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아마르티아_센
- 번역: 번역/김승진
- 출판사: 출판사/생각의힘
- 발행일: 2024-06-20
- origin_title: Home in the World- A Memoir
- 나의 평점: 8
- 완독일: 2024-07-04 00:00:00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 Befor Qustion
경제학 이야기에서 ‘센 지수’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그분 이다. 2024년 90세!!
YG님 벽돌책 읽기 - 7월
2. Synopsis (개요)
2.1 저자 - 아마르티아 센
[아마르티아 센](아마르티아 센) (Amartya Sen)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 철학 교수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재직했고 1998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며 미국경제학회장, 인도경제학회장, 국제경제학회장, 계량경제학회장을 지냈다. 『집합 행동과 사회 후생(Collective Choice and Social Welfare)』(1970, 2017), 『자유로서의 발전(Development as Freedom)』(1999), 『아마티아 센, 살아 있는 인도(The Argumentative Indian)』(2005), 『정체성과 폭력: 운명이라는 환영(Identity and Violence: The Illusion of Destiny)』(2007), 『정의의 아이디어(The Idea of Justice)』(2010) 등 다수의 명저를 집필했으며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2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문학 훈장(National Humanities Medal)을 받았고 2020년에는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이 수여 연설을 한 독일 서적 협회 평화상(Peace Prize of German Book Trade)을 수상했다.
2.2 주제
2.3 기획 및 지필 의도
2.4 주요 등장 인물
2.5 전체 줄거리
3. After My Idea
3.1 Insight
- 어느 한 편에 속하여 매몰되지 않고, 모든 것들 두루 이해하며 , 고집하지 않는거
- 편견을 최대의 적으로 여기기
- 센은 경제에 소통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이책을 읽은 것이 쉽지 않았다. 말과 글은 어렵지 않으나, 그 내용이 어려웠다 그가 만난 유명?하고 거대한 이들이 나는 누군지 모른다. 그래서 그 만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감흥이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는게 없으니 그냥 누굴 만났는지, 흔한 영혼 없는 인스타의 자랑질 사진처럼 자랑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저변에는 어떤 편견도 없고 어떤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균형잡힌 생각의 전개를 통해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이런거 구나라는 느낌은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느낌, 불평등과 편견을 거부하는 그의 생각과 철학이 나는 좋다. 약자를 위하고, 격차가 거져가는 이 세상을 위한 그만의 노력 - 센지수 - 케인즈가 고민했던 생각들 과 어느 부분 일맥상통하는 듯하고 약자인 나의 입장에서 반갑고 감사하다.
앞부분의 인도의 역사부분은 그 시대를 경험하고 지나온 증인의 입장을 통해 듣게 되서 좋았다 영국의 횡포와, 인도의 분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관계등에 대해 알게 되어 유익했다.
3.2 After Qustion
만약 영국이 조선을 지배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동양의 보이지도 않던 조선은 대영제국의 입맛에 맞지 않았을것, 러시아,중국,미국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원도,대지 크기도,기술도 없는 가난에 고지식한 나라 만약, 그랬다면 영국에 의해 조선의 깊이가 많은 학자들에 의해 더 세계적으로 남겨졌을것 같은데 아쉽다 라는 생각도 해본다 251페이지 읽으며. 헌데, 이런 생각또한 , 약소국의 생각이다. 누군가의 지배를 통해 성장되고, 스스로를 알릴수 있다는 생각!!!
- (why)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왜 Home in the world 라고 지었을까. 자신의 홈이 지구전체라는 그의 의도일까 마지막장에서 센은 계급사회를 강하게 비판한다. 애덤 스미스가 그랬던 것처럼,,, 노예제를 비판단다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홈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억압하지 말고 지배하지말고, 소통하며 토론하며, 공유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 (how)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 (where) 어느 곳에서 쓴 책인가? 어느 것을 위해 쓴건인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디에서 읽어야 하나? 그곳은 어떤 곳인가?
- (when) 이책은 언제 쓰여졌는가?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언제를 기준으로 쓰였는가? 언제 할것인가?
- (who) 저자는 누구인가?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 누구를 위해 저자는 말하는가?
- (why) 이책을 통한 질문을 만들기
- 질문 1.
- 질문 2.
