야기이며
- 지식인들이 겸손하면서도 대담한 태도로 #관찰 할 때 더 잘 포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들의 원천으로서
- 사회 세계를 바라보는 문학적 스타일의 이야기 이다
1장 교양있고 낙천적인 유대인 소년 ‘오토 알베르트’ 1915~ 1932년
- 스카게라크 해전 - 영국에서는 유틀란트 해전이라 부름
57
-
허시먼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에 코즈모폴리턴적이고 시민적이며 부르주아적이고 공화주의적 환경 속에서 갖게 된 가치들을 평생 간직했다
- 지금보다 나은 상황이 가능하며, 옛 세계의 잿더미에서 새로운 세계가 생겨날 수 있다는 허시먼의 믿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 [바이마르 공화국](바이마르 공화국) 은 독일 계몽주의가 약속한 세상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될 잔재들을 쓸어없애 줄 것처럼 보였고
- 공화주의를 믿는 사람들에게 회의와 의심을 버리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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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는 전통을 뒤흔드는 모더니즘과 대중 민주주의가 대담하게 실험된 시기였다
- 제1차 세계대전 의 먼지가 가라앉았을 무렵, 바이마르 공화국은 자유와 안정 사이에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베를린은 문화 활동은 귀족들의 저속하고 허세스러운 짓거리를 풍자하고 창조와 자유를 가로막는 검열이나 제약을 맹렬히 공격하는 사회 비판의 장으로 더욱 확고히 자리잡았다
🤔 [창조적 시선#바이마르 바우하우스](창조적 시선#바이마르 바우하우스)에서 본 바우하우스 이야기가 생각난다
- 유대인들의 정채성에 도전을 받는 시기
- 독일 거주 유대인 → 유대 배경이 있는 독일인 →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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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화에 동화된) 상류층 유대인들을 정말로 프로이센과 독일 국가를 수호할 일원으로서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 독일인들은 이를 의심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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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과 헤다 (부모) 는 자녀들을 루터파 개신교로 개종시키기로 했다
허시먼 부모님은 이미 유대인 전통과 종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또 어느 정도는 기회의 여지를 넓히고자 한 면도 있었을 거예요. 자녀들에게 더 좋은 여건을 만들어 주시려고 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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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톨스토이의 영적인 글에 평생 팬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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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O. 허시만의 말 #선택 #삶 #인생
우리가 상황을 ‘어떻게 관찰하는가’는 우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기회와 제약의 세계를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며, 적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내러티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85page
- 부모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 우르줄라(누나)와 앨버트(허시먼)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 부모에 대한 기억까지도 자신이 어떤 내러티브를 선택하고 만드느냐에 따라 취사 선택 가능하다
2장 나치 집권을 막으려 분투한 청년 사회주의자 1930 ~ 1933년
- 바이마르 공화국은 혼돈 상황으로 빠져든다
- 대공항, 실업률
- 민족주의당인 나치당이 제2의 야당이 되고
- 마르크스주의 자들 - 노동자계층- 확산되고
- 국가는 권위적인 태도로 혼란에 기름을 붇는다.
- [사회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공산주의)
- 대공항, 실업률
- 허시먼에게 마르크스사상은 당시 사회를 이해하게 해주는데 지적인 나침반을 제공했다 133
앨버트 허시먼은 마르크스와 헤겔의 영향을 받았으되 이들 모두와 대비되는 독자적인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 사상을 우리는 ‘실천적 관념론’ 혹은 ‘실용적 이상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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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허시먼)은 사회주의 노동자 청년단에 가입한다 S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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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읠 슈포르트팔라스트
- 노동자 계급 지역에 위치한 베를린 최대 회의장,
- 베를린 정치 중심 무대
- 히틀러가 #1930년 9월 열광하는 군중 앞에서 첫 연설도 한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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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바우어 -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자 - 의 강연을 들은 허시먼은 경제학을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먹게된 중요한 계기가 된다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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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학들은 히틀러지지자들의 온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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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바이마르공화국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 믿었다가 실망한 사람들에 의해 공화국은 망한다. 허시먼 가족은 어느쪽에도 속할 수 없었다. 152
- 유대를 버리고 독일인으로 살고자 바이마르공화국을 지지했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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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당(제3 제국) 의 등장,
- 당시 민주 정치 세력들의 무능 + 히틀러의 정치적 수완
3장 ‘프티 이데’ 추상적 이론에서 관철적 실천으로 1933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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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발터 벤야민 … 그들은 이미 세계관이 다 형성된 채로 파리오 온 사람들이었다
- 그들은 지적,학문적 탐색할 목표(프로젝트)를 이미 가지고 있었고
- 망명은 여기에 통렬함을 더해 주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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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그런 /어떤 세계관에 빠져 있지 않았던 그는, 망명생활은 ‘상황’이라기 보다 ‘단계’ 의 시기였다 🤔 뚜렷한 자기 주장이나 철학을 갖지 않았기에 그에게 망명의 시기는 다음으로 가는 ‘단계’가 되었지만, 한나 아렌트는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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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뢰벤하임(마일스라 부르기도함) <노이 베기넨 : 새로운 시작 : 파시즘이냐 사회주의냐> 책을 통해 , 허시먼은 분석 방식의 표준을 삼는다.
