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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고흐와 동생 테오의 형제애가 감동스럽게 다가온다. 고흐가 그림에 인생을 넣어 그렸다는게 위대한 예술가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

[!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빈센트_반_고흐
  • 번역: 번역/신성림
  • 출판사: 출판사/위즈덤하우스
  • 발행일: 2024-12-04
  • origin_title: -
  • 나의 평점: 9
  • 완독일: 2024-12-30 00:00:00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Befor Qustion

2. Synopsis (개요)

2.1 저자 - {이름}

2.2 주제

2.3 기획 및 지필 의도

2.4 주요 등장 인물

2.5 전체 줄거리

3. After My Idea

3.1 Insight

3.2 After Qustion

  • (why) 이 책의 제목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 (how)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어떻게 하라고 하는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 (where) 어느 곳에서 쓴 책인가? 어느 것을 위해 쓴건인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어디에서 읽어야 하나? 그곳은 어떤 곳인가?

  • (when) 이책은 언제 쓰여졌는가? 시대적 배경은 무엇인가? 언제를 기준으로 쓰였는가? 언제 할것인가?

  • (who) 저자는 누구인가? 주인공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들이 나오나? 누구를 위해 저자는 말하는가?

  • (why) 이책을 통한 질문을 만들기

    • 질문 1.
    • 질문 2.
  • (what)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라는 무엇?

    • 알게된 것은 무엇인가?
    • 해야할건 먼가?
    •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먼가?
    • 이 책의 특징은 먼가?

3.3 Top 3 Highlight

4. Key Word 책에서 뽑은 키워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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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키워드 1

키워드-제목 1

5.책 밑줄 정리 (책 밑줄 전체,page)

1874년 1월 테오에게 산책을 자주 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1879년 10월 15일 테오에게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무엇에 어울릴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어떻게 지식을 더 쌓고 이런저런 주제를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뿐이다.

사랑에 빠질 때 그것을 이룰 가능성을 미리 헤아려야 하는 걸까? 이 문제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는 안 되겠지.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지.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거니까. 1881년 11월 10 테오에게

곧 더 자세히 쓰겠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을 불행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속에서도 차분함을 느낀다. 위험의 한가운데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지. 우리에게 뭔가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니? 1881년 12월 말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흔히들 말하는 내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따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도 내 안에는 평온함, 순수한 조화, 그리고 음악이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가장 가난한 초가의 가장 지저분한 구석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마음이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런 분위기에 도달한다. 예술은 끈질긴 작업,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한 작업, 지속적인 관찰을 필요로 한다. ‘끈질기다’는 표현은, 일차적으로 쉼없는 노동을 뜻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려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A Girl in the Street, Two Coaches in the Background 1882년 8월


#화가 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1882년 7월 


#위대한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언젠가 모베는 “자네가 자네만의 예술을 계속 추구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 깊이 파고든다면, 자네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년 전의 일이다.

우리가 자신의 기술을 발전시키려 노력해야 하는 까닭은 오직 자신이 느끼는 것을 더 정확하고 심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며, 쓸데없는 말은 적을수록 좋다네. 그 밖의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지. 1884년 3월 친구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예술은 우리의 기술, 지식, 교육보다 더 위대하고 고차원적인 것이라는 인식 말일세. 예술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단지 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네. 더 깊은 원천에서, 바로 사람의 영혼에서 솟아나온 것 아닌가. 반면 예술에 결부된 능숙함과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종교가 자기 정당화를 위해 이론을 세우는 것을 연상시킨다네. 1884년 3월 친구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캔버스 #화가 #두려움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캔버스의 백치 같은 마법에 홀린 화가들은 결국 바보가 되어버리지.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한다.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무한하게 비어 있는 여백, 우리를 낙심케 하며 가슴을 찢어놓을 듯 텅 빈 여백을 우리 앞으로 돌려놓는다. 그것도 영원히! 텅 빈 캔버스 위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삶이 우리 앞에 제시하는 여백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1884년 10월

