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디디에_에리봉
- 번역: 번역/박정자
- 출판사: 출판사/그린비
- 발행일: 2012-02-15
- origin_title: Michel Foucault (1989년)
- 나의 평점: 10
- 완독일: 2025-12-29 16:05:39
📚 미셸 푸코 1926~1984

1. 🖐️ Before Reading (읽기 전)
1.1 동기와 기대
2. 📜 Synopsis (개요)
Summery
이 책 『미셸 푸코 1926-1984』는 20세기 문제적 철학자 미셸 푸코에 대한 내밀하고 충실한 평전입니다. 저널리스트 디디에 에리봉은 푸코의 철학과 개인적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의 가족, 친구, 동료, 스승 및 적수까지 인터뷰하고 모든 글을 파헤쳐, 동성애로 인한 어린 시절의 고통, 자살 충동, 학계에서의 복수, 동성애 문화에 대한 열광, 에이즈 이후의 삶 정리 등 인간 푸코의 다채로운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렸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푸코의 일대기를 넘어, 그의 주요 저서들이 탄생하고 논쟁을 일으킨 맥락, 그리고 그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에 어떻게 개입하고 투쟁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료로서 푸코의 삶과 사유, 그리고 프랑스 현대사를 동시에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Keyword
#미셸푸코, #철학자, #평전, #동성애, #프랑스철학, #권력, #사유, #현대사, #지식인, #디디에에리봉
Author
저자(글): 디디에 에리봉 현재 아미앵 대학 철학ㆍ인문학ㆍ사회과학대학 소속 교수이며, 이전에는 『리베라시옹』,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기자였습니다. 프랑스 지성사에 관심이 많은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마이너리티 문제와 퀴어이론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미셸 푸코』, 『게이문제에 관한 성찰』, 『마이너리티의 도덕』, 『렝스로의 귀환』 등이 있습니다. 대담집으로는 『조르주 뒤메질과의 인터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의 인터뷰』 등이 있습니다.
번역: 박정자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논문 제목은 『비현실의 미학으로의 회귀: 사르트르의 ‘집안의 백치’를 중심으로』입니다. 푸코에 관심이 많아 『성의 역사』 제1권 ‘앎에의 의지’를 1979년 『성은 억압되었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한국에 푸코를 처음 소개했습니다. 그 외에도 푸코의 전기 『미셸 푸코』, 『만화로 읽는 푸코』 등의 입문서와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등의 푸코 저서를 번역했습니다. 저서로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빈센트의 구두』, 『로빈슨 크루소의 사치』, 『시선은 권력이다』 등이 있습니다.
3. 🔆 Insight & Deep Dive
3.1 깨달은 점 (Aha Moment)
독서 모임을 통해 읽은 이책, 자의가 아니었다. 미셸 푸코가 누군지 몰랐다. (다행히 처음 들어본 건 아니였다. 그가 구상한 감시하난 감옥을 알고 있었더라..흠) 그가 누군지, 어떤 위대한 일을 이루었는지 모른 상태에서 그의 자취를 돌아보는건 곤혹스럽다. 그런데, 그의 철학을 접해가면서 , 그가 보낸 젋은 시절과 그의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배척과 그의 정신적? 고통들…그 고통과 깊은 사유를 통해 , 역사를 이해하고 시대를 이해해서 분석한 이성과 광인에 대한 그의 주장에 공감이 되고, 심지어 흥미롭기까지 했다. 니체와 고흐의 천제성 또한 다시한번 느껴본다.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 비광기,광기 , 이성 비이성- 것들은 사회적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적 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말은 , 우리가 알고 있고 ,광기라 배척하는 그 기준 자체가 언젠가의 시선에서는 잘못, 다른 광기라고 보게 된다는 것. 절대적 선은 없다는, 푸코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배척,피박,… 때문에 이런 날카로운 생각을 체계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을까?
푸코는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가고 우리가 서 있는 땅에 대해서 그 땅을 만든 그 체제를 만든는 권력이라는 구조물, 땅, 기초를 파헤친다. 권력은 어떻게 개인을 조정하고 힘을 행사하는가 푸코의 삶에서 그것을 드러내는것을 최대 업으로 삼은듯하다.
그는 말년에 성에 대한 성찰을 하고 억압받고 규제받는 성에 대해 책을 낸다 그는 미국에서 자유롭게 동성애를 즐기며 행복해 한다 그 자유로운 삶이 그에게 AIDS를 걸리게 만들고 , 갑자기 죽게된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조금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우리 세상의 권력을 드러내어 주었을 텐데 안타깝다.
3.2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작가나 위인들의 업적과 그들의 삶을 분리해서 봐야 할것 같다. 욕망을 제어하는게 인간의 능력이 아닐까.
3.3 내 삶에 적용하기 (Action Item)
- 호기심
- 역사를 통해 근원을 찾아가는,
- 남의 해석물이 아닌 자신이 찾아서 확인하는 연구자의 자세
- 나의 독서나 일하는 방식은 얼마나 프로다운가
4. 🏆 Top 3 Highlights
📌 첫 번째 문장
“이론 작업을 시도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내 주변에서 전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내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하는 사건들 속에, 내가 관여하는 제도들 속에,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균열,미세한 진동,기능장애를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작업을 수행했다. 다시 말하면 내 자서전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생각:
📌 두 번째 문장
광기의 새로운 승리와 계략. 광기를 측정하고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설명한다고 믿는 이 세계는 이제 거꾸로 그 광기 앞에서 자신을 변명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논쟁과 노력 속에서 세계는 니체, 반 고흐, 아르토 등의 작품을 거슬러 자신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기에 대한 지식은 결코 이 세계에 확신을 주지 못하며 오로지 그 광기의 작품들만이 이 세계를 설명해 줄 뿐이다
💭 생각: 정상인과 광인, 우리가 존경하고 위대하다고 하는 니체나 고흐는 경계에 있던 사람들이다.
📌 세 번째 문장
575 (푸코, 쾌락의 활용 서문) 내 작업의 동기는 아주 간단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나의 수고는 - 단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허용해 주는 그러한 호기심이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 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런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우리 인생에는 ‘성찰과 관찰을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기가 지금 보고있는 것과 다르게 지각할 수도 있다’ 라는 의문이 반드시 필요한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면 철학이란 - 철학적 행동이란 -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사유 에 대한 비판작업,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것은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 아닐까"
💭 생각: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나에게서 떨어지게 만드는, 지식, 그것을 위한 호기심, 지적 능력을위해서가 아니라 나에 대해 우리에 대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지적 욕구, 호기심, 푸코는 그것을 평생 가지고 살아 내었다.
5. 📌 Key Concepts
5.1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요약-이성의 탄생과 광기의 추방](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요약-이성의 탄생과 광기의 추방) -> 광기를 이성이 판단하고 제압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다
푸코가 비판하는 것은 광기의 본질을 억압한 것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새로운 권력 체제가 광기를 배제하고 대상화함으로써 자신(이성)을 정의한 방식입니다.
| 관점 | 광기와 이성의 관계 | 주요 개념 |
|---|---|---|
| 단순한 ‘억압 모델’ | 이성(지배자)이 광기(본성)를 찍어 누름 | 억압, 통제, 금지 |
| 푸코의 ‘구성 모델’ | 이성이 광기를 ‘비이성’이라는 대상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바깥으로 배제하며 지식(정신의학)의 대상으로 구성함 | 배제, 규율, 지식-권력, 대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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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1: 미셸 푸코의 <말과 사물> [말과 사물의 주제 핵심에 대하여](말과 사물의 주제 핵심에 대하여)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에피스테메 는 특정 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고 지식을 구성하는 근저에 깔린 ‘무의식적 지평’ 또는 ‘인식의 틀’ 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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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2: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 275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은 의학이 과학의 모습을 어떻게](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은 의학이 과학의 모습을 어떻게) “현대 서구 문명은 인간을 ‘살아있는 주체’로 존중하기보다는, ‘죽은 시체’를 해부하고 ‘미친 사람’을 격리하여 얻은 차가운 지식을 통해 비로소 인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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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죽음의 관계는 합리적 형태로 과학적 담론을 지배하기도 하고, 또 거기서 한 언어의 근원이 열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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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3 : 푸코의 <말과 사물> [말과 사물에서 푸코가 말하는 것들 에피스테메](말과 사물에서 푸코가 말하는 것들 에피스테메)
6. 🖍️ Book Marks
5 반대다. 사생활에 대해서건 저작에 대해서건 내가 애초에 제시했던 그의 초상화가 오늘날 새롭게 밝혀지는 자료들에 의해 단순히 확인되는 정도가 아니라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움을 느낀다.