- 이 책
- 좌파의 논의가 나치즘이 자본주의 진행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난 파열음에 불과하며 이 경로는 결국 (공산주의 )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몽상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주장
- 파시즘의 일종인 나치즘이 대공항이 만천하에 드러낸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해소하려 하는 ‘완전히 발단된 체제’ 라고 보았다
- 히틀러 정권은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있었고, 이는 바이마르공화국이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 저항은 역사가 결국은 사회주의의 편이라고 믿는(허시먼등 독일 사회주의 자들에게) 근본주의적 확신에서 벗어나야 가능했다. 🤔 나치즘이 지나가는 바람이 아닌것을, 사회의 현상을 올바로 보는 시선을 가져야함을, 그런 분석을 한 책으로 부터 영향받는 허시먼, 지금의 미국 공화당 후보의 바람도 그런것일까? 🤔 지금의 대한민국과 미국에서의 우익들이 우세한 현상이 , 그 현상이 못맏땅한 내 생각이, 한나 하렌트쪽의 실망감일까. 아니면 우익의 나치즘으로 가는 모습을 분석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인가
-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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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바흐 (에우제니오 콜로르니에 영향 → 허시만에 영향) 1953년 에 한말 213 #역사
역사라는 예술에서 위대한 도약은 판단의 관점을 정교화하는 데서 나온다. 그렇게 해야만 다양한 시대와 문화를 그것들 자신의 전제와 견해들에 비추어 파악할 수 있고, 그것들을 최대한 발견해낼 수 있으며, 현상을 외부적 요인으로만 설명하는 모든 절대주의적 분석을 게으로고 몰역사적인 것으로서 기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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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스티치아 에 비레르타 운동 :정의와 자유 214
- 무솔리니를 몰아내려는 모든 진보주의자를 포괄해 만든 범저항운동 -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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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각들, 지식의 작은 조각들
에우제니오와 대화를 나누면서 오토 알베르트는 지식의 작은 조각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이것을 ‘작은 생각들’이라고 불렀다. “이것들은 어떤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세계에 대해 전체적인 지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것들은 이전의 모든 이데올로기가 했던 주장을 뒤흔들 것이다.” 이러한 ‘프티 이데petit idée[‘작은 생각’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는 허시먼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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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티 이데 는 아포리즘과 같다. 생각지 못한 놀라움을 주며 역설적인 속성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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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나의 그림, 하나의 사진을 보고서도 프티 이데를 발견했죠. 또 거리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프티 이데를 발견했어요.” 작은 것들은 큰 통찰을 주면서도 그 통찰로 환원되어 버리지 않았다. 반면 거대 개념은 “세계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러 원인이 있는 사회적 과정들을 단 하나의 원칙으로 설명하려” 했다. 이를 피하려면 “현실을 부분 부분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관점이 주관적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220
🤔 작은 관찰들을 모아 모아 위대한 생각을 하게된다. 추상적인 이데아를 찾고 현실을 꿰어 맞추지 않는다. 사고의 순서가 다르다. 허시먼의 생각전환
- #회의주의 의 가치
- 회의야 말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 콜로르니
- 회의는 종종 불확실성과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 #불확실성 은 - 내가 틀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것
- #회의 는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것이다 221
- 의심과 회의가 #창조성을 갖는다고 확신 - 콜로르니
- 세상을 보는 대안적인 방식을 허용하기 때문 -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한다
- #의심 은 동기부여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데올로기 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다양한 정치 전략에 가능성이 열리고,
- 알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인정하면 행동하기 전에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 행동의 전제조건으로 ‘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아날 수 있는 것이다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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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로셀리 <사회주의적 자유주의> [토리노 멜랑꼴리](토리노 멜랑꼴리) 101 page
- 자유주의 + 마르크스의 사회정의 결함, 민주주의 사상으로 통합 하고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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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법익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의심하는것, 그리고 우리가 자유와 정의 그 자체를 위해서 행동할 수 있고, 행동을 통해 배우고 고치고 재평가해 나갈 수 있으며, 이를 토대로 다시 행동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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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으로 가다 런던정경대학교 LSE
4장 유럽의 국경을 넘나든 지적.설천적 여정 1935 ~ 193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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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 극단적인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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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이즘
- 깊은 체험,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금언,격언,경구,잠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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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 변화무쌍항 행로를 보면 …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 예기치 못하게 벌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228 🤔 자신의 상황에 맞게 삶과 생각을 바꾸는 유연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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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왔을 때 내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경제학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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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학파 - 중앙정부의 간섭필요, LSE의 자유시장주의 가 맞서 논쟁의 분위기 있던 1930년대 영국 [존 메이너드 케인스](존 메이너드 케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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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E의 배럿 웨일 교수가 허시먼의 논문에 추천사를 써준다. 허시먼은 1년 장학생 코스 학생으로 1년후 프랑스로 돌아간다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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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무솔리느가 에티오피아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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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스페인 내전
- 국민 진영 ‘프랑코군’ 을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하여 승리한다
-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독재 체제 시작
- 스페인은 파시즘과 사회주의 (정의와 자유) 조직의 싸움터가 된다
- 카를로 로셀리 - 이탈리아서 프랑스로 망명상태 - “오늘의 에스파냐가 내일의 이탈리아”
- 국민 진영 ‘프랑코군’ 을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지원하여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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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진영의 존쟁에서 핵심이었던 ‘이데올로기적 일관성’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나니 무언가 다른 것을 추구할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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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트리에스테 → 파리로 다시 망명
5장 유대인 구출 활동의 수완꾼 ‘비미시’ 1938 ~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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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군대에 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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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노선
- 프랑스가 독일의 기습공격을 대비히 막대한 비용을 들여 ‘난공불락’ 요새를 지음
- 당시 육군장관이던 앙드레 마지노 의 이름을 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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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아르망 ,
-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하자, 허시만은 소속 부대 상급자의 도움으로 가짜 군대통행 증과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가짜 이름을 만든다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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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에서
- 미국인 배리언 프라이를 만나고, 프라이는 알베르 에르망(허시먼) 에게 ‘비미시-개구진 미소’ 라는 별명을 지어주고 함께 한다