훌륭하고 유용한 일을 해내려는 사람은 대중의 승인이나 평가를 기대하거나 추구해서는 안 되며, 열정적인 가슴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들의 공감과 동참만을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르지만. 1885년 4월 13일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De Aardappeleters) #1885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그림의 주변에는 짙은 황금색이나 구릿빛이 칠해져 있어야 한다. 그 그림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부디 내 말을 잊지 말아라. 황금빛 색조와 함께 배치해야 그림이 더 잘 살아난다. 불행하게도 흐리거나 검은 배경에 놓인다면, 대리석 같은 질감이 죽어버릴 것이다. 그림자를 푸른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황금색이 이것을 돋보이게 해준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할 것 아니냐. 분명 “웬 쓰레기 같은 그림이냐!”는 말을 들을 게 뻔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있듯 너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1885년 4월 30일


나는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테다. 더 적극적인 사람이 더 나아진다. 게으르게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느니 실패하는 쪽을 택하겠다.

나는 인물이 아카데미식으로 정확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움직이고 있는 농부의 동작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현대 인물화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현대 예술의 진수이고, 그리스에서도, 르네상스 시기에도, 옛 네덜란드 화파도 하지 않은 것이다.

1885년 7월


네 건강과 일을 위해서라도 독신으로 지내서는 안 될 테고. 하지만 나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따금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벌써 그런 느낌을 갖는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반대여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이 지긋지긋한 그림에 염증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선가 리슈팽이 그랬지. “예술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잃게 만든다”고. 그건 정말 옳은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 역시 예술에 대해 넌더리를 내게 만든다. 1887년 여름


나는 그동안 힘든 일을 많이 겪은 탓에 빨리 늙어버린 것 같다. 주름살, 거친 턱수염, 몇 개의 의치 등을 가진 노인이 되어버렸지. 그러나 이런 게 무슨 문제가 되겠니? 내 직업이란 게 더럽고 힘든, 그림 그리는 일 아니냐. 스스로 원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즐겁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비록 내 젊음은 놓쳐버렸지만 언젠가는 젊음과 신선함을 담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불확실하나마 미래를 상상하며 지낸다.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한 번도 좋고 여러 번도 좋다.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공부는 사람을 둔하게 만들 뿐이다. 공부하겠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니 네 스스로 퇴보하길 바라지 않는 이상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 많이 즐기고 많은 재미를 느껴라.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예술에서 요구하는 것은 강렬한 색채와 강한 힘을 가진 살아 있는 어떤 것임을 명심해라. 네 건강을 돌보고 힘을 기르고 강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공부다.

나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비뚤어지고 적의에 차서 성을 잘 내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할 때라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 약국에서 파는 약보다 더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발전하게 돼 있다.

그러니 너무 기를 쓰고 공부하지는 말아라. 공부는 독창성을 죽일 뿐이다. 네 자신을 즐겨라! 부족하게 즐기는 것보다는 지나치게 즐기는 쪽이 낫다. 그리고 예술이나 사랑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라. 그건 주로 기질의 문제라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1887년 여름 , 여동생 윌에게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해야겠지. 평범함 때문에 퇴보했거나 그 가치를 잃어버린 생각들에 대해 말이다. 게다가 형은 항상 남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란다. 1888년 2월 , 테오가 동생 윌에게, 형을 생각하며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때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1888년 6월


Il raccolto (Van Gogh) 요즘은 너에게 그림을 보내기 위해서 조금씩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수확」을 그리는 동안 밭에서 직접 수확을 하고 있는 농부보다 결코 편하지 않은 생활을 했다.  1888년 7월


이곳에 오면서 겪었던 발작 후에 나는 더 이상 어떤 계획도 세울 수가 없고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건강은 확실히 좋아졌지만 희망이나 무언가를 이루려는 욕망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이제는 오직 필요에 의해,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고통받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그림을 그릴 뿐이다. 1888년 7월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할 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 1888년 7월

실패를 피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려면, 고갱도 나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겠지. 바로 그 때문에라도 우리는 돈이 가장 덜 드는 곳에 정착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한 평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림을 얼마 못 팔거나, 전혀 팔지 못하더라도.