7 ‘현재를 진단’하고 더 나아가 역사 비판적(historique-Critique) 조사를 실행함으로써 현재를 변혁하는 것이 #철학자 의 역할 - 미셸 푸코 …역사-비판적 조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역사의 산물이고 또 역사에 의해 변형될 수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2011년 세번째 판본의 서문
1부 지옥에서의 심리상태
1장 내가 태어난 도시
12 “내가 태어난 도시의 모습은 이러했다. 참수된 성자들이 손에 책을 들고 재판은 공정한지, 성채는 굳건한지, 고요한 정원의 비밀을 아이들이 헤집고 다니지나 않는지 감시하고 있는 곳, 내가 상속받은 지혜는 그런 것이었다.”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던 푸아티에(Poitiers)에 대해 미셸 푸코가 즐겨 하던 말이었다.
12 만일 뭔가 단절이 있었다면 그건 아버지와의 단절이다. 푸코는 언젠가 이렇게 회상한 적이 있다. “가족이란 갈등의 관계이지만, 비록 가족을 떠난 다음에도 결코 완전히 단절할 수 없는 어떤 끈끈한 관심의 관계다.”
13 청소년 시절에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폴 푸코.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아버지는 푸아티에에서 개업한 외과의사였고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다. 할아버지 역시 퐁텐블로의 외과의사였다. 아버지는 안느 말페르와 결혼했다. 장인도 푸아티에의 의과의사이며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였다. 두 신혼부부는 말페르 박사가 1903년 도심지 근처에 지은, 별 특징이 없는 흰색 건물에서 살았다. 이 집은 아르튀르 랑 가와 베르댕 가에 동시에 면해 있었는데, 베르댕 가는 도시의 고지대에서부터 클랭 계곡으로 급하게 경사져 내려가고 있었다 폴 푸코 박사와 그의 아내는 세 자녀를 두었다. 맏딸 프랑신, 그리고 15개월 뒤 폴을 낳았다. #1926년 10월 15일. 둘째 아들 드니는 몇년 뒤에 태어났다. 세 아이들은 전형적인 유복한 시골 부르주아 가정에서 자랐다.
23 “…전쟁의 위협은 우리들의 지평이었고 우리들의 실존의 테두리였다. 그리고 정말로 전쟁이 터졌다. 우리 세대의 기억의 실체는 가정생활보다는 세계적 관점의 사건들이었다. 나는 ‘우리들’이라고 말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소년 소녀들이 똑같은 체험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사사로운 개인 생활은 정말로 위협을 받았다. 내가 역사에 매혹되었던 것은, 그리고 우리가 처한 사건과 개인적 체험 사이의 관계에 그토록 관심이 끌렸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내 이론적 욕망의 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4 (고등학고) 카톨릭 학교에 대해 그는 -푸코- 아주 불쾌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는 그곳의 분위기와 그곳에서 받았던 수업을 싫어했다. 종료를 싫어했고 수도사들도 싫어했다. “그가 수도사들에 대해 말할 때면 혐오감과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고 당시의 친구 중 하나가 회상했다.
27 “우리는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 특히 정치적인 주제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피했지요. 아주 다양한 가정 출신의 학생들이었으니까요. 우리 급우 중에는 부모가 강제수용소에서 죽은 여학생도 있었고, 해방 당시 아버지가 총살당한 남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모두를 약간은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죠.”
33 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철학 선생이었다. 그의 이름은 장 이폴리트였다.
34 “전쟁이 끝난 후 몇 년 동안 철학의 권위는 그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철학이 무엇이었느냐를 말하라면 우리는 결코 그것을 남의 얘기하듯 냉정하게 할 수는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9세기는 아마도 역사의 시대였을 것이다. 20세기의 한 중간은 철학에 바쳐진 듯이 보였다. 문학 미술 역사 정치 연극 영화가 모두 철학의 손아귀에 있었다.”
2장 헤겔의 목소리
39 장 이폴리트는 2차대전 이후 프랑스에서 헤겔주의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는 데에 기여한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40 “헤겔은 한 세기 전부터 유명해진 모든 것, 예컨대 맑시즘, 니체, 독일 현상학과 독일 신존주의, 정신분석학 등의 근원이다. 그는 비합리성을 탐사하여 그것을 좀더 넓은 이성 속에 편입시키려 시도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우리 시대가 해야 할 과업이기도 하다. 그는 이어서 “헤겔의 후계자 중에는 자신이 헤겔에게 빚진 것보다는 그의 유산 가운데에서 자신이 거부하고 싶은 것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메를로 퐁티는 “헤겔의 근원을 잊으려는 배은망덕한 이론들을 헤겔과 다시 연결시키는 것"보다 더 시급한 작업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41 우리 시대는 논리학을 통해서건 인식론을 통해서건, 그리고 마르크스를 통해서건 니체를 통해서건 간에, 모두 헤겔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헤겔에서 벗어나려면 우리가 그와 유리됨으로써 치르게 될 대가를 정확히 평가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록 공공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암묵적으로나마 헤겔이 우리와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 며, 우리가 헤겔에 대항하여 사고할 때조차 그것이 여전히 헤겔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그를 상대로 한 제소(提訴)가 실은 그가 우리에게 마련한 계략이며 그 끝에서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인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 중 누군가가 장 이폴리트에게 빚진 듯한 느낌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고 우리를 앞질러서 헤겔과 멀리 떨어지는 길을 지칠 줄 모르고 답파했기 때문이다. 그 길을 통해 우리는 헤겔과 거리를 유지했고, 비록 다른 방식이기는 하나 그 길을 통해 헤겔에게 당도했으며, 이어서 다시금 그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43 (장 이폴리트)결국 그는 우리에게 철학적 사유란 끊임없는 실천이고, 철학 아닌 것을 작품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와 엮여 있는 그 비-철학 옆에 항상 가장 가까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도.
48 푸코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천재성을 과시하기 좋아했다. 그것이 좀 심했기 때문에 그는 곧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샀다. 그리고 반쯤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당시에 그를 알았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공격적이고, 연약하고, 불쾌한, 그러나 연민을 자아내는 이 인물에게서 우리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한 젊은 게이의 전형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3장 윌름 가
53 1978년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광기의 역사>의 탄생에 대해 답하면서 “내 개인사 속에서도 내가 배제되었다는 것, 진정 배척되었다는 것,사회의 그늘 속에 속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성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였다. 성 정체성이 바로 자기 문제일 때 그것은 정말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정신과적 문제로 변모하는 것이다. 당신이 남들과 같지 않다면 당신은 비정상이라는 의미고, 당신이 비정상이라면 그것은 당신이 환자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좀더 확대하여 그는 1981년에 이렇게 말했다. “이론 작업을 시도할 때마다 나는 언제나 내 주변에서 전개되는 과정과 관련하여 내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하는 사건들 속에, 내가 관여하는 제도들 속에,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균열,미세한 진동,기능장애를 발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작업을 수행했다. 다시 말하면 내 자서전의 한 조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54 그는 자신의 개인적•사회적 투쟁 속에 매몰되지 않았고, 다만 그것들을 사유하고, 극복하려 했으며, 더 나아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들, 예컨대 정신의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의 질문을 아이러니하게 되풀이하는 형태로 “당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가?” “당신은 당신의 이성에 대해, 당신의 과학적 개념에 대해, 당신의 지각 범주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그것들을 문제화했다.
57 고등사범 동기 동창들은 푸코가 이상하고 비상식적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한편, 그가 이미 악착같은 공부벌레였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그는 항상 책을 읽었고,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그것을 카드로 만들고, 그 카드들을 꼼꼼하게 조직적으로 상자 안에 정리했다. 베르그손의 철학사 강의를 듣고 학생이 써 놓은 노트까지도 꼼꼼히 챙겼다. 그의 동급생들이 보기에 그는 교양이나 공부하는 능력이나 관심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아주 예외적인 학생이었다
58
나는 헤겔을 읽기 시작했고 이어서 맑스를 읽었으며, 1951년 혹은 1952년에 하이데거를 읽었다. 그리고 1952년인가 1953년인가 니체도 읽었다.