- (what)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라는 무엇?
- 알게된 것은 무엇인가?
- 해야할건 먼가?
-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먼가?
- 이 책의 특징은 먼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 어렵웠다 “그믐” 모임을 통해 , 모음 지기의 해석을 통해 센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기에 좋았다
3.3 Top 3 Highlight
4. Key Word 책에서 뽑은 키워드 정리
[인도 역사](인도 역사)
4.1 키워드 1
키워드-제목 1
6.책 밑줄 정리 (책 밑줄 전체,page)

1933년 11월 3일: 아마르티아 센 출생.
1936년~1939년: 아마르티아 센 3세부터 5세까지 가족과 함께 버마 만달레이에서 거주.
1940년: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이끄는 이슬람 연맹이 인도를 힌두교, 이슬람교 종교에 따라서 분리한다는 ‘라호르 결의’ 발표. 이후 1940년대 힌두-이슬람 사이에 종교 갈등 본격화.
1941년 8월 7일: 라빈드라나트 타고르(80세) 서거.
1941년 10월: 아마르티아 센(7세) 산티니케탄 학교로 전학.
1941년 12월 7일: 일본군 진주만 폭격.
1942년 5월 17일: 일본군 버마(미얀마) 진격. (feat. 아웅 산이 이끄는 버마 독립군)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일본 점령. 버마에서 인도 동부 벵골 지역으로 대규모 난민 이주.
1942년 하반기~1944년 상반기: 1943년 벵골 대기근.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 분리 독립. (1971년 12월 16일 인도 동부 벵골 지역의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다시 분리 건국.)
1947년 8월 15일: 인도 독립. 인도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당시 57세, 1947~1964년 재직). 독립 당시 아마르티아 센(14세)은 산티니케탄 학교 학생.
1948년 1월 30일: 마하트마 간디(78세) 서거.
1951년 7월: 아마르티아 센(17세) 캘커타(콜카타) 프레지던시 칼리지 입학(경제학 전공, 수학 부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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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분절적 관점 포용적 관점 세계의 문명을 바라보는 데 매우 상이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분절적’인 관점으로, 관찰되는 다양한 현상과 특징들을 꽤 명백히 서로 구별되는 각기 다른 문명들의 발현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 이 접근은 서로 다른 문화권 사이의 적대가 더해진 상태로 최근에 상당히 유행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문명의 충돌’을 불러올지 모른다는 위험을 드리우고 있다.
다른 하나의 접근 방식은 ‘포용적’인 관점으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문명(세계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이 서로 다른 형태로 발현된다고 보고 그것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 문명은 상호 연결된 뿌리와 가지를 통해 하나의 생명을 이루고 있으며 가지 끝에서 서로 다른 꽃을 피운다. (…) 내가 분절적 접근보다는 포용적 접근 쪽에 더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 명백히 볼 수 있을 것이다. ”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19~20쪽, 아마르티아 센 지음, 김승진 옮김
1부
1장: 다카와 만달레이
#1930년 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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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벵골의 강들

강의 양면적인 속성은 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역할을 찾고자 하는 인간의 고투에 대한 매력적인 비유로 제격이다. 사회 역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목숨을 쓸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56
3장: 벽이 없는 학교
에바 콜로르니는 우리가 3월에 읽었던 벽돌 책 『앨버트 허시먼』의 주인공 허시먼의 조카입니다. 허시먼의 누나인 우르줄라 히르슈만과 이탈리아의 지식인이자 반파시즘 운동가 에우제니오 콜로르니 사이에서 태어났죠.
4장: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는 인도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철학자, 음악가, 화가로, 191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https://weekly.khan.co.kr/khnm.html?www&mode=view&art_id=201609051815211&dept=
산티니케탄 학교 설립 노벨문학상 이성을 중시하였으나, 서구 세계에 의해 신비주의자로 취급당함 방글라데시는 타고르의 노래중 하나인 <아마르 소나르 방글라> 를 국가로 선택 인도가 <자나 가나 마나> 를 국가로 택했어서, 그의 곡 2개가 2개 국가가 된다.