결론을 내렸다. 수도사나 은둔자처럼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아가기로. 8월


Café Terrace at Night 1888년 9월


형은 내게 빚진 돈 얘기를 하면서 내게 갚고 싶다고 말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내가 형에게 원하는 것은 형이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내는 거야. 내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건 맞아. 우리 둘 다 가진 게 별로 없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지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하지만 그 정도만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무것도 팔지 않더라도 말이지. 1888년 10월 27일 테오가 형에게


Almond Blossoms 1890년 조카에게 선물할 그림 어머니께서도 요즘 저처럼 테오와 제수씨 생각을 많이 하실 거라 생각해요. 무사히 분만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기쁘던지요. 윌이 도와주러 가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사실 전 태어난 조카가 아버지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1890년 2월 15일


일전에는 길에서 마주친 디아스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자네 형에게 내 칭찬을 전하게. 그의 그림은 정말 아주 훌륭하네”라고 하더군. 모네는 형의 그림들이 이번 전시에 참가한 그림들 중 최고라고 했어. 아주 많은 화가들이 내게 형 그림 얘기를 했어. 1890년 4월 23일


부탁인데 오리에 씨에게 더 이상 내 그림에 대한 글을 쓰지 말아달라고 전해다오. 그는 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게다가 난 너무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 기분을 전환시켜주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떠들어대는 걸 듣는 일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1890년 4월 29일


주요 인물들

주요 인물 소개

 

 

 

기요맹, 장 바티스트 아르망(Jean-Baptiste-Armand Guillaumin 1841〜1927) 프랑스 화가. 세잔, 피사로 등과 교류하면서 인상주의 운동에 참가했다. 도시 풍경을 주로 그렸다.

도미에, 오노레(Honoré Daumier 1808〜1879) 프랑스 화가. 파리 서민의 생활을 생생하고 신랄하게 풍자했다.

도비니, 샤를 프랑수아(Charles-François Daubigny 1817〜1878) 프랑스 화가.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으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뒤러, 알브레히트(Albrecht Dürer 1471〜1528) 독일 화가·조각가. 독일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힌다.

그루, 앙리 드(Henri De Groux 1867〜1930) 사실주의 기법의 벨기에 화가.

라파엘리, 장 프랑수아(Jean François Raffaëlli 1850〜1924) 프랑스 화가. 파리 교외의 풍경과 사람들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크레용의 발명가로 유명하다.

레르미트, 레옹 오귀스탱(Léon-Augustin Lhermitte 1844〜1925) 프랑스 화가. 쿠르베풍의 사실주의에 감상적인 느낌이 더해진 농민회화와 종교화를 그렸다.

루소, 테오도르(Théodore Rousseau 1812〜1867) 프랑스 화가.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풍경화를 그리다가 퐁텐블로 숲의 마을인 바르비종에 정착하여 어둡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숲을 주로 그렸다. 인상주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룰랭, 요제프(Joseph Roulin) 고흐가 아를에 머물 때 친하게 지내던 우편배달부. 고흐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로이스달, 야코브 반(Jacob van Ruysdael 1628〜1682) 네덜란드 화가. 감성적인 해석이 개입된 풍경화를 주로 그렸다.

바스티앵 르파주, 쥘(Jules Bastien-Lepage 1848〜1884) 프랑스 화가. 카바넬의 제자이며 쿠르베와 밀레의 영향을 받았다. 전형적인 자연주의 그림을 그렸다.