- 유대인을 탈출 시키는 일을 함께 한다 314
- 프라이는 하버드 출신, 뉴욕에서 편집자 일하다가, 독일에서 저명한 유대인들 박해에 대한 소식으로
- 기금을 마련하여 탈출을 돕는 일을함 ‘긴급구조위원회’
6장 팽창주의를 제어할 무역 질서를 찾아서 1941 ~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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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저지주 앨리자배스의 출입국통해 미국에 도착
- 여기서 이름이 바뀐다 알베르트 히르슈만 → 앨버트 O. 허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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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뒤를 돌아보고 ‘독일 문제’에 집착함으로써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하지 않았다…..망명을 스스로를 재발명할 기회로 삼았다. 그는 두고 온 상처를 뒤짚어 생각하지 않았고 남들에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러기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했다. 343
🤔 과거에 묶이지 말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처럼 운명과 인간의 유연한 노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를 갖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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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재단은… 2년간의 매달 120달러 생활비, 학비전액,뉴욕에서 캘리포니아 교통비,여비… 캘리포니아행 기차의 2등석 운임을 지급…. 또 재단은 허시먼의 요청에 따라 중간에 원하는 곳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는 표를 제공했다 🤔 누군가를 도울려면 재대로 돕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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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버클리 사람들에게 신기한 인물이었다
- “모두가 나에게 내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노트를 꺼내서 받아 적기 까지했어요” ..새로 온 신기한 학생을 둘러싼 소문도 무성했다. 그는 모략, 계략, 첩보가 넘쳐나는 세계를 떠나 학문의 낙원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책을 읽고 싶었는데 다른 이들은 그가 말을 하게 하고 싶어했다.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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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러 샤피로 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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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버클리는 케인스가 옳으냐 그르냐의 논쟁이 활발
- 허시먼은 마치 <일반이론>의 중요성이 케인스주의자와 케인스 비판자들 중에 누가 이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듯이 벌어지던 잘못된 논쟁에 질려 있었다 364
- 허시먼의 관심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으로 부터 … 조직된 이해관계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협상력’이 시스템을 구성하는데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등에 관심이 있었다
- 그 분석의 틀을 지역(파리에서 경제지리학 공부하면서), 국제경제 체제에서의 국가(런던에서 경제학 공부하면서)가 어떻게 자본주의 이익을 놓고 투쟁하는지 고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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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 - 국제 교역과 그것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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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시장이 자기교정적이냐 아니냐의 문제 🤔 당시 버클리 나 영국에서나 케인스가 책에서 말하는 주장보다 옳고 그르냐로 사람들은 뻘짓을 하고 있었고, 허시먼은 그걸 아쉬워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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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버클리에 올때 “왜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다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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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무역과 권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경제외 정치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키아벨리가 간과한 이부분을 히틀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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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이 집필에 매진하는 동안 라디오는 진주만 공격과 미국의 참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 파시즘과의 전쟁에 그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1942년 집필이 끝났다
- 허시먼은 세계경제를 분석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양적 조사 기법을 개발했고, 새로운 데이터를 모았으며,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했다. 3번째로 배운 언어로 불과 2년 만에 책을 써냈다 374
🤔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2차적인 것, 즉 무엇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언어습득의 방법이 있을가? 2년만에 책을 낼수 있을 정도로? 물론 영국에서 영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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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국가주권과 국제교역의 교차점을 관찰하면서 강한 국가들이 약한 국가들을 희생시켜 자국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 교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 세계경제 시스템의 붕괴와 거대 블록 간의 충돌은 불합리한 것도 아니고 민족주의적인 병리현상도 아니었다.
- 그것은 체제의 기본적인 모순에 대한 각국이 합리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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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학자들은 무역을 통해 국가간 상호의존성으로 갈등을 해소시켜서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 허시먼은 그런 예측을 하는 동안 유럽 제국들은 식민지를 약탈하고, 제국들 사이의 갈등도 고조된것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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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 강한 나라가 약한 무역국을 물리적으로 정복하지 않고서도 #지배 할 수 있는 20세기식 제국주의 모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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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인 (국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자간 시스템을 개조해야한다
- 무역을 국가의 권력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자연적인 유혹’은 모든 국가가 가지는 것이다
- 국가권력을 가진 의사결정자들이 교역이라는 무기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아예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 허시먼은 ‘경제적 주권에 대한 강력한 제약’ 만니 평화로운 세계에서 각국이 교역의 이득을 위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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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규모와 소득 면에서 비대칭이 존재하는 한 모든 국가(중상주의,자본주의,공산주의건 간에) 는 약탈적 행동의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 그리고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에는 ‘권력의 불균형’이 발생할 위험이 늘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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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역사 의 흐름 중에서 단지 하나의 순간만을 살고 있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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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사람들의 #선택 에 지침을 주는 것은
-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 하기로 마음먹느냐라고 ( #마음가짐 )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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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전환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인데, 허시먼은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을 영구적인 여건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더 악화된다고 보았다. 🤔 지나가는 현상을 영원할 것 처럼 보는 인간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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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이고 , 미래 의 정책을 구상하는 긍정적인 상상력의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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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에 자원한다
7장 다시 총을 잡은 행동하는 지식인 1943 ~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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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번째 전쟁에 자원했다 - 투쟁 - 나치즘에 - 하는 자아 + 생각하는 자아 통합 - 에스파냐, 프랑스에 이어 미국 국기 아래서, 동일한 대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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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로 파명되고,연합군은 이탈리아 로마를 탈환하고, 피랜체, 파리까지 탈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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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키르케고르에서 ‘가능한것들에 대한 열정’이라는 표현을 발견했고 이 표현은 허시먼의 상상력을 곧받로 사로잡았다.