외할아버지
5장: 논쟁의 세계 - 타고르이 이성주의
서구는 동양을 오리엔탈리즘 적 사고 방식으로 타고르를 신비주의자로 받아들임
6장: 과거의 현재 - 산스크리트어
#지식 우리가 ‘지식’ 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대부분은 우리가 이해한 것들을 특성별로 ‘범주화’ 한 것이라는 그의(외 할아버지 크시티 모한 센) 통찰 159
붓다
산스크리트어와 수학의 매력에 빠지다.
날란다 대학 - 세계 최초의 대학 날란다 대학(Nalanda University)은 고대 인도의 중요한 교육 기관 중 하나로, 현재의 비하르 주에 위치해 있습니다. 기원후 5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번성한 이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로 여겨지며, 불교 학문과 철학의 중심지였습니다.
2부
7장: 마지막 기근
기아는 사람들이 시장에서 충분한 식품을 구매할 수 없어서 발생한 현상이었지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식품량이 충분하지 못해서 발생한 현상이 아니었다. 나는 1970년대 세계 곳곳의 기근을 연구하면서 ‘가용한 총식품량(food availability)‘이 아니라 각 가정이 가지고 있는 ‘식품 접근 역량(food entitlement)‘에 초점을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190
악몽 같은 뱅골 대기근을 보면서 나는 이러한 기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만들 방법을 찾겠다고 결심했다. 196
8장: 벵골과 방글라데시라는 개념
(아버지) 네가 알게 될 어떤 사악한 사건에 대해서도 그보다 더 혐오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거야. 이것은 불합리한 폭력으로 가득한,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이야.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친절하고 인간적인 얼굴만큼이나 엄연한 실재이고 현실이라고 198
#빈곤 빈곤은 살해당할 위험이 굉장히 높은 상황을 무릅쓰지 않을 자유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었다. 200
이 사건은 오랫동안 내 생각을 지배했고, 빈곤이 사람에게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빈곤은 살해당할 위험이 굉장히 높은 상황을 무릅쓰지 않을 자유도 포함해 모든 종류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계급과 매우 관련이 크다.
1940년대에 힌두-무슬림 폭동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대부분은 커뮤널 정체성으로는 무슬림과 힌두로 서로 달랐지만 계급 정체성으로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은 다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200
벵골 분할 논쟁
#1905년 영국의 벵골 분할(Bengal Partition)은 인도에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 중 하나로 배경과 목적
- 행정적 이유: • 벵골 지방은 인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였고, 행정적으로 관리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영국 당국은 효율적인 행정을 이유로 벵골을 분할하려 했습니다.
- 정치적 동기: • 벵골은 인도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지였고, 특히 캘커타(Calcutta)는 인도의 지식인과 정치 운동가들이 집중된 곳이었습니다. 영국은 벵골 분할을 통해 민족주의 운동을 약화시키고자 했습니다. • 또한, 힌두교도와 무슬림 인구를 분리하여 ‘분할하여 통치한다’(Divide and Rule)는 정책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영국령 인도제국의 수도 캘커타 → 델리로 이전 #1911년
- 캘커타의 역할: • 캘커타는 1772년부터 영국령 인도의 수도로 기능했습니다. 벵골의 경제적 중요성과 전략적 위치 덕분에 캘커타는 영국의 인도 통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캘커타의 위치는 영국이 인도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기에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인도의 북서부와 중부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웠습니다.
- 델리의 중요성: • 델리는 인도의 역사적, 문화적 중심지 중 하나로, 여러 왕조의 수도로 기능했습니다. 그 위치는 인도의 중앙부에 가까워, 다양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이 있었습니다. • 델리는 또한 북서부 국경과 가까워 영국의 군사적, 방어적 관점에서도 중요했습니다.