하이데거를 읽을 때 해놓은 막대한 양의 메모를 나는 아직도 전부 보관하고 있다. 그것들은 헤겔이나 맑스를 읽으며 작성한 노트와는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나의 모든 철학적 형성은 하이데거의 독서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그것을 압도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니체에 대한 나의 지식은 하이데거의 그것보다 휠씬 우수하다. 그러나 여하튼 그 두 경향의 철학은 나의 기본적인 철학 체험이다. 아마 내가 하이데거를 읽지 않았다면 니체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65 그 당시에 우리의 비판 정신은 완전히 침몰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비판정신은 열여덟 살이나 스무 살에 완성되는 것도 아니어서, 레지스탕스에 참가하여 투쟁하지 않았다는 막연한 후회가 그 나이 또래의 젊은 학생들로 하여금 레지스탕스의 연장선이라고 주장하는 한 정당을 택하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시대에 뒤진 듯한 기분을 만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75 그는 곧 끈질기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매일 국립도서관을 찾는 버릇이 생긴 것도 이때였다. 이 습관은 그가 스웨덴으로 떠날 때까지 몇 년간 계속되었고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시작되었다. 국립도서관은 아마도 푸코의 일생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일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3년간의 규정과는 달리 티에르 재단에서 1년만을 보냈다. 이미 윌름 가에서도 겪었지만 이 공동생활을 그는 참지 못했다. 거기서도 푸코는 거의 전원으로부터 미움을 받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고 소란을 피웠으며 분쟁을 일으켰다.
4장 광인들의 카니발
80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81 자클린 베르도는 푸코의 학창 시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년는 오래전부터 푸코의 가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양친이 푸코 가족과 오랜 친구였기 때문이다.
84 인간의 시대에 나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 벽 위로 점점 더 헐벗어 가는, 오로지 위로 잡아 뽑는 힘만 가지고 있는 사다리가 세워지고 커져 가는 것을 보았다. 다름 아닌 꿈이….. 여기서 어둠은 사라지고 삶은 가혹한 우화적 금욕의 형태를 띠며 엄청난 힘의 제압이 된다. 우리는 이 엄청난 힘이 우리 몸을 관통하는 것을 막연히 느끼지만 그러나 가혹한 분별력과 끈기와 성실성이 부족하여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84 모든 경우에 있어서 죽음은 꿈의 절대적 의미다. 그리고 실존이 자신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죽음의 꿈속에서다.
90 이 기간 동안 푸코는 실험심리학의 전문적 분위기를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그의 견습은 이제 대학의 태두리를 벗어나 어떤 민속학자가 말했듯이 ‘현장’ 속에서 이루어졌다. 정신병의 실재 그리고 정신병자의 현존과 맞부딪쳤다. 그는 ‘광인’의 수용과 ‘범죄자’의 수용이라는 두 형태의 현실속에 몸을 푹 담그고 관찰할 수가 있었다. 비록 그의 불확실하고 어정쩡한 지위는 그가 학습하려 하는 정신분석가의 일로부터 그를 멀리 떼어 놓았지만 그 자신 역시 ‘바라보고’,‘관찰하고’,‘확인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5장 스탈린의 구두장이
94 (푸코) 헤겔사상과 현상학이 대표하고 있는 철학의 전통적 형식들과 거리를 두면서 니체와 바타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뷰 진행자가 … 당시의 맑스주의적 분위기에 대해 문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젊은 지식인들인 우리들 대부분에게 있어서 니체나 바타유에 대한 관심은 맑시즘이나 공산주의에서 멀어지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공산주의에서 우리가 기대한다고 믿었던 것을 향해 가는 유일한 통로며 소통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세계에 대한 전면적 거부의 욕구는 헤겔의 철학으로는 도저히 충족될 수업는 것이었다. 또 한편으로 우리는 현재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것, 즉 공산주의가 형체를 갖추고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과거의 것과는 전혀 다른 지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맑스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헤겔주의를 거부하면서, 실존주의의 한계에 불만을 느끼면서 공산당에 입당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때는 1950년이었는데, 그러니까 나는 ‘니체적 공산주의자’였다!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이고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푸코는 스스로의 지적.정치적 도정을 재구성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가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결코 니체 사상에 의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니체 읽기는 휠씬 뒤에 이루어졌고,여하튼 니체가 그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1953년경이었다는 것이 증인들의 말이다. 모리스 팽게는 1953년 여름 휴가 때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푸코가 니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실을 디음과 같이 회상했다. ‘1953년 니체와의 만남이 이루어 지기 전까지 그의 준거의 축은 헤겔, 맑스, 프로이트, 하이데거 등이었다. 미셸 푸코가 치비타베키아 해변에서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96 미셸 푸코는 과격한 스탈린주의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푸코의 강의는 아내와 아이들을 때리는 알코올 중독의 가난한 구두장이 예화로 마무리되었는데, 이 예화는 비로 스탈린의 것이었다. 그는 정신병리가 가난과 착취의 산물이며 따라서 인간 조건의 근본적인 개혁만이 그것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가난한 구두장이를 예로 들었던 것이다.
100 “똑같은 위계 구조, 똑같은 강제성, 똑같은 교조주의"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의 기능과 공산당의 기능이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였다. “교수자격시험 심사위원장에게 보일 논문을 하나 쓰는 것이나 내가 그랬듯이 당서기장의 기고문을 대신 쓰는 것이나 둘 다 정확하게 똑같은 일이다!”
101 그가 1953년에 탈당한 것은 확실하다. 이 탈당의 이유는 물론 복합적이다. 우선 이 점이 아주 중요한데, 푸코는 동성애를 부르주아의 악덕, 퇴폐의 징후로 보는 당에서 마음이 몹시 불편했을 것이다. 동성애가 그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갈라놓는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102 비록 그 설명을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들은 방금 들은 이야기를 믿으려고 애썼다. 이것 역시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태도의 일부이지만 이게 나의 태도였다. 이것이 바로 당 안에서 내가 지내던 생활의 방식이었다. 전혀 믿을 수 없는 어떤 사실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아의 해체’를 훈련하는 것이었고 ‘타자’가 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105 “우리는 바타유와 블랑쇼를 사르트르를 통해 알았으나 사르트르와는 정반대의 독서법으로 그들을 읽었다"라고 자크 데리다는 설명한다. 여하튼 푸코에게 있어서는, 그가 나중에 여러 번 말했듯이, 그들이야말로 ‘니체의 사상’으로 인도하는 진정한 통로였다.
106 과학이 인과관계를 내세워 설명하면 할수록 그 설명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는 자기 능력에 벗어나는 것만을 추구하고, 아예 이해가 불가능한 순간을 향해 힘차고 끈질기게 나아간다. 이 순간에 이르면 철저하게 구체적인 현실임에도 모든 사실이 불투명하고 모호하게 되고 만다.
107 샤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물이 우리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환상을 제거했고, 사물이 우리들에게 양도한 부분을 사물에게 남겨 놓았다.’
108 그들의 유일한 대화는 그러니까 잡지 기고문에서 기고문으로, 그리고 책에서 책으로 이어졌던 순환적인 글들이 고작이다. “우리는 참으로 아깝게 서로를 놓쳤다"라고 아직도 블랑쇼는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 자신이 그것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109 여우 한 쌍이 눈밭을 헤집네, 신방 차린 토굴기를 쿵쿵 밟으며 밤이면 그 억센 사랑이 주위에 타는 목마름을 핏자국처럼 뿌리네. Un couple de renards bouleversait la neige, Piétinant l’orée du terrier nuptial; Au soir le dur amour révèle à leurs parages la soif cuisante en miettes de sang.
6장 사랑의 불협화음
118 아주 못생기고, 그러나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정신적이다. 게이에 대한 박식함은 백과사전급이다. 내가 이때까지 알지 못하고 있던, 그리고 앞으로 고통스럽게 탐험하게 될 세계를 권유받은 듯 당황스러웠다.