- 가능한 것들의 범위를 인식하는 것,
- 그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것
- 때로는 ‘있을 법한 probable’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가능한possible’ 것들을 추구하는 것
- 이것이 그가 이후 수십 년간 계속해서 되살리게 되는 ‘프티 이데’ 의 기초가 된다. 421
<예속의 길> (한국 <노예의 길>)
나처럼 집단주의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사람에게 이 책은 매우 유용해.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고, 내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지점들에서 열여덜 살 때 가졌던 신념으로부터 멀어졌는지 알려주고던, 군대에서의 경험은 익명의 화폐 중심 사회, 적어도 개인이 사적 주도권의 영역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는 사회의 장점을 확인시켜 주고강력하게 입증해 주는 것 같아 4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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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복잡하며 우리가 세상을 파악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 지도자들은 실제로는 알지 못하면서 모두 안다고 생각한다
- 그래서 개인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조정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짓밟는다.
- 하이테크는 어떤 계획이나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자생적으로 작동하는 숨겨진 요인들의 힘을 강조, 이는 우리가 삶과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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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의 비관적이 책은 허시먼이 전보더 더 확고하게 ‘개인의 자유’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완벽한 지식’을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424
🤔 그 지루한 시간들을 책을 읽고, 지식인과 예술인들을 만나면서 의미?를 찾으며 생활하는 모습이 인상적 하이에크의 <예속의 길> 에서 집단 문화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인사이트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이에크의 책도 읽어 보고 싶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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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는 도시마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책을 구했다. 달러화, 군 배급품, 담배 등은 책을 구하는 데 매우 좋은 수단이었다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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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장교 재판에서 통역을 하고 - 독일장교의 변론을 통역해 주는 인연 - 영국 런던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고 - 로마에서 누나를 만나고 조카와 시간을 보냈고 - 나폴리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훈장을 받고 제대한다.
8장 유럽부흥계획의 막후에서 1946 ~ 19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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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에 입사하고, 서유럽-영국 담당 팀장이 된다
- 개혁을 위한 정책 구성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 전후 세계질서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 전후 세계가 크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 허시먼 - 그는 마셜 플랜이 입안될때 뒤에서 보이지 않게 움직인 사람 중 한명이었다
- 사고의 배경이 되는 사고를 제공한 사람 이었다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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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장관 조지 C. 마셜
- #1947년 6월 하버드대학 졸업 연설에서 유럽을 위한, 유럽과 함께 진행할 재건 개회 발표 #마셜플랜
-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자유방임적인 정통 경제학 처방을 주장했지만, 마셜, 트루먼 외교팀은 적극 개입을 하는데 합의 466
- #1947년 6월 하버드대학 졸업 연설에서 유럽을 위한, 유럽과 함께 진행할 재건 개회 발표 #마셜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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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연방화 통화 구조를 만들 기획을 한다. 미국은 유럽을 하나의 지역처럼 다뤄야 했다.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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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가졌던 신념의 순수성에 집착하지 위해 의심과 회의라는 더 풍성한 지적 태도를 포기하지 않을 터였다
- 또 냉전 시기 미국인들의 확신에 부합하고 주류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자유 개념에 끼워맞추기 위해 의심과 회의의 태도를 포기하지도 않을 터였다 487 🤔 _자신의 낡은 똥고집을 지키기 위해 더 풍성한 지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겠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면 된다. 가지고 있던 가치관에 대해, 새로 만나게 되는 세계에 대해 의심과 회의의 태도를 유지해야한다. 그것으 나쁜 것이 아닌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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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긍정적인 면을 찾아…안으로 눈을 돌려 위안을 찾았다. 바쁘던 동안 소홀했던 가족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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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연준을 나와서 보고타 of 콜롬비아 의 중앙은행으로 자리를 옮긴다 498
- 연준 출신인 사람이 1950년대의 남미로 자리를 옮긴다. 파격적이다.
-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허시먼의 결정에 큰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 …마셜 플랜에서 일했던 ‘플래너’ 치고는 매우 비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이사였다
- 1930년대의 경험…등,
-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9장 매카시즘의 그늘 1943 - 1966년
- 허시먼의 독일,에스파나,이탈리아 등에서 행했던 일들에 대한 미국 정보국의 의심들
- 그는 재무부에 들어갈수 없었다
10장 숙고하는 활동가 매혹한 콜롬비아 현장 1952 ~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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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자금을 지원해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나라들이 빈곤과 후진성에서 탈피하는 것을 도울 기회가 있었다
-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해 제3세계 국가들이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게 도움으로써 공산화를 막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 미국이 공산화를 막기위해 자본주의를 이식 시켰다. 미국에 의해 돌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 미국의 힘이 살아있는 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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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는 이런 세계은행의 실험장이었다 525
#매카시즘 McCarthy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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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극단적인 반공사상(反共思想). 50년 2월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J.R. 매카시가 국무부의 진보적 성향을 띤 100여 명의 추방을 요구하고, 많은 지도층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격한 데서 발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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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불확실성이 자신을 짓누르도록 두는 사람이 아닌 허시먼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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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세계은행의 콜롬비아 근무기간을 종료하고 컨설팅 회사를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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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 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들에 #개념 이 끼어들면 오해가 생긴다 🤔 있는 그대로를 봐야한다. 편견이나 고집은 버려야 한다.