조지 5세의 발표: • 1911년 12월 12일, 영국의 조지 5세(George V)는 델리에서 열린 델리 대관식(Durbar)에서 공식적으로 수도 이전을 발표했습니다. 이 대관식은 영국의 새로운 국왕이 인도 황제(Emperor of India)로 즉위하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 이 발표는 인도 전역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델리의 정치적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안정: 캘커타는 벵골 분할(Bengal Partition)과 같은 여러 정치적 사건들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이었습니다. 델리로의 수도 이전은 이러한 불안정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1972년 방글라다시 수립
힌두와 무슬림의 간극이 벌어진 것은 동인도회사를 통한 통치를 시작으로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게 되면서부터였다 #1793년 벵골 총독 콘월리스 경은 ‘콘월리스 법’ 이라 불리는 새 칙령 토지 소유자들이 국가에 내는 세금 액수를 ‘영구적으로’ 고정 토지소유자들은 소유권 보장 받고, 수입증가에 따른 과세도 면제 토지를 확보한 사람들 → 힌두인 지대를 내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 → 무슬림 콘월리스의 영구정액제는 농업 노동자들에게서 농업 활동을 개선하려는 인센티브를 없앴고 토지 소유에 기반한 불평등을 고착시켜 경제에 막대한 해를 끼쳤다.
🤔 대한민국의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검기, 6.25전쟁 이후 남북 분단, 남조선,북조선의 정치 , 현대의 국민의당과 민주당의 권력들.. 계속되는 가진자와 없는자들의 부조리에 대한 싸움… 인간의 세계는 똑같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기반이어서 그럴까. 아니다 인간의 이기심의 근원일것이다.
[방글라데시 국가 탄생 배경](방글라데시 국가 탄생 배경) #1947년 인도 독립 → 종교 기준 인도의 파키스탄 불리 → 서파키스탄(현재 파키스탄) → 동파키시탄(현재의 방글라데시) → 동파키스탄 인구가 대부분이지만 → 정치적,경제적 권력은 서파키스탄에 있음 → 서파키스탄의 탄압 → #1971년 3월 26일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 방글라데시 독립 선언 → 독립전쟁 시작 → #1971년 12월 16일 서파키스탄 항복 공식적 국가로 인정 받게됨
방글라데시의 뱅골 사람들을 통합시킨 요인 경제적, 정치적 역사를 공유하고, 벵골어를 지키기 위한 언어 운동 215 #1952년 2월 21일 방글라데시에서 ‘언어 운동의 날 Language Movement Day’ 대학에서 열리고, 파키스탄 당국이 폭력으로 해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9장: 저항과 분할
인도 독립 운동가 수바스 찬드라 보스 2차 대전 발발 → 영국에 독립위해 독일로 가 독일과 손잡는다 -> 독일이 도움이 크게 안된다 -> 일본으로 넘어간다 -> 일본에서 영국군으로 포로된 인도인들을 인계받고 -> 독립군 조직, 일본편에서 싸운다 -> 미얀마 임팔전투에서 패배 -> 일본의 패배 -> 망명중 사망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 1897-1945)
는 인도 독립운동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영국의 식민 통치에 맞서 싸운 혁명가입니다. 그의 강력한 민족주의적 열정과 무장 투쟁에 대한 신념은 인도 독립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초기 생애와 교육
1. 출생과 교육:
• 수바스 찬드라 보스는 1897년 1월 23일 인도 벵골 지방의 쿠타크(Cuttack)에서 태어났습니다.
•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였고, 보스는 뛰어난 학업 성적을 보이며 캘커타(현재의 콜카타)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공부하며 영국에서 인도 독립에 대한 열정을 키웠습니다.
2. 초기 활동:
• 영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보스는 인도 국민회의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치타란잔 다스(Chittaranjan Das)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스는 보스의 정치적 멘토가 되었고, 보스는 그의 조언 아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국민회의와의 관계
1. 정치적 경력:
• 보스는 인도 국민회의에 합류하여 점차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는 1938년과 1939년에 인도 국민회의의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 그러나 보스의 급진적인 접근 방식과 무장 투쟁을 지지하는 입장은 마하트마 간디와의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간디는 비폭력 저항 운동을 지지했기 때문에 보스의 입장과 충돌했습니다.
2. 인도 국민회의와의 결별:
• 1939년, 보스는 국민회의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는 결국 국민회의를 떠나, 자신의 정당인 전인도 포워드 블록(All India Forward Bloc)을 설립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인도 국립군
- 망명과 활동: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보스는 영국의 적인 독일과 일본의 지원을 받아 인도 독립을 추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그는 1941년 영국의 감시를 피해 독일로 망명했으며, 아돌프 히틀러와 만났습니다. 이후 그는 독일에서 인도 국립군(Indian National Army, INA)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 일본으로의 이동: • 1943년, 보스는 일본으로 이동하여 인도 국립군을 재조직했습니다. 일본의 지원을 받아 보스는 버마(현재의 미얀마)를 통해 인도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그는 인도 국립군의 지도자로서 “자이 힌드(Jai Hind)“라는 구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습니다.