120 너는 딱딱하게 굳어서 멈춰 선다. 너는 뒤를 돌아본다. 얼마 전부터. 그러니까 너는 미쳤는가 세상을 도망치고 싶어…….겨울 전에? 세상은…… 열린 문 수천 개의 말없이 차가운 사막을 향해 내가 잃어버린 것을 벌써 잃어버린 사람은 어떤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너는 새하얗게 질려 멈춰 선다. 한겨울 속을 미친 듯 돌아다니며 더 차가운 하늘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연기처럼….. Tu t’arrêtes figé, tu regardes en arrière, depuis combien de temps. Es-tu donc fou de fuir le monde … avant l’hiver? Le monde… une porte ouverte sur mille déserts muets et froids. Celui qui a déjà perdu ce que je perdis ne s’arrête nulle part. Tu t’arrêtes tout pâle, condamné à errer en plein hiver Pareil à la fumée qui cherche sans cesse des cieux plus froids…
121 우리에게 감각·경험·관능·독특한 체험·주관적 내용 혹은 사회적 의미의 중요성만을 가르쳐 준 그 시기에 불레즈와 음악을 만남으로써 20세기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볼 수가 있었습니다. 즉 형식의 주변에서 일어난 오랜 전투가 그것입니다. … ‘형식주의’가 낡은 문제들에 어떻게 도전했고, 사유방식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았는지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꼈던 문화적 가치에 대한 믿음을 깨뜨린 음악은 그러니까 앞으로 푸코로 하여금 다른 모든 것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게 만들었고, 결국 현상학과 맑시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121 자신에게 음악이 니체의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122 (푸코가 연인에게 쓴)편지에서 그는 타인에게 속해 있다는 것, 타인에게 소유된다는 것, 또 타인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마치 빨간색 실이 짜여져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듯이 그의 팔이 만들어 내는 엮임 속에 자신의 모든 삶이 미끄러져 들어가 행복과 아름다움과 힘의 직물이 짜여진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아낌없이 다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은 줄 것이 없으며, “당신은 내 욕망과 무관하게 순전히 당신의 쾌락만을 위해 나를 취하면 됩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것이 자신의 ‘비밀’이며 이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122 바라케와의 관계가 지속되었던 2-3년간 푸코는 예술적 혁신의 고양된 분위기,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회의하고 새롭게 검토하려는 흥분된 분위기 속에 푹 젖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개성이 자리 잡고 작품들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2 편지에서 그는 타인에게 속해 있다는 것, 타인에게 소유된다는 것, 또 타인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마치 빨간색 실이 짜여져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듯이 그의 팔이 만들어 내는 엮임 속에 자신의 모든 삶이 미끄러져 들어가 행복과 아름다움과 힘의 직물이 짜여진다고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아낌없이 다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은 줄 것이 없으며, “당신은 내 욕망과 무관하게 순전히 당신의 쾌락만을 위해 나를 취하면 됩니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것이 자신의 ‘비밀’이며 이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123 우리 두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삶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공동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삶을 잃거나 망칠 권리도 두 배로 줄어듭니다.
124 바라케가 1969년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 내게 ‘천재란 절망에 잠긴 엄격한 정신’이라는 주네의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푸코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125 그는 정신분석이 ‘인간과 주변 환경의 관계’를 ‘비현실화’했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결국 파블로프와 파블로프 이론을 등장시키는 것이 아닌가. … 여기서 우리는 그의 정치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시기에 파블로프는 공산당이 극찬했던 ‘유물론적 심리과학’ 수립의 깃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26 “주위 환경의 조건이 자극과 금지의 변증법적 운동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방어에 대한 금지가 자리 잡는다. …. 병은 방어의 한 형태다.” 그것은 결국 “정신병이 들었기 때문에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되었기 때문에 정신병이 된 것이다.“라는 의미가 된다. ……
“정신병이 여러 모순적인 행동들의 뒤얽힘 속에서 주로 나타나는 것은 모순의 요소들이 인간 무의식의 역설적 성격으로서 중첩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인간이 다른 인간을 모순적인 체험으로 삼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의 경제체제가 경쟁, 착취,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계급투쟁 속에서 결정하는 사회적 관계들은 인간에게 모순이 내재한 체험을 제공한다.”
127 #정신병 이란 “인간이 역사적으로 소외되는 사회 안에서의 모순의 결과“다. 그렇다면 정신과 치료를 새로운 방향으로 해야만 할 필연성이 생긴다. “언젠가 환자가 소외의 운명을 겪지 않게 되는 날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정신병을 인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과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지 않고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심리학도 인간을 질곡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진정한 심리학은 심리학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128 푸코 저서의 중심 주제인 ‘광기’ 는 사실상 철학적 논쟁의 주제이기도 하다.
128 푸코는 “…정신병원은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의 인간의 인간 환경을 이해하거나, 정상인에게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다.”
130 다시 말하면 실증심리학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신병리학이 심리적 경험의 한 근원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것은, 정신병이 거기서 어떤 숨겨진 구조를 끌어내거나 또는 인간이 거기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좀더 잘 알아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거기서 자기 모순의 절대적 요소 또는 그 진실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인 질병은 건강의 심리적 진실이다"라고 그는 썼다. 자신의 근원을 잊는 심리과학에 그 ‘영원히 지옥 같은’ 소명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심리학은 지옥의 회귀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푸코는 결론을 내렸다. ”
🧏 제미니…미셸 푸코가 “심리학은 지옥의 회귀에 의해서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심리학이 자신의 근본적인 토대를 망각하고 피상적인 과학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심리학의 기저에 있는 ‘인간의 조건’이라는 어둡고 근원적인 문제(지옥)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7장 웁살라, 바르샤바, 함부르크
135 “나는 항상 프랑스의 사회적• 문화적 삶의 어떤 부분을 견디기 어려웠 다. 그것이 내가 1955년에 프랑스를 떠난 이유다"라고 그는 나중에 자신의 스웨덴행을 설명했다. “그 당시에 스웨덴은 훨씬 자유스러운 나라로 여겨 졌다. 그러나 나는 곧, 어떤 자유의 형식은 억압사회와 똑같은 억압적 효과를 낸다는 것을 그곳에서 발견했다.
152 그는 정신병원에서 일을했다. 의사들은 그에게 자기들 학문의 역사를 하나 쓰라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는 정신과의사보다는 정신병자에게 더 흥미가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해 의사와 환자의 관계, 즉 이성과 광기의 관계에 더 관심이 있었다.
153 그는 쓰고 또 썼으며 밤에도 계속 썼다.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였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흐, 을 듣지 않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에게 있어서 음악이란 곧 바흐였고, 또는 모차르트였기 때문이다.
153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서구 사회가 『우신 예찬』에서 『정신현상학』(이건 비이성의 예찬이지)에 이르기까지, 또는 ‘쾌락의 정원’에서 ‘귀머거리의 집’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비이성의 경험 속으로 미끄러져 그 합리주의와 실증주의의 끝에서 애매한 파토스(pathos)의 형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구요. 이 파토스가 서구 문화의 비장미(pathetique)의 요소이고 또한 병리학(pathologie)의 근원이죠. 에라스뮈스에서 프로이트에 이르기까지, 인본주의에서 인간학에 이르기까지 광기는 근본적으로 우리 하늘의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차이를 측정해 봐야겠어요. 그런데 어떤 컴퍼스로 재야 할까요?
156 저는 정신분석학의 역사나 발달사를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신분석학이 발달해 온 사회적·도덕적·상상계적 맥락의 역사를 쓰고 싶었던 것입니다.
169 <광기와 비이성>의 시작… 파스칼은 “인간은 누구나 광인이므로 미치지 않은 것 역시 또 하나의 광기다"라고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작가의 일기>에서 “자기 자신의 양식을 확인하는 것은 이웃 사람을 감금하고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자기의 양식을 확인하는 것은 이웃사람을 감금하고서가 아니다 -> 근대 이성이 자신의 정체성,순수성을 확립하기위해 비이성(광기)를 감금하는 것을 빗대어 표현
169 지금은 공통의 언어가 없다. 과거에는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없는 것이다. 18세기 말에 광기를 정신병으로 규정한 이래 미친 사람과의 대화는 단절되고, 정상인과의 분리는 기정사실화됐으며, 전에 광기와 이성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대화, 즉 약간 더듬거리며 직설적으로 내뱉는 두서없는 말들이 완전히 망각 속에 묻히게 되었다. 정신과의사의 언어는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일 뿐, 그런 침묵 위에서 진정한 언어는 형성될 수 없다.” 그리고 그후에 자주 인용되는 멋진 선언으로 푸코는 자신의 계획을 정의했다. “나는 이 언어의 역사를 쓰려는 것이 아니라 이 ‘침묵의 고고학’을 쓰려는 것이다.