허시먼의 아내 새러, 콜럼버아에 계속 머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571
음, 글쌔 …우리도 그렇게 분명한 목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어. 아이들을 위한 계획도 생각해야 하고 말이야. 하.지.만 어쩐지 우리 둘 다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그리고 현재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현재가 견고하고 좋으면, 그것이야말로 미래에 대해 어떤 계획보다 좋은 기반이 되어 줄 테니까.
콜롬비아를 떠나지 않는 이유, 거창한 경제계획(실제와 동떨어진) 에 대해 앨버트가 느낀 불편함, 가족의 미래를 명확하게 준비하는 종류의 계획에 대한 새러의 불편함
우리는 이곳에서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현재 #불안 #미래 #행복 #삶 #비결 🤔 현재를 충실히 한발 한발 살아가는것. 불안한 미래를 불안해 하며 준비하는 것 보다. 현실에 충실하라 
- 연준 출신의 지식인과, 그 아내, 아이들을 키우는 어머니 입장에서 3자가 보는 콜롬비아는
-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장소있것이다.
11장 주류에 도전한 독창적 개발 이론 1956 ~ 19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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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버크
- 허시먼에게 영향을 준 회의주의자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
- “진전되어 가는 것 중에 원래의 계획대로 이러우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기대하느니 요람에서 다 자란 성인이 튀어나오기를 기대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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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결함은 #참을성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 허시먼, 프란츠 카프카
-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잘 못은 참을성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참을 성이 없어서 밀려난다. 참을성이 없어서 되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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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은 단지 장애를 제거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극복이 ‘인식’에서 시작됨을 깨닫는 것도 의미했다
- 즉, 외부적 장애만큼이나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장애도 발전을 방해할 수 있었고, 이러한 내면의 족쇄가 극복하기 더 어려운 장애일 수도 있었다 602 #문제 #해결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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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사들이 환자에게 장애를 인정하고 상황게 직면하게 만들듯이, 한 사회의 경제도 그렇게 하도록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장애를 반복적으로 직면하게 되면 장애를 더 잘 알게 된다. ..허시먼의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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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먼드 버크 < 프랑스혁명에 대한 고찰> 에서
- “우리의 적이 우리를돕는 자이다. 우리와 씨름하는 상대는 우리의 신경을 강하게 해 주고 우리의 역량을 연마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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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는 #긴장 에 의해 동력을 얻으며, 긴장이 없으면 변화는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될 터였다 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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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발 국에게 빅 푸시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몰아가는 행위자, 딱 정확한 양의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 유도된 불안정을 해결하도록 정책자들을 몰아가는 방법
-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몰아가는 방법을 통해 자국에 맞는 방법을 어쩔 수 없이 찾게 만드는 채찍의 방법 인다.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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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비웠으니 먼 곳에서 다시 채워야 할 것 같습니다. 🤔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모습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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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 대학 경제학과장 로이드 레이놀즈가 콜롬비아에 있는 허시먼에게 편지를 보낸다
- 1년간 방문연구교수 해 줄수 있는지
- 허시먼은 “정말로 신이 났다”
누군가의 비르투(역량, 결단, 용기)는 다른 누군가의 포르투나(행운, 기회, 운명)가 된다. 578
12장 라틴아메리카의 개혁가들과 더불어 1958 ~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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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그것을 가진 자를 노예로 만든다 636 🤔 요행으로의 성공은 요행만 바랄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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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큰 기쁨은 가장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얻게 된 기쁨이다 - 몽테뉴
13장 세계의 개발 프로젝트 현장을 누비며 1963 ~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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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다모다르 계곡 프로젝트, 실패라고 했지만
- 허시먼이 주변을 돌아보니 그 공사로 인해 다른 공사들이 시작되었고, 성장의 지점을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 어쩌면 “좁은 의미의 실패가 넓은 의미의 효과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아닐까”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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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 프티 이데을 찾아낸다
- 어떤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충돌과 긴장을 만들어 낸다. 자극제, 마중물
- 부조화 : 당신은 당신의 성격에 맞지 않는 무언가로 들어간다. 그 결과 당신은 당신의 성격을 바꾸게 된다.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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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 손
-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고안 -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작동원리를 은유적 으로 표현
- 허시먼은 제3세계의 발전을 진행하는데 인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에, 세계은행이 추진하는 거대 프로젝트를 이렇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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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이 태국에서 본 … 710
-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사람들이 하게끔 만들었다”
🤔 누군가의 비르투가 다른 누군가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중용 미덕은 악덕 사이에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 소심함 - 용기 - 무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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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파멸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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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허시먼은 수출 산업을 시작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수출 주도 산업화’라는 개념은 아시아의 기적이 ‘모델’로 자리잡기 한참 전에 이미 허시먼이 제시한 통찰이었던 셈이다. 727
14장 사회계약과 시장 사이의 연결고리 1967 ~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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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에 대한 ‘인식’이 때로는 장애물 자체보다 더 해로울 수 있었다
- 장애를 너무 거대하게 ‘인식’하면 그 장애가 결코 변화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잠재적인 대안들이 억눌리고 개혁의 길이 놓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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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장애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인식하면 그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악순환 .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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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에 대한 반응을 2가지로 정리했다 774
- 하나) 발언 voice - 목소리를 내는것
- 하나) 이탈 exit - 그것으로 부터 나와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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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신앙심, 순수한 믿음의 행동과 비교해 볼 때, 가장 충성스러운 행동은 막대한 양의 합리적인 계산을 담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782
- YG님 이해 https://www.gmeum.com/meet/1222?talkId=82427
- 침묵하고 순응하는(충성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다수도 어쩌면 안에서만 수많은 선택지가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합리적인 계산’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통찰!