리베르만, 막스(Max Liebermann 1847〜1935) 독일 화가. 쿠르베와 밀레의 영향을 받았다. 사실주의 기법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마리스, 마테이스(Matthijs Maris 1839〜1917) 네덜란드 화가. 헤이그 화파의 일원. 도시 풍경과 바르비종 화파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렸다. 

멜러리, 자비에르(Xavier Mellery 1845〜1921) 벨기에의 상징주의 화가.

모베, 안톤(Anton Mauve 1838〜1888) 네덜란드 화가. 야코프·마테이스·빌렘 마리스 형제와 함께 헤이그 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몽티셀리, 아돌프(Adolphe Monticelli 1824〜1886) 프랑스 화가. 그림물감을 두툼하게 칠해 보석처럼 광채를 내는 기법을 썼다. 고흐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슐레, 쥘(Jules Michelet 1798〜1874) 프랑스 역사학자·수필가. 국가 정체성·정치적 참여·낭만주의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입각해서 프랑스 역사를 창조적으로 해석했다. 

밀레, 장 프랑수아(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프랑스 화가. 자연주의 기법으로 농촌 풍경과 농부들의 삶을 주로 그렸다.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밀레이, 존 에버렛(John Everett Millais 1829〜1896) 영국 화가. 로제티, 헌트 등과 함께 라파엘 전파 연합을 결성했다. 

호이엔, 얀 반(Jan van Goyen 1596〜1656) 네덜란드 화가. 초기에는 묘사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을 그렸으나, 점차 단순하고 통일성 있는 그림을 그렸다. 강물, 모래언덕, 오솔길 등을 즐겨 다루었다. 

베르나르, 에밀(Émile Bernard 1868〜1941) 프랑스 화가. 고흐, 고갱, 세잔 등과 교류했다. 

스토, 헤리엇 비처(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 미국의 여성 소설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썼다.

라파르트, 안톤 반(Anton van Rappard 1858〜1892) 네덜란드 화가. 습작여행으로 파리에 갔을 때 테오와 알게 되었다. 1880년 11월 테오의 권유로 고흐가 그를 방문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   

스티븐스, 앨프리드(Alfred Stevens 1823〜1906) 벨기에 화가. 자연주의 기법으로 세속적인 사회상을 그렸다. 

앙크탱, 루이(Louis Anquetin 1861〜1932) 프랑스 화가. 도시 풍경과 여성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오스타데, 아드리아인 반(Adriaen van Ostade 1610〜1685) 네덜란드 화가. 풍속화를 주로 그렸다. 

이스라엘스, 요제프(Jozef Israëls 1824〜1911) 네덜란드 화가. 가난한 사람과 노인을 주로 그렸다. 헤이그 화파의 일원.

자케, 마티외(Mathieu Jacquet 1545〜1611) 프랑스 조각가. 조각가이자 건축가로서 평생 퐁텐블로에서 활동했던 앙투안 자케 Antoine Jacquet의 아들.

자크, 샤를 에밀(Charles-Emile Jacques 1813〜1894) 프랑스 화가·판화가. 바르비종의 전원 풍경을 그렸다. 19세기 후반, 동판화 부활의 선구자. 

뒤프레, 마리 쥘(Marie-Jules Dupré 1811〜1889) 프랑스 화가·석판화가. 바르비종파의 일원으로 서정적인 풍경화를 그렸다.

카바넬, 알렉상드르(Alexandre Cabanel 1823〜1889) 프랑스 화가. 고전주의 전통에 입각하여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제2제정과 제3공화국의 공식화가.

코레조,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 Correggio 1494〜1534)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가. 파르마파의 일원으로 원근법과 명암 묘사에 뛰어났다.

코로, 장 바티스트 카미유(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 프랑스 화가. 고전주의의 전통을 잇는 19세기 미술계의 거장. 