170 침묵의 고고학을 쓴다는 것은 모든 서구 문화의 깊이를 헤아려 본다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중세 초기 이래 유럽인들은 모두 자기들이 막현히 광기, 실성, 정신착란이라고 불렀던 것과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174 17세기…“오늘날 정신병자들은 죄의식을 마치 자신의 운명처럼 느끼고, 의사들은 이것을 이 병의 자연적 성격이라고 간주하고 있는데, 정신병과 죄의식의 연관성은 아미 이때에 생겨난 것 같다” 고 푸코는 썼다.
🤔 gemini…푸코가 17세기 유럽, 특히 고전주의 시대(Classic Age) 의 #대감금(The Great Confinement) 현상을 분석하며 지적한 내용은, 정신병자(광인)를 ‘도덕적 타락자’ 또는 ‘사회적 질서를 위반한 자’로 취급하며 ‘죄의식’ 을 주입하기 시작했다는 점
175 광기가 갑자기 사회 속에 투입되어 특권적이고 거의 배타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것, 과거에 친숙한 이웃으로 눈에 띄지 않게 살거나 아무런 경계선 없이 온 나라를 방랑하던 광인들은 어느 사이엔가(유럽 전역에서 50년도 채 안되는 사이에) 한정된 지역 안에 한데 집어넣어 누구나 그들을 구별하고 비난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그때부터 경찰의 예방 또는 치안 대책의 차원에서 비이성적인 사람들을 단숨에 몰아내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것, 그것이 중요한 문제다. ….비이성이 인식의 대상이 되기 전에 우선 파문의 대상이었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 어떤 비이성정인 상태를 구분하고, 그 사람들을 파문시키버리는 우리의 문화에 대한 이해!!
176 이제 광인들은 그들을 담당하는 의사들과 함께 혼자 남았다. 그것이 수용소의 탄생이다 강제수용이 의학의 이름으로 행해졌고, 광기가 ‘정신병’으로 규정될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 우리문화가 비이성,광기라고 제단한 사람들은 , 우리 문화에서 보이지 않은 곳으로 보낸다. 수용소-정신병원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무엇이과 이성과 비이성, 광기와 아닌것의 경계는 무엇인가. 그 경계를 만든것은 누구의 광기인가.
176 피넬(Philippe Pinel-19세기 초의 정신과의사. 현대 정신의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짐)이 그 창시자라고 사람들이 찬양하는 실증주의 시대의 소용소는 관찰,진단,치료의 자유스러운 구역이 아니었다. 그것은 환자가 고발되고 재판받고 선고받는 사법적인 장소였으며, 거기서 풀려나기 위해서는 깊은 심리학적 영역에서의 소송 절차, 즉 회개가 있어야만 했다. 광기는 비록 밖에선느 무죄였더라도 수용소 안에서는 처벌의 대상이었다.
177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자신이 광인이건 아니건 간에 광인의 수수께끼 속에서만 자신의 진실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광인들은 사람에 따라 자기 속에 인간의 진실을 갖고 있거나 혹은 갖고 있지 않거나 하지만, 여하튼 그 진실은 그의 인간성이 추락할 때 적나라하게 드라난다. 요컨데 #정상인 과 #광인 은 이 상호적이며 양립 불가능한 진실의 희미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178 푸코의 책 <광기와 비이성>…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끝을 맺는다 “광기의 새로운 승리와 계략. 광기를 측정하고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설명한다고 믿는 이 세계는 이제 거꾸로 그 광기 앞에서 자신을 변명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논쟁과 노력 속에서 세계는 니체, 반 고흐, 아르토 등의 작품을 거슬러 자신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기에 대한 지식은 결코 이 세계에 확신을 주지 못하며 오로지 그 광기의 작품들만이 이 세계를 설명해 줄 뿐이다”
🤔 [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 결론에 광기의 역설적인 승리를 주장한 뜻](미셸 푸코가 광기의 역사 결론에 광기의 역설적인 승리를 주장한 뜻)
2부 사물의 질서
1장 시인의 자질
190 필립 아리에스는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미사를 드리러 자기 교구의 성당에 꼬박꼬박 나가기는 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우스꽝스러운 의식과 대면하지 않기 위해 소음방지용 귀마개로 귀를 막는 것을 잊지 않았다
2장 책과 그 분신들
209 (푸코는 그의 책에대해) 그는 지식인에게 납덩이처럼 무겁게 덮여 씌워진 공산당과 맑스 이데올로기를 비난했고,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 한정된 테두리를 벗어난 책들이 가진 비판적 힘을 발견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225 논쟁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해요. 그건 이미 설득된 사람만 설득시키거든요.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은 더 강화시킵니다.
3장 댄디와 개혁
242 드골주의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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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푸코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것은 그가 격렬한 반공주의자였다는 것이다.
4장 시체 해부
273 시체를 해부할 필요성을 느꼈을 때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었다. 의사의 시선이 깊은 징후까지 판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육체의 내부 깊숙한 부분까지 그 근원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것이 비샤1 의 선언인데 푸코는 이 선언을 특히 강조했다. “시체를 해부해 보아라. 표면적 관찰이 결코 헤칠 수 없었던 어둠이 일시에 걷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75 우리의 문화가 개인에 대해 행했던 첫번째 과학적 담론이 이처럼 죽음의 계기를 거쳐야만 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사건이다. 서구인들은 오로지 자신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만 자신을 구성할 수 있었다. 또 자신의 파괴를 참조함으로써만 언어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스스로 담론적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비이성의 경험에서 모든 심리학과 심리학의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의학사상 안에 죽음을 위치시킴으로써 개인의 과학으로서의 의학이 생겨났다.
276 “남자끼리의 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문명은 없습니다” ….()
5장 부르주아지의 성채
[라 켕젠 리테레르푸코 인터뷰내용 정리-YG](라 켕젠 리테레르푸코 인터뷰내용 정리-YG)
282 모든 시대는 그 문화를 형성하는 심충적 윤곽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것은 그 시대의 모든 과학적 담론, 모든 언표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암의 격자(grille)다. 푸코는 이 역사적 선험성’(a priori)을 에피스테머라고 부른다. 그것은 한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즉 사유의 한계를 정의하고 확정 짓는 깊은 토대다. 모든 과학은 에피스테메의 테두리 안에서 발전했고, 따라서 동시대의 다른 과학들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푸코의 시선은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 속에서 발전된 세 인식의 영역. 즉 문헌학.부의 분석.박물학등으로 향해 있었다. 이 세 영역은 19세기에 이르러 그시대에 정착된 새로운 앎의 도표 안에 형성된 또 다른 세 영역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그것은 일반언어학 ,정치경제학,생물학이다. 푸코는 이 세 학문의 발전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인식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이제부터 인간은 말하는 인간, 노동하는 인간, 생명체로서의 인간 등으로 나뉘어 인식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284 인간과학은 생물학,경제학,문헌학(혹은 언어학)과의 ‘인접성’에 의해서만 그 존립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306 그러니까 푸코는 매 단계마다 연속적인 수정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나서는 그것을 모두 바꾼다. 『지식의 고고학』에서 그는 그럴 권리를 요구했다. “수많은 고통과 희열 속에서 글을 쓰고, 머리를 숙인 채 고집스럽게 일에 전념하는 한편으로 나는-약간 허약한 손으로-내가 그 안에서 모험을 감행할 미로를 하나 마련한다. 그 미로 안에서 나는 내 가설을 이리저리 옮기고, 그 가설에 지하통로를 파 주기도 하고, 원래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그것을 깊숙이 땅에 박기도 하고, 그 가설의 경로를 요약해 주거나 또는 왜곡하는 돌출물을 가설하기도 한다. 거기서 나는 길을 잃고, 결코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될 시선들 앞에 내 자신을 노출시킨다. 이렇게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호적 관리의 도덕일 뿐이다. 그 도덕은 우리의 서류를 지배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은 우리를 제발 좀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307 수많은 고통과 희열 속에서 글을 쓰고, 머리를 숙인 채 고집스럽게 일에 전념하는 한편으로 나는… 내가 그 안에서 모험을 감행할 미로를 하나 마련한다. 그 미로 안에서 나는 내 가설을 이리저리 옮기고, 그 가설에 지하통로를 파 주기도 하고, 원래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그것을 깊숙이 땅에 박기도 하고, 그 가설의 경로를 요약해 주거나 또는 왜곡하는 돌출물을 가설하기도 한다. 거기서 나는 길을 잃고, 결코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될 시선들 앞에 내 자신을 노출시킨다. …. ….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고, 나에게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강요하지 말라. 그것은 호적 관리의 도덕일 뿐이다. 그 도덕은 우리의 서류를 지배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만은 우리를 제발 좀 자유롭게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6장 광활한 바다
316 푸코… #마네 의 그림들이 자신의 관심을 끌게 된 이유를… 그가 인상파를 실현시킨 화가여서가 아니라 #인상파 를 넘어서서 모든 근대 회화를 가능케 한 화가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콰트로첸토-15세기 이탈리아의 예술운동-이래의 회화 규칙을 깨뜨린 사람이다. 이 회화 규칙은 화가에게 그림이 벽이나 캔버스 등 한 조각의 공간 속에 그려졌다는 사실을 잊게 하며 그 사실을 애써 감추거나 피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네는 이 규약의 전체를 깨뜨렸다. 그는 오브제로서의 화폭,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물질성을 표현하는 화폭을 만들어 냈다. 그는 재현의 과정 속에서 화폭의 기본적인 물질성의 요소들이 살아 움직이도록 했으며, 재현된 장면 안에 회화적 물질성을 통합시켰다. ….그는 그림의 깊이를 없애 버렸다. 그림은 이제 그 앞에서 관람객이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할 수 있고 또 이동해야만 하는 구체적 공간이 되었다. (마네)는 재현의 기법을 내리누르던 규약들로부터 회화를 해방시킴으로써 재현과의 단절을 위한 조건을 마련했다. 마네 덕분에 회화는 공간의 성질, 즉 순전히 회화를 위해 주어진 그 물절적 성질과 함께 유희할 수 있게 되었다.