- 임팔 전투와 패배: • 1944년, 보스의 인도 국립군은 일본군과 함께 임팔 전투에 참여했으나, 결국 패배했습니다. 이 패배는 보스와 인도 국립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최후와 유산
- 사망: • 보스는 1945년 8월 18일, 타이완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망에 대한 여러 이론과 의혹이 제기되었고, 그가 살아있다는 소문도 한동안 돌았습니다.
- 유산: • 수바스 찬드라 보스는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무장 투쟁과 혁명적 열정은 많은 인도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 그의 구호 “자이 힌드(Jai Hind)“는 오늘날도 인도의 중요한 애국 구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보스의 활동과 사상은 인도 독립운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그의 삶과 업적은 여러 책, 영화,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무함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 1876-1948)
는 인도 분할론을 주도한 인물로,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진나의 인도 분할론은 복잡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결국 1947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초기 생애와 정치적 배경
1. 초기 생애:
•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1876년 카라치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2. 정치적 경력:
• 진나는 초기에는 인도 국민회의(Congress Party)에서 활동하며, 힌두-무슬림 통합을 지지했습니다. 그는 인도 국민회의와 이슬람 교도연맹(Muslim League) 양측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 그러나 점차 힌두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무슬림의 권익 보호 필요성을 느끼며, 무슬림 교도연맹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도 분할론의 형성
1. 힌두-무슬림 갈등:
•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인도 국민회의는 점차 힌두 중심의 정당으로 변모하며, 무슬림들의 정치적, 경제적 권익 보호가 어려워졌습니다.
• 진나는 무슬림들이 인도 내에서 소수 집단으로 남을 경우, 그들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2. 이슬람 교도연맹의 변화:
• 1930년대 후반, 진나는 이슬람 교도연맹의 지도자로 부상하며 무슬림들의 독립적인 정치적 권리 확보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점차 무슬림들의 별도 국가 설립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3. 라호르 결의안:
• 1940년, 이슬람 교도연맹은 라호르 결의안을 채택하며,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에서 독립된 국가 설립을 공식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이 결의안은 파키스탄 설립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 진나는 이 결의안을 통해 두 민족 이론(Two-Nation Theory)을 제시하며, 힌두교도와 무슬림은 각기 다른 민족으로서 별도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도 분할 과정
1. 제2차 세계 대전과 정치적 변화: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영국은 인도의 독립 요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영국은 인도 내의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협상에 나섰습니다.
• 그러나 인도 국민회의와 이슬람 교도연맹 간의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국민회의는 통일된 인도를 원한 반면, 교도연맹은 무슬림 국가 설립을 요구했습니다.
2. 영국의 최종 결정:
• 1947년, 영국은 인도를 두 개의 독립 국가,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진나의 강력한 주장과 무슬림들의 독립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이 독립하였고, 8월 15일에는 인도가 독립하였습니다.
분할의 결과와 유산
1. 분할의 영향:
• 인도 분할은 대규모 인구 이동과 폭력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으로 이동하며, 수십만 명이 사망하거나 다쳤습니다.
• 이 사건은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오랜 갈등의 원인이 되었으며, 양국 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 진나의 유산:
•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파키스탄의 초대 총독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는 파키스탄의 설립을 통해 무슬림들의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 진나의 두 민족 이론은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그의 정치적 유산은 파키스탄과 인도의 역사와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으로 만들어온 인도에는 그저 싸우지 않고 공존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일들이 있었다 - 크시티 모한 센 (외할아버지) 236
🤔 통일된 인도, 다름이 공존하던 인도를, 분리하려고 하는 세력에 강하게 반다한다. 센의 외할아버지..