- YG님 이해 https://www.gmeum.com/meet/1222?talkId=8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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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그런 표현들을 이해하고 시스템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조직을 이끈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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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발언,충성심> 이 히트를 치고, 학과간 (경제학,사회과학,정치학) 등 분절된학과를 연결 하는 개념, “하이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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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내가 썼던 글은 거의 모두 정치와 경제의 연결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한 연결 뒤에 있는 시스템을 파악하고자 합니다.” 허시먼의 다음 고민들 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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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위해) 거대한 체계 대신 “작은 규모의 정치경제적 발전 과정” 을 연구하고자 촉구했다
- 거대 기획을 버리면 야망(?과업,자랑거리?)을 포기해야 할지 모르지만, #유연성 과 현실성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15장 박해받는 남미의 동료들을 위하여 1971 ~ 1976년
- 앨버트는 늘 밝은 면을 보기를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진실은 극단에 있지않고 중간에 있다고 말하지요 857
- 허시먼이 보기에 희망과 절망의 구분,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의 구분은 잘못되었다.
- 어떻게 말해지느냐, - 어떻게 볼것이냐, 보려고 하는 것이냐, 해석할 것이냐 - 의 문제였다
- 사회가 대대적인 변화의 시기를 지날 때 그 변화의 과정에는 우연과 선택이 가득하기 마련.
- 이것을 파악하려면 이성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왜) 단 하나의 일만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옳은 답을 내릴 것이라고 믿는지 묻고 싶었다. 왜 우리는 한 번에 새로운 열쇠를 꼭 하나씩만 가져야 하는가? - 허시먼 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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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학자들이 자신의 한계를(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 신마르크스주의자들 이 정책을 만드는 것을 보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경제를 더 자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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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학자들이 한가지의 주장에만 몰두하는지, 그 근원을 찾기 위해 과거를 공부한다
16장 고정 경제사상의 재해석 1972 ~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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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세계(현실)가 그에게 절망의 원천이 되어 가는 동안 (남미의 상황) , 허시먼은 #역사 로 돌아가 초창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형성의 근간이 되었던 문헌들을 공부하면서 내면으로 향했다 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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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자본주의 에 기대되는 기능은 “사학해지고자 하는 정념"을 가진 사람들이 “사악해지지 않는 쪽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게 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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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터널 효과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인간의 감정과 그것이 사회적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맛보기로 탐구한 바 있지만, …이제는 고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정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숙고했다. 889
- 정념(正念)은 그냥 한자 그대로 뜻을 보면 “바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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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그가 하는일을 하면서 변화될 수 있다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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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사람이 진짜로 어떠한 존재인지를” 설명하고자 한이래 200년 동안 학자들은 돈벌이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두고 씨름 하면서 #이기심 이라는 사악함을 새롭게 사고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 사치품 교역과 , 개인적인 악덕(이기심)의 추구가 수완 있는 관리를 통해서 공공의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주장 - 맨더빌등 학자들
- 이기심 → 이해관계 → 정념으로 받아들이도록 했고
-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 →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으로 발전 시켰다 901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주한, 양조인, 제빵인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 이타심,타인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이해관계 - 이기심 - 자신의 이익을 위한 - 것이다. 애덤스미스는 그 이기심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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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사회가 호소할 수 있는 곳은 개인의 인류애가 아니라 자기애 이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득이다” 901
-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을 물물교환의 본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명백한 선으로 이해 - 허시먼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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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
- <의회의 독립성에 관하여> 라는 글 906
- …우리는사람들이 가진 이러한 이기심을 활용해서 사람들을 규율해야 한다. 사람들이 바로 그들의 이기심에 의해서 무한한 욕심과 야망에도 불고하고 공공선에 협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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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담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투사된 허시먼의 비전은, 911
- 예의 바르고 시민적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이기심과 공공선이 동일한 문장 안에 공존할 수 있게 되는 방식으로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 될 수 있는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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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이 카티아에게 하는 말
- 인간은 기본적인 양면성을 버릴 수 없다는 것
-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갖는 감수성과 세상안에서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생겨나는 감정덜, 그리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신성한 이기주의’ 사이에는완벽한 균형이 존재하지 않는다.
- 추는 때로는 한 쪽으로, 때로는 다른 쪽으로 쏠린다.