[푸코가 마네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푸코가 마네를 높이 평가한 이유는)
318 사상의 역사가 텍스트 판독을 통해 사상의 비밀스러운 운동들을 밝혀내려는 곳에서 나는 ‘말해진 것들’의 수준을 그 특수성 속에서 드러내 보이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조건, 그것들이 쌓이고 서로 연결되는 형식들, 그것들의 변형의 규칙, 그것들을 토막 내는 불연속성들을 보여 주고 싶다. 말해진 것들의 영역이 소위 ‘고문서’다. 고고학은 그 고문서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318 푸코는 자기가 건 도박의 내기돈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잘 안다. 사람들은 그를 사르트르의 후계자로 소개했는데, 스승은 가혹하게 반격했다. 판은 시작되었다. 그가 판돈을 싹 쓸고 싶으면 임박한 격전을 엿보고 있는 구경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323 푸코는 무책임하고 실패할 것이 뻔한 행동보다는 신중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더 좋아했다.
324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스웨덴에서 ‘잘’ 기능하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보았고, 폴란드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인민 민주주의를 보았다. 60년대에 경제적으로 도약하는 독일을 보았으며, 마지막으로 제3 세계인 튀니지를 보았다. 거기서 2년 반을 살았는데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5월 사태보다 몇 주 앞서 일어난 격렬한 학생시위도 지켜보았다. 그것은 68년 3월에 시작되어 일 년 내내 파업, 휴교, 체포로 이어졌다.
325 “현대 세계에서 그 어떤 것이 절대적 자기희생의 가능성과 능력, 그리고 그것을 하고자 하는 욕구와 의향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이해관계, 어떤 야망, 어떤 권력욕에 전혀 물들지 않은 채? 나는 이 모든 것을 튀니지에서 보았다. 신화가 필요하다는 분명한 증거를…..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필요하고, 또 세계와 인간관계와 상황에 대한 어떤 정치적 개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반면 이론의 분명한 정립과 그것의 과학적 가치는 완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을 위한 진정한 원칙이라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사람들을 행동 속에 끌어들이는 미끼에 불과하다….”
347 그 시절의 푸코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잊혀져 갔으며, 뱅센의 증류기로부터 새로운 참여 철학자가 수증기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행동과 성찰의 모든 전선에서 작전을 벌이는 강건한 투사가 될 것이다. 1969년부터 푸코는 투쟁하는 지식인의 화신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푸코의 모습, 즉 시위 현장에 나타나고 선언문을 작성하고, ‘투쟁’하고 ‘비판’하는 그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라는 지위가 그에게 더욱 큰 힘과 영향력을 주었다.
[1968년 5월 혁명 (Mai 68)-금지를 금지하라](1968년 5월 혁명 (Mai 68)-금지를 금지하라)
3부 투사 그리고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1장 뱅센에서의 막간 에피소드
343 (푸코는) “도대체 철학이 무엇인지를 내게 분명히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의 이름으로, 어떤 텍스트를 근거로, 어떤 기준으로, 그 어떤 진리에 따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비난하는지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
346 푸코는 뱅센에서 2년을 보냈다. 그의 인생에서 , 그의 경력에서, 그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파란만장했던 2년간이었다. 거기서 그는 다시 정치로 돌아갔고 “마치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가 풍랑으로 갑자기 해변에 다시 떠오른 구명대 같은"역사를 만났다. ….마치 수면으로 다시 떠오르듯 이렇게 정치판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마오주의마오이즘 세력권 안에 진입한 다니엘 드페르의 영향이 큰 듯하다.
347 1969년부터 푸코는 투쟁하는 지식인의 화신이 되었다. …시위 현장에 나타나고 선언문을 작성하고, ‘투쟁’하고 ‘비판’나는 그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라는 지위가 그에게 더욱 큰 힘과 영향력을 주었다.
347 이 무관심이야말로 “아마도 현대의 글쓰기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강령"일 것이라고 푸코는 주장했다. 여기에 푸코는 “죽음과 글쓰기의 유사성"이라는 제2의 주제를 덧붙였다.
348 나는 구조가 거리에 나와 시위하지 않는다고 쓴 것은 전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5월 사건이 뭔가 보여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조가 거리에 나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데모 현장에 그것을 써 놓았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행동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 행동의 내재적 특성이다.
2장 곡예사의 고독
353 (푸코) “나의 뒤에 내가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을 하는 어떤 목소리가 있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말해야만 하는데 나는 계속할 수가 없다. 말들이 있는 한 나는 그 말들을 해야만 한다. 그 말들이 나를발견할 때까지, 또는 그 말들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 참으로 이상한 고통이고, 이상한 잘못이다. 계속해서 말해야만 한다. 아마 이미 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들은 아마도 나를 내 이야기의 문턱까지 끌고 왔는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열어 줄 문 앞까지. 그러나 그 문은 아마 안 열릴지도 모르겠다.”
353 선발위원으로서 나의 문제는 몇몇 지원자에 대해서 언제나 똑같은 것입니다. 견해나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람됨의 크기를 측정하고, 가능성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가능성이 분출하는 사람입니다.”
356 그러나 내게는 어떤 하나의 차원이 아직 탐사되지 않은 듯이 보인다. 광인들이 어떻게 광인으로 인정을 받았고, 어떻게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추방되어 감금되고 치료되었는지, 그들을 받아들이고 가두고 가끔은 그들을 보살핀 기관이 무엇인지, 어떤 심급이 어떤 기준으로 광기를 결정했으며 그들을 강제하거나 벌주거나 또는 낫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사용되었는지, 결국 어떤 제도와 실천의 그물망 속에 광인이 사로잡히고 동시에 규정되었는지를 탐구해 보아야 한다. …. 아주 정밀하고 명확한 지식이 거기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자 내게 하나의 목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도라는 복합적인 체계 안에 투입된 앎이 바로 그것이다. … 그 앎의 가시적 실체는 이론적 담론이나 학문적 담론이 아니고 문학도 아니다. 그것을 일상적으로 규제받는 실천이다.
357 의료행위는 불안한 혼합 속에서 정밀과학과 비과학적 전통을 한데 혼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의 균형과 일관성을 지닌 앎의 체계로 틀이 잡혀 갔다. 그러니까 우리는 단순한 정신적 습관이 아니면서도 그렇다고 과학과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는 앎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358 거기서 나는 전혀 다른 두 개의 결과와 마주쳤다. 그 하나는 ‘투입된 앎들’의 비교적 자율적이고 특수한 존재를 확인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들 고유의 구조들이 각기 체계적인 관계를 갖고 있음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 견해와 과학적 인식 사이에서 아주 특별한 층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앎의 층위라고 부르기를 제안한다. 이 앎은 이론적 텍스트나 경험의 도구 안에서만 구체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실천과 제도 안에서 실체화한다.