…1940년대의 세계에서 고삐가 풀린 무슬림과 힌두의 분열적인 정치는 혼란과 유혈 사태를 일으켰고 뱅골을 포함해 인도 전역에서 힌두-무슬림 폭동이 일상적인 일이 되게 만들었다 237
10장: 영국과 인도
#1757년 6월 23일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 로 영국은 인도 통치를 시작했다고 볼수 있다. 243 [영국의 인도 통치](영국의 인도 통치)
벵골 지역에서 힌두와 무슬림 사이에는 중대한 적대가 존재하지 않았고, 무르시다바드의 시라지 정부는 힌두와 무슬림을 공평하게 대우한다는 정책 기조에서 이탈한 적이 없었다.(244쪽) “영국령 인도제국은 종교적 분열로 시작된 게 아니라 배반자가 보상을 받는 정교한 음모에서 시작되었다."(245쪽)
벵골은 유럽에도 잘 알려진 부유한 왕국 규모작은 영국군의 강력한 화기와 엄격한 규율 시라지의 군이 패배한 것 힌두-무슬림 분열 때문이라는 이론 → 사실이 아니다 244 시라지 의 삼촌 미르 자파르의 배신 → 전쟁 패배 프랑스가 시라지를 도운다고 입바른 소리만 하고, 전쟁시 지원 안함 245
🤔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200년과, 지배하지 않았을 200년, 비교하면, 지배당한게 낫다고 할수 있나? 247 🤔 조선을 일본이 지배한것에 대한 논쟁하고 똑같구나, 근대화가 일본때문에 가능했다는 논리!!
사례) 247 #1853년 미국이 일본의 에도 만에 도착, → 미국령 일본을 만들려 했으나, .. 안됨 → 일본은 후진국이 되었나? 아니다 제국주의적 통치에 놓이는 것은 외국으로부터 유용한 것을 배우고 외국과 연결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252
인도의 역사는 거대한 통합 제국의 시기와 분절된 왕국들의 시기가 번갈아오는 형태를 띠었다 254 아쇼카 마우리아, 굽타 왕조,알라웃딘, 무굴 제국 ..
이제 독립한 인도 정부는 그럴 필요가 없지만, 슬프게도 식민주의 시절과는 전적으로 다른, 국내의 권위주의적 정치와 관련된 이유로 오늘날 때때로 언론에 대한 제약은 식민 통치 시절 못지않게 심각하다. 이런 면에서, 다당제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언론의 기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영국 정부가 제국주의 시기에 인도에 선물로 가져다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영국이 떠나고 나서야 인도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261
3부
11장: 캘커타의 도시성
12장: 칼리지 가
13장: 마르크스에게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14장: 초기의 전투
암 진단받고 치료에 성공하다.
우리의 삶은 일련의 #경험 으로 구성되며 치료를 받는 시기도 삶의 경험 중 일부다. 따라서. ‘최종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즉 그 질병으로 죽느냐 아니냐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질병과 싸우고 있는 동안에 겪는 경험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전투 이후의 삶만이 아니라 전투 도중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암의 경우 전투 도중의 삶은 꽤 긴 기간이 될 수도 있다. 358
15장: 영국으로
4부
16장: 트리니티의 문
17장: 친구들과 동아리들
18장: 어떤 경제학인가?
#경제학 이라는 학문의 시작은, 경이로움이 아니라 비참한 거리의 불결함과 생기 없고 기쁨 없는 삶에 분노하게 하는 사회적 열정이다 - A.C 피구 430
표준적인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서 진정으로 더 명료한 분석을 발견하려면, 흔한 비판 …으로 과도하게 사용되어 반질반질하게 닳아버린 길에서 멀어져야 했다. 432
[사회선택 이론 Social Choice Theory](사회선택 이론 Social Choice Theory)
19장: 유럽은 어디인가?
20장: 대화와 정치
🤔 대학에, 좋은 대학에 가는 이유는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기 위해서 아닐까 한다. 결국 인생은 사람이다.