- 이것에 가장 잘 대비하는 방법은 “지금과는 다른 존재양식이 분명히 다시 돌아오리라는 것을 우리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인식하는 것"일 터였다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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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 애덤 스미스가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사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 경제학자들은 그의 경제적 부분만 강조하여 외곡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
- 다시금 스미시의 정신을 돌아 본다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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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은
- 경제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대 사상가들에 대해 논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정념을 이해관계(이기심)로 대체한 사회제도들을 마치 인간행동의 근본 원칙인 것처럼 간주하고 있으며 그 부작용으로 많은 사회가 시민적 정신을 죽이고 압제로 가는 문을 열고 있다” 고 언급했다
🤔 인간이 탐욕의 존재이고, 이기심으로 사회가 안정화 된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론을 정념으로 간주해버림으로써. 자본주의의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 왜? 자신들의 주머니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싫어서? 그렇게 일반화 단순화 하는것이 정치 권력자가 이해하기 쉽고, 그래야 자기의 사회적 위치가 유지 , 상승 하기 때문에? 허시먼은 자본주의의 근본을 돌아 보면서 잘못활용되는 부분을 고치고싶었던거 같다
- 허시먼이 마키아벨리나 토크빌의 사상을 되돌아본 것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생각했고 논했던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자본주의가 나아갈 수 있는 미래를새로이 그려 보려는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923
17장 건강한 신체가 내뿜는 우하한 매력
- 바람을 피운 흔적은 찾을 수 없다.
- 외모와 패션, 건강한 신체에 관심을 가졌다
18장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는 집합행동 이론 1977 ~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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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위기의 속성, …허시먼은 극단적인 좌파나 우파뿐 아니라 더 많은 정치적.경제적 선택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양쪽의 이데올로기 진영 모두에 진력이 나서, 나는 그저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따라 나의 태도를 이리지리 바꾼다” 966
- 숙명주의 는 종국에는 반대쪽을 유리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인 덫’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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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 뒤에는 실망의 긴흔적이 남았다. #실망 은 #희망 의 짝궁이었고 희망의 필수불가결한 쌍둥이였다. 975
- 실망은 가능주의자라면 꼭 생각해야하는 요인이었다
- #후회 와 실망은 단순히 실수에서 발생하는 결과가 아니였다.
- 그것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는 높은 기대를 가지고 수행된 활동의 결과다
- 허시먼은 이 세상에서 실망을 없애기보다는 실망의 필요성에 관심을 불어일으키려고 했다
- 불만족과 후회라는 요인을 포함하지 않는 이론을 추구하다가는 희망 또한 제거해 버리게 될 터였다
- 실망은 가능주의자라면 꼭 생각해야하는 요인이었다
실망으로 가득한 삶은 슬픈 삶이지만 실망이 없는 삶은 아예 견딜 수가 없는 삶이다. 실망은 장엄한 전망과 야망을 누리고자 하는 성향의 자연스러운 짝궁이기 때문이다
🤔 이세상에 완벽한 극단은 없다. 극한의 만족과 행복을 준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다. 극한의 실패와 고통만 있다는 것도 거짓이다. 삶은 그 중간 어디쯔메 있을 것이다
-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모든 시민이 공적인 의사결정의 이해당사자가 되게 만든다. 이와 동시에 투표는 시민 참여의 정도에 상한선을 긋는다. 표를 행사하는 행위로는 확신의 ‘강도’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978
- #선거 는 이중적인 특성을 갖는다. ‘과도하게 억압적인 국가’에 맞서서 방어하는 기능과 ‘과도하게 표현적인 시민’으로부터 방어하는 기능 978
19장 풀뿌리 현장에서 일궈낸 ‘손주들을 위한 사회과학’ 1979 ~ 1985년
- 사회적 명성과 권위가 있는 허시먼은, 남미의 현장으로 몸소 떠난다
- “운명은 계속해서 위협하지만 구원의 가능성도 계속 유혹한다.” 1023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비전의 충동에서 시작된 …너무 거대한 비전을 가졌던 탓에,..매우 제한적인 진보는 진보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날의 상상력은 급진적인 변화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경향(집착)은 ‘중간적인 결과’, ‘중간 단계의 성과들’ 을 가시화해 내지 못한다
핵심은,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느냐 가 아니라 더 낫게 만들 수 있느냐 이어야 했다. 1027
#학습 너무 어린나이에 배워버리면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실행할 것이다. 너무 일찍 배우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따. 그것을 배우는 시점에 질문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이 가능하려면 늦은 학습이 필수적인지도 모른다 1029
학자는 그것이 유의미한 제안과 자극을 줄 수만 있다면 인상주의적이고 사변적인 책을 쓸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1033
20장 좌우 극단주의에 맞선 마지막 외침 1985년 ~ 1991년
- 허시먼이 자신의 개념을 계속해서 회의하고 성찰한 것이 예전의 통찰을 새로운 복잡성에 맞도록 수정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1073
- “여러 사조들 간의 긴밀한 지적 연결은 오랜 세월 동안 사실상 서로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로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견해를 너무 확신하다 보면 이렇게 가까운 동족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지요” 1076
- 모든 도그마와 모든 ‘기본 법칙’은 수십년 동안 허시먼의 공격 대상이었다.
- 이런 주장들은 그 속성상 사람들이 대안으로 떠올릴 수 있을 법안 것들의 범위를 제한한다.