359 “구성된 과학…과 견해의 현상… 사이에서 사유체계의 역사를 써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식 일반과 그것들의 조건, 그리고 인식하는 주체의 지위를 다시 검토하는 것으로 귀결할 것입니다.” (…) 사유체계의 역사는 그러니까 사유하는 인간 혹은 인간들의 역사가 전혀 아니다. 요컨대 유물론과 유심론의 갈등이 사람들을 적대적인 형제로 갈라놓은 것은 역사가 이 두번째 용어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사유의 주체로서 한쪽은 개인을, 또 한쪽은 집단을 선택하는데 여하튼 주체를 문제 삼는 것은 양쪽이 똑같다. …. 이원론을 포기하고 비데카르트적 인식론을 구성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즉 사유는 간직하되 주체를 제거하고, 인간이라는 자연이 배제된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363 “사람들이 말을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담론이 무한히 증식한다는 사실이 왜 그토록 위험하게 여겨져야 할까? 도대체 그 위험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푸코는 묻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스스로 대답한다. “내가 오늘 저녁에 펼치고 싶은 가설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모든 사회에서 담론의 힘과 위협을 제거하거나 담론에서 야기될 수도 있는 사건을 통제하고 또 그 담론의 무겁고도 무시무시한 물질성을 회피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고 있는 어떤 절차들이 그 사회의 담론의 생산을 통제하고 선택하고 조직하며 재분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64 우리 문명보다 더 담론을 강제성에서 해방시키고 거기에 보편성을 부여해 준 문명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담론에 대한 이 외관상의 존경, 이 외관상의 사랑 밑에 일종의 두려움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금기와 장벽과 문턱 그리고 한계들을 쳐 놓아 담론의 가장 위험한 두터운 부분을 얇게 만들고, 그 무질서는 가장 통제하기 좋은 형태로 재편성한다. 그러면서도 이처럼 언어와 사상에 침투한 흔적마저 지우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기울인 것만 같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는, 아니 모든 사회에는 각기 그 양상은 다르지만 아주 깊이 언어에 대한 공포가 있는 듯하다.
365 담론의 이 같은 끓어오름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 사회가 세워 놓은 강제의 체계들을 푸코는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눈다. 우선 ‘배체’의 외적 절차다. 그것은 ‘금기’와 ‘터부(사람들은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분할’과 ‘배척(예컨대 미친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 마지막으로 ‘진실에의 의지’로 되어 있다. ‘배척을 하는 데에는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장치’인 이 ‘진실에의 의지’는 시대가 더할수록 더욱더 강화되지만 사람들이 가장 덜 언급하는 장치인 것이다.
[푸코가 말하는 사회가 담론을 통제하는 이유는](푸코가 말하는 사회가 담론을 통제하는 이유는)
365 한계 짓기 원칙의 두번째 그룹은 담론 자체의 내부에서 행사되는 원칙들이다. 글이나 말의 우연한 성격을 제거하기 위해 그것들에 말을 덧붙이는 ‘주석’, 글이나 말의 낯선 단독성을 ‘자아’와 ‘개체성’의 인지 가능한 동일성으로 귀결시키는 ‘저자’의 개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문적이건 아니건 간에 앎을 배열하고 분류하며 거기에 동화되지 않는 모든 것을 변두리로 몰아내 버리는 ‘규율’이 그것이다.
365 ‘배척을 하는 데에는 더할 수 없이 완벽한 장치’인 이 ‘진실에의 의지’는 시대가 더할수록 더욱더 강화되지만 사람들이 가장 덜 언급하는 장치인 것이다. “우리 역사상 소위 진실이 금기를 정당화하고 광기를 정의하려 하는 바로 그곳에서 이 진실에의 의지를 회피하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려 했던 모든 사람들, 예컨대 아르토, 바타유 등은 지금 우리들의 작업을 비추어 주는 높은 표지임에 틀림없다”라고 푸코는 선언했다.
365 마지막 그룹은 담론에 강요되는 실행의 원칙이다. 사회 속에서 그것이 행사되는 의식과 말할 권리를 갖기 전에 우선 충족시켜야 하는 요구사항 등이 그것이다.
366 다시 무질서에게 그 충만한 권리를 되돌려 준다? 이것이 아마도 ‘담론의 질서’를 세우는 강제성의 촘촘한 그물망에 항거하는 투쟁 속에서 푸코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임무일 것이다. 비록 그 질서를 무너뜨리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그것을 분석하고 백일하에 드러내며 그것을 가려 주고 있는 명증성의 탈이라도 벗겨 내야 하는 것이다.
368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질문은 없었다. 혼잡한 군중 속에서 그는 혼자였다.
368 프랑스에선느 일단 군중이 많이 모이면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되돌아오는 수로가 없으므로 강의는 연극처럼 된다. 다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3장 어둠의 교훈
387 이것은 더이상 고상한 가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참여가 아니라 이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현실에 시선을 돌리는 참여였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보여 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말로 그것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죄수행동위원회는 곧 이 유명한 대부들과 헤어져 독립할 것을 요구했다. 세르주 리브로제는 한 인터뷰에서 미셸 푸코가 범법과 불법에 대해 익명의 글을 <리베라시옹>지에 썼다고 거칠게 항의했다. 그는 1974년 2월 19일 이렇게 선언했다. “분석의 전문가들은 이제 지겹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고 말하기 위해 나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순간에 감옥정보그룹은 이미 주도권을 포기했다. 그러나 활력도 또한 함께 꺾였다. “그들은 계속한다. 그러나 어떤 메아리가 있는가?” 라고 다니엘 드페르와 자크 동즐로는 1976년의 한 기고문에서 죄수행동위원회의 투사들에 관해 이렇게 말하며 감옥정보운동을 결산했다. 씁쓸함, 실패의 감정, 이것이야말로 감옥정보 그룸의 자동해체 이후 푸코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미셸은 이 모든 것이 무위로 끝났다는 감정을 가졌다.“고 질 들뢰즈는 1986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들뢰즈는 그러나 지식인의 참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시험해 볼 수 있었던 이 ‘모험’이 ‘경험’이 푸코에게는 매우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더 이상 고상한 가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참여가 아니라 이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현실에 시선을 돌리는 참여였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것들을 보여 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정말로 그것들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옥정보그룹은 또한 ‘언표생산’의 한 방식이기도 했다고 들뢰즈는 덧붙였다. 푸코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가 보기에 감옥정보그룹이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감옥에 대한 새로운 유형의 언표가 여기 있다. 직접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말해진 이 언표들은 과거에는 결코 말해질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
390 푸코의 책들 중에서 아마 가장 훌륭한 책일 ‘감시와 처벌’이 1975년에 나왔다. … 푸코는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개입의 장을 바꾼 것이다. 더 이상 감옥 문 앞에 있지 않고, 역사적 연구의 무대에 오른 것이다. 그는 이 연구에서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는 관습들을 환기시킨다. 이 책은 역사 속에서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 속에서 태어났다고 그는 책의 서문에서 밝혔다. 그리고 그의 기획은 바로 “현재의 역사를 쓰는 것"이었다.