21장: 케임브리지와 캘커타 사이에서
22장: 돕, 스라파, 로버트슨
23장: 미국을 접하다
24장: 케임브리지를 다시 사고하다
나는 사회적 선택의 과정에서 토론이 어떻게 진전되며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지에 대해 가르치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떻게 리더를 정할 것인가,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 등의 주제가 표현의 자유운동을 이끌던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논의되었으므로 강의실 밖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과 강의실 안에서 토론되는 내용들 사이에 으스스한 컨연성이 있었다. 설령 내가 중요한 연결고리를 놓치더라도 이론과 실전을 결합하고 잇는 뛰어난 학생이 누군가는 꼭 있어서 그 부분을 채워주었다. p. 546
정체성은 분쟁의 원천이 될 수 있고정체성의 다층적인 측면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분열은 갑자기 나타날 수 있고, 적대를 부추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촉진될 수도 있다. p. 554
사람에게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하나의 정체성이 있다고 보는 잘못된 개념이 불러올 수 있는 해로움과 폭력은 정체성과 관련된 또다른 문제를 수반할 수 있는데, 사회조직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p. 555
정체성은 변화 요인에 절대로 영향받지 않게 면역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정체성이 계획된 조작에 의해 쉽게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p 558
카를 마르크스 본인은 자유가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핵심적으로 중요하다는 데 강한 관심이 있었는데 이에 반해 현실에서 벌어진 공산당 운동은 늘 개인의 자유에 그보다 훨씬 덜 공감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탈리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련부터 중국,쿠바,베트남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공산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 벌어진 일이었다. 565
5부
25장: 설득과 협력
1943년 벵골 대기근은 3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영국이 일본에 밀리면서, 자국 군대의 사기떨어질것을 염려하여 벵골어 신물을 검열하고 보도의 자유를 크게 제약했다 자유로운 소통의 제약이 발휘하는 파괴적 역활 - 영국이 인도에 한 일 579
“중요한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은 한 사람이 내려서는 안 되며 많은 사람과 논의해야한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투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는 개념은 오늘날에도 지극히 함의가 크다 583
케인즈와 존 스튜어트밀 의 사상도 이것 이다.
26장: 가깝고도 먼
#정의 에 대한 감각이 닿는 범위는 우리가 누구를 알게 되고 누구에게 익숙해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의에 대한 감각은 다른 이들과 마주치게 되는 기회에 의해 촉진 될 수 있고 여기에는 거래와 교환도 포함된다. 반대로, 타인이 익숙하게 여겨지지 않으면 그들을 내 생각에서 멀리 두게 되고 정의를 고려할 때 배제하게 될 수 있다.
타인과의 접촉은 더 큰 규모에서 도덕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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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관 문서
[조안 로빈슨](조안 로빈슨)
강양구님의 정리글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https://www.facebook.com/share/uk1Fza2R1swafZ6z/ 아마르티아 센. 아마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경제학자겠죠. 1998년 아시아인(인도 국적)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서 유명해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센은 자기를 칭하면서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만 강조하는 것을 두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그는 자기를 놓고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시아인이자 인도인, 방글라데시에 선조를 둔 벵골인, 미국과 영국 영주권자, 경제학자이자 취미 삼아 하는 철학자, 작가, 산스크리트어 학자, 세속주의와 민주주의의 강한 신봉자, 남자, 페미니스트, 이성애자이면서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를 옹호하며, 비종교적 생활양식을 채택하고, 힌두교 배경을 가졌으며, 비브라만이며, 내세를 믿지 않는 사람.”
어떻습니까? 센은 한 사람이 딱 하나, 혹은 두세 개의 정체성으로 규정지어지는 일에 평생 저항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가 경제학자이면서도 경제 성장만을 맹신하기보다는 ‘좋은 분배’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또 빈곤과 기아의 문제가 자유 또 민주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을 깊이 숙고해온 것도 이 때문이겠죠.
이런 고민에서 나온 센의 역작이 『자유로서의 발전』(1999년)입니다. 이 책을 내고 나서 10년 후에는 우리가 지향할 정의가 무엇인지를 따져 물은 『정의의 아이디어』(2009년)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센은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완전한 정의’와 ‘완벽한 공정’을 추구하는 강박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합니다.
센의 정치철학의 맥락에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논리 전개입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정의’와 ‘완벽한 공정’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특정한 가치와 그에 맞춤한 정체성을 최우선에 놓는 우를 범하게 되니까요. 그러다 보면, 결국 세상이 정의로워지기보다는 ‘완전한 정의’를 둘러싼 갈등만 불거지죠. (지금, 대한민국이 딱 그런 꼴입니다.)