쿠르베, 구스타브(Gustave Courbet 1819〜1877) 프랑스 화가. 대표적인 사실주의자. 19세기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테르보르히, 헤나르트(Gerard Terborch 1617〜1681) 네덜란드 화가. 부르주아 가정의 실내 정경을 섬세한 심리묘사를 담아 그렸다.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 벨라스케스의 영향을 받았다. 

고티에, 테오필(Théophile Gautier 1811〜1872) 프랑스 시인·소설가· 비평가·언론인. 낭만주의자로서 미를 위한 미,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했다. 

토레, 테오필(Théophile Thoré 1807〜1869) 프랑스 미술평론가. 필명으로 윌렘 토레, 윌렘 뷔르제, 토레 뷔르제 등을 썼다. 

티솟, 제임스(James Tissot 1836〜1902) 19세기 말 영국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화가·판화가. 파리의 풍경과 인물을 주로 그렸다. 자크 조셉이었던 이름을 제임스로 바꿨다.

퓌비 드 샤반, 피에르 세실(Pierre-Cécile Puvis de Chavannes 1824〜1898) 프랑스 화가. 차분한 색조와 구도로 소르본 대학, 파리 시청 등에 벽화를 그렸다. 

할스, 프란스(Frans Hals 1581?〜1666) 네덜란드 화가. 개성 있는 인물화를 그렸다. 당대 유럽 미술계의 일인자로 평가받았다.

6.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

  • 농촌을 그리면서 향수 냄새가 나게 그려서는 안된다는 고흐의 생각, 맘에 든다
  • 인생이 쉽지 않고, 영화 같지 않다는것, 고난과 고통, 역경이 있고 그것을 이겨 내야 한다는 생각들
  • 고흐는 밀레를 아주 존경했는데, 밀레도 궁금하다
  • 여동생에게 공부대신 - 문학을 위해 - 차라리 연애를 더 많이 해보는게 좋다고 말한다
    • 실제 체험이 공부임을 그는 말한다.
  • 여동생에게 해주는 고흐의 말이 달달하다
    • 너무 애쓰지마라
    • 예술가로 살려면 공부를 많이 하지 마라, 독창성을 죽인다
    • 네 자신을 즐겨라
    • 예술과 사랑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 예술을 하는 것은 기질이 필요하다
  •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것이다.
  • 테오는 형을 어떻게 생각했을가 궁금했는데, 여동생에 쓴 편지를 통해 알게되었다
    • 마음이 따뜻한 사람
    • 생각을 뒤집어 신선힘을 추구한 사람
    • 기존으 선악구도의 고지식을 싫어한 사람
    • 태오는 형을 그리워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원했다.
  •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 그의 삶을 글로나마 읽고 이 편지의 내용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 그의 고생을 내 어찌 알랴
  • 나는 죽어서 저 안드로메다 너머의 별로 갈것이다.
    • 빛의 속도로 수십억 광년을 가야한다.
    • 그곳을 나는 한걸음 한걸음 걸어 갈것있다.
    • 왜냐 하면, 죽음 이후는 나에게 영원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라는 고흐의 글을 보고
  • (19세기)당시 1프랑은 현재(21세기) 150$ 수준
    • 고흐 편지에서 1점당 100프랑 팔리는걸 대략 기준삼은듯함
    • 현재가치로 15,000 달러 = 한국돈 15,000,000원
  • 고갱이 고흐의 초상화를 비꼬듯 그리고, 성격불화로 해어지려하고, 고흐는 귓볼을 잘른다
    • 고갱이 태오에게 전보를 쳐서 테오가 아를로 왔는데
    • 고흐는 동생을 걱정하게 만든 고갱에게 불만의 편지를 쓴다 1888년 12월
  • 마을 사람들이 - 80여명 이란다 - 고흐를 정신병원에 갇어둔다
    • 고흐는 화가 났지만 분노하지 않았다.
    • 분노했다면 정신 이상자로 간주했을 거라는걸 알아서 참았다고 한다.
    • 대단한 분이다.

7. 연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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