-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들의 범위를 제약한다는 말은 선택지를 막아 버리게 됨을 의미한다
- 뿐만 아니라,
- 자신에게는 오류나 불확실성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는 주장들은 다른 목소리를내는 담론들을 차단함으로써 민주주의 활력을 잠식한다. 1108
맺는글 마르크 샤갈의 키스 1995 ~ 2012년
- #지식인 은 그 자신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그가 속한 세계의 산물이기도 하다
- 지식인이 풀어내는 개념들도 마찬가지, 그것들이 생겨난 맥락에 의해 제약을 받기도 하고 해방이 되기도 한다
- 실제 삶의 경험, 역사 속에서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이해, (허시먼)에게 너무나 중요한 사고의 원천이었다
#삶 은 “그 자체를 향한 목적” (몽테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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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파시즘에 대해 투쟁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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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군인으로서, 마셜플랜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서, 콜롬비아에 대한 개발투자의 자문위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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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재단과 개발은행의 컨설턴트로서, 실제 생활에서 허시먼이 했던 경험들은 곁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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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 들은 더 큰 #통찰 을 끌어내기 위해 세상을 관찰하려는, 그리고 그 통찰로부터 검증되고 수정, 재구성, 개념들을 발명해내는 노력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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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고하는 삶 , 행동하는 삶을 오가는 시계추 운동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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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먼의 여정은 ‘정해진 목적이 없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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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이라는 여정 자체가 우리가 누구인지, 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교훈을 알려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추상적인 목적지를 상정하고 그곳에 가는 경로에 집착하다 보면 삶의 여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풍성한 가능성들을 제거하게 될 터 1149
기사에서 소개글들
‘세계 속으로 들어간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의 생애와 사상
https://www.yna.co.kr/view/AKR20201208081300005 독창적인 관점으로 제3세계 경제발전 현장을 연구한 개발경제학자이자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거대 기획’에 도전하며 실현 가능한 개혁을 추구한 경제사상가. 앨버트 O. 허시먼(1915∼2012)은 이렇게 요약된다.
제러미 애덜먼 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 교수가 독일 태생의 유대인 경제학자 허시먼의 생애와 사상을 담은 ‘앨버트 허시먼’(부키)이 번역 출간됐다. 미국에서 2013년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Worldly Philosopher: The Odyssey of Albert O. Hirschman’으로 ‘세속의(worldly) 사상가’로 허시먼을 조명한다.
또한, 독일 사회민주당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며 베를린대학에 입학했다가 1933년 나치 집권에 독일을 탈출해 파리와 런던에서 대학을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탈리아 반파시즘 운동 가담, 프랑스군 입대, 미국 피신 후 미군으로 세계 2차대전 참전 등 오디세이아를 연상케 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을 따라간다.
저자는 허시먼의 세속적인 측면을 ‘세계를 아우르는(of the world)’, ‘세상에 대한(about the world)’, ‘세계 속으로(to the world)’ 등 세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허시먼은 독특할 정도로 세계를 아우르는 인물이었다. 그는 유럽과 미국, 남미를 넘나들며 생활하고 연구했고 전 지구적인 사건들을 직접 겪고 관찰했다.
허시먼은 세상에 대한 사상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경제와 철학, 문학, 정치 분야에서 제시한 통찰은 상아탑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 경제학계가 배타적으로 전문화되는 추세를 우려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무엇보다 그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변화에 기여하는 학문을 하고자 했다. 그는 마르크스와 헤겔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들과 대비되는 ‘실천적 관념론’ 또는 ‘실용적 이상주의’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냉전이 한창이던 1952∼1956년 세계은행이 콜롬비아 정부에 파견한 경제 자문관으로 일했다.
당시는 라틴아메리카 등 제3세계에는 개발의 물결이 몰아치던 시대이기도 했다. 서방 세력은 대규모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시장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자본을 쏟아부었고, 공산주의 혁명의 불씨는 현지에서 지펴지고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의 확신에 회의적이었던 만큼이나 계획 경제를 지향하는 공산주의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개발 계획으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서방의 비전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은행 전문가들이 만든 개발 계획에 맞선 것에 대해 계획이란 외국인 전문가들이 인상적인 통계수치들로 만드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었을 뿐, 정작 그것을 실행하고 관리해야 할 콜롬비아 현지 사람들이 가진 지식은 부차적이거나 비과학적이거나 혹은 아예 그보다도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지인들은 변화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에서 반발한 것이다.
허시먼은 콜롬비아와 콜롬비아 사람들이 그저 전통의 관습에 빠진 채 무기력하게 원조나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봤다. 그는 저개발사회에서 희소한 것은 자본이나 중산층, 기업가 정신 등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기량, 즉 ‘개발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개혁이란 ‘변화를 강제하고 추동해낼 수 있는 긴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본 허시먼은 경제개발은 외부에서 부과되거나 도입되는 것도 아니고, 구세주가 나타나 특별하고 신비로운 힘을 내놓음으로써 이뤄 주는 것도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개혁의 과정에는 현지인들과의 불안정한 연합, 현지인들이 알고 있는 기민하고 복잡한 전술이 필요하다고 본 허시먼은 사무실에 틀어박혀서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는 대신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실행 과정의 모든 측면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려 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허시먼은 말년에 하버드대학을 비롯해 수많은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등 명예를 누렸지만, 노벨경제학상은 받지 못했다.
저자는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우선 실천적 관심에서 촉발된 사유의 실마리를 좇아 거대 이론의 맹점을 파고들었을 뿐, 자신만의 학파를 형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 갈수록 수학적 분석으로 경도되는 경제학계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경제학의 협소한 영역에 갇히지 않고 학문 간 경계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