센의 해법은 다릅니다. 다양한 가치가 경합하는, 또 그런 다양한 가치에 저마다 다른 우선순위를 두는 세상을 인정부터 하자는 것이죠. 그렇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서 합의 가능한 ‘부정의’부터 하나씩 제거해 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겠지만 그마저도 인간의 불완전함과 세상의 불확실성을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됩니다.
어떻습니까? (자기가 규정한) ‘세상의 오물’을 당장 쓸어버리고 싶은 성급한 사람이라면 이런 접근이 답답하기 짝이 없겠죠. 하지만, 실제로 역사는 이런 성급한 방식으로 더 나아진 사례가 거의 없죠. 여기까지 읽고서 아마르티아 센을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독자라면, 최근에 나온 그의 회고록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생각의힘)을 펼쳐야 합니다.
아마르티아 센은 1933년 인도 동부 벵골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벵골 지역은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힌두교-이슬람교 갈등으로 인도 영토에 남은 서벵골 지역과 (방글라데시가 된) 동벵골 지역으로 나뉘었죠. 이 갈등과 분할은 센에게 아주 깊은 영향을 준 역사적 맥락입니다. 이념에 따라서 남북으로 나뉜 한반도와 겹치는 대목이죠?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1933년부터 1963년까지 센이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인생 초기 30년에 초점을 맞춘 회고록입니다. 센이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대안 교육 기관 산티니케탄 학교, 캘커타(콜카타)의 대학,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 유학과 강사 생활을 거쳐 다시 인도 대학 교수로 돌아오는 과정을 그리죠.
이런 구성을 보고서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올해(2024년) 만 91세가 되는 센이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의 후편을 낼 가능성은 작습니다. (나오면 좋겠습니다!) 제가 저자라면 명성을 떨치면서 전 세계를 무대로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서 활동한 장년기 이후를 회고했을 텐데요.
책을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은 센이 자기 인생 초기 30년의 시시콜콜한 일화를 모아둔 그런 책이 아니었습니다. 30년간의 성장기(과거)에 초점을 맞추되 시선은 현재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현재의 중요한 문제를 논평하기 위한 소재로서 과거의 일화를 활용하는 책이라고나 할까요.
독자 처지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우선 센이 어떻게 (제목처럼) 지금의 세계인 정체성을 가진 지성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센이 지금 세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놓고서 어떤 견해를 가지는지, 그의 과감한 해석과 조심스럽지만, 설득력 있는 해법도 알 수 있습니다.
대안 교육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불거진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지도 센과 함께 고민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13장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지식인의 가장 설득력 있는 옹호까지 접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커다란 소득도 있었습니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언어 철학의 태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탈리아 출신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파시스트 감옥에 갇힌 안토니오 그람시의 “두뇌가 계속 기능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책을 공급한 친구)를 자세히 알게 된 일이죠. 스라파는 센의 지도 교수였고,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자유로서의 발전』이나 『정의의 아이디어』를 읽으면서 주눅이 들었던 독자라면, 이 책이 훌륭한 가이드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과 한국의 평범한 독자 사이의 유일한 장애물은 우리의 인도 현대사에 대한 무지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예를 들어, ‘검색’)으로 금세 극복할 수 있답니다.
『세상이라는 나의 고향』 이후 센의 책을 한 권 더 읽고 싶다면, 그가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쓴 『정체성과 폭력』(2006)을 권합니다. 센의 사상에 대한 아주 짧은, 하지만 핵심만 추린 소개를 접하고 싶다면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반비) 마지막 장(18장 ‘운명과의 약속: 콜카타와 케임브리지의 센’)도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의 초반부를 이해하려면 인도 현대사를 알면 좋습니다. 국내에 나온 인도 현대사 책 가운데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책은 『이옥순 교수와 함께 읽는 인도 현대사』(창비)였습니다. 300쪽 정도의 단행본 한 권 분량에 인도 현대사를 둘러싼 다양한 정보와 역사적 쟁점을 요령 있게 정리해 뒀어요.
센에게 영향을 준 사상의 은사 가운데 타고르가 있습니다. 이 책은 서구 지식인을 통해서 ‘신비주의자’로 오해를 받게 된 타고르를 재해석하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타고르를 포함한 아시아 지식인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꾸려고 했는지를 살펴보려면 판카지 미슈라의 『제국의 폐허에서』가 좋습니다. 안타깝게도 절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