390 감옥 주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체에 가해지는 권력의 기술이다. 감옥이란 무엇인가? 왜 요란한 옛날의 공개 고문에서 현재의 조용한 가둠으로 넘어왔는가? “중세 지하독방의 계승인가? 아니 오히려 새로운 기술인 것 같다. 개인을 분할하고 통제하고 측정하고 길들이고, 여하튼 그들을 ‘유순하면서도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해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사람들이 고안해 낸 모든 절차들의 결정판이다. 감시·훈련·조련·점수 매기기·등급 정하기·분류·시험·기입 등, 인체를 복종시키고 많은 인원수를 통제하고 그들의 힘을 조종하기 위한 이 모든 방식이 고전주의 시대의 병원·군대·학교·교단, 또는 작업장에서 발전되었다. 한마디로 규율(displine)이다. 18세기는 물론 자유를 발명해 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우리들에게 또한 깊고 견고한 지하감옥을 주었다. 규율사회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다. 감옥은 이 감시사회의 교육 수단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4장 민중의 정의와 노동자의 기억
403 60년대와 70년대의 옛 좌파 투사들의 역정은 우리를 매우 어리둥절하게 만들거나 그 이상이다(아마도 착란에 가까웠던 그 시대의 지나친 과격성이 그후의 그토록 근원적이고 또한 환각적인 전형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404 이러한 민중적 사법의 활동이 재판의 형식으로 정리되어야 하는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재판은 민중적 사법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가설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국가기구의 가장 특징적인 제도 내부에 그것을 다시 등록시킴으로써 민중적 사법을 몰수하고 통제하고 압살해 버린 역사적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406 제3의 심급이 민중과 억압자 사이에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다고 당신은 확신합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적 원한을 충족시키기 위해 민중, 민중의 의지로부터 유리된 어떤 사람, 인민의 적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개인적인 적으로만 찍힌 어떤 사람 사이에 민중이 중개자로서 끼었을 뿐입니다… …. 두 당사자와 관련하여 완전히 중립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이 절대적 가치가 있는 정의의 관념에 입각하여 판결을 내릴 수 있고 또 그 판결은 반드시 집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민중적 사법의 개념에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진정한 민중적 사법의 경우에는 세 요소가 아니라 민중과 적이라는 두 요소가 있을 뿐입니다
407 실제로 억압의 제도였던 형벌체계에 관한 역사는 별로 연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국가장치로서의 사법은 특별히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중세까지 근본적으로 징세의 기능을 갖고 있던 형벌제도가 어느 시기에 갑자기 폭동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민중 봉기에 대한 억압은 그때까지는 군인의 임무였습니다. 그런데 그후에는 사법-경찰-감옥이라는 복합적인 제도에 의해 그 임무가 수행되었습니다. 사법정치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고는 혁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법정치나 이데올로기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 그리고 이 이데올로기가 민중적 실천에 은근히 스며 들어가게 허용하는 모든 것을 몰아내야 한다고 내가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408 “재판은 또한 소송당사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카테고리가 있으며, 소송당사자들도 거기에 승복할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개념들은 부르주아지가 권력 행사를 위해 사용했던 무기들이다. 인민재판, 특히 지식인이 검사나 판사 역할을 하는 인민재판이 나를 불쾌하게 만드는 이유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지가 위에서 방금 내가 말한 주제들을 강요하고 퍼뜨린 것은 다름 아닌 지식인을 매개로 해서이기 때문이다.
409 학문을 가능하게 하는 규칙과 강제의 체계는 생산관게, 계급투쟁, 사회형태 속에, 다시 말하면 인간 정신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컨대 서구 문명에서 어떤 특정 시기에 광기가 과학적 연구와 앎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특정 사회 및 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409 그래서 피에르 빅토르가 토론 내용을 요악하기 위해 “첫 단계인 이데올로기 혁명의 단계에서는 나는 약탈에도 찬성이고, ‘과격행위’에도 찬성입니다. 몽둥이를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야 합니다. 계란을 깨뜨리지 않고 이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죠”라고 말했을 때, 푸코는 짤막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몽둥이를 꺾어 버리면 됩니다.”
410 프롤레타리아는 지배계급에 대한 전쟁이 정의롭다고 생각해서 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그들이 이런 전쟁을 벌이는 것은 우선 권력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의 권력을 타도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전쟁을 정의롭다고 생각한 것이다. …… 우리가 전쟁을 하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것이 정의롭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416 왜 그토록 길게 브뤼에 사건을 거론했는가? 왜냐하면 증인들의 말에 의하면 이 사건이 만들어 낸 알력이 좌익의 한 분파의 몰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423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그리고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진실을 알고 진실을 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언론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진실을 말할 것과 ‘정직성’이라는 것이다.
428 역사만이 우리에게 역사를 제거해 줄수있다. 사회과학의 역사가 역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것은 사회과학이 무의식의 과학으로 인식되는 한에 있어서 그러하다.
435 푸코와 들뢰즈는 거기서 그들의 전세대가 ‘참여’(앙가주망)라고 부른 것과 지식인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정의했다. 이제는 더 이상 투쟁을 ‘전체화’하고 그 이론을 수립하며 그것의 의미를 말하는 단계가 아니었다. 사르트르식의 ‘전체적 지식인’(l’intellectuel total)에 맞서 그들은 ‘특정한 지식인’(l’intellectuel spécifique)을 대립시켰다. 다시 말하면 투쟁은 정확한 지점, 한정된 장소에서만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국지적인 투쟁은 그것이 ‘급진적’이기만 하면 다시 말해 “타협도 개량주의도 없고, 또 기껏해야 권력자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 만족하여 똑같은 권력을 그럭저럭 유지해 나가려는 시도만 없다면 충분히 혁명 운동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푸코는 말했다. … “부분적인 투쟁들에게 통일성과 일반적 성질을 부여하는 것은 “권력의 체제 그 자체, 다시 말하면 모든 형태의 권력의 행사와 적용"이라고 푸코는 덧붙였다. 그러자 들뢰즈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작은 요구에서부터 출발하여 결국 전체를 폭파시키려는 것이 우리의 의도인데, 이 넓은 전체와 대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작전 개시 지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부분적인 혁명적 방어와 공격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합류한다.
5장 우리는 모두 지배받는 자들이다
447 (푸코) “물리력을 행사사는 것이 물론 경찰관의 일이다. 그러나 경찰과 맞서는 사람은 자신의 폭력을 모든 사람이 반드시 복종해야만 하는 질서유지 행위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위선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표방하는 신념을 끝장내야 한다.” 449 우리가 파시즘의 존재를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치 수백 번 그런 장면을 보았다는 듯이 무심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군중들의 시선이 그것이다. 뭔가 말할 수 없는 슬픔…… 그리고 침묵.
450 1974년에 프랑스에서 나온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는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반밝시즘의 전복세력이 되었다. 지난 30년간 프랑스의 지식사회에서 전지전능의 힘을 갖고 있던 맑시즘, 모든 이론적·정치적 성찰이 거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이며 이 시대의 극복할 수 없는 지평이었던 맑시즘은 70년대에 속절없이 허물어져 갔고, - 장기적으로 - 지식 현장에서 사라져 가는 중이었다.
453 그들은 일반인들이 조용히 있는 가운데 법원 자체가 어떤 안을 내어 스스로를 개혁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한 깊은 변화는 근본적 비판, 단호한 거부 그리고 약해지지 않는 목소리들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453 푸코는 감옥과 투옥의 무자비한 논리를 반박한다. “그는 자신이 완강하게 부인하는 혐의사실로 형을 선고받았다. 자신이 유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가 감옥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감옥의 메커니즘은 그가 반항을 하므로 그를 고등감시구역에 이감시켰다. 고등감시구역에 이감되었다는 것은 그가 위험하다는 의미다. 감옥에서 ‘위험’하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의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함을 뜻한다. 그가 부인해 보았자 소용없다. 그가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라고 귿르은 생각하는 거다. 고등감시구역이 그 증거들을 전달해 준다. 예심판사가 충분히 보여 주지 못한 것을 감옥이 보여 주고 있다.”
455 어디에 오류가 있는가? 몇 년 전부터 감옥의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는 사람들은 감옥이 ‘처벌하고 교화하기 위해 설치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벌을 준다? 아마 그럴 수 있겠다. 교화한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직업 교육도 없고, 재취업의 교육도 없으며, 그저 ‘범죄 환경’의 강화가 있을 뿐이다.
455 무책임한 지식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푸코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당신들, 오늘의 범죄가 어제의 처벌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들은 이성적인 추론의 능력이 없다. 그러나 더 나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최소한 우리처럼 당신들도 자의적인 힘에 도취되어 잠자고 있는 사법의 피해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당신들은 또한 역사적 위험물이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제도에 대한 연구 없이 한 사회가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 사법제도도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는 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456 (감옥의 탄생, 성의 역사)두 저서에서 그는 ‘권력’과 그 행사의 양식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감시와 처벌’에서 권력이 인체를 강제하는 ‘규율’의 방식으로 사회 전체를 관통한다는 것을 부여 주었으므로, 이어서 성과 권력의 메커니즘 및 그물망을 연걸하는 ‘장치들’ 더 정확히 말해 근대 사회에서 섹슈얼리티가 곧 특정한 개인의 삶의 형태 자체가 되는 방식을 고찰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규율과 함께 이 방식이야말로 권력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기능들 중의 하나다.
[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 , 생체 권력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 , 생체 권력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457 이때까지 그의 분석의 중심에 있던 금기, 터부, 억압, 배제, 침묵은 더 이상 섹슈얼리티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말하라는 명령, 담론화, 담론적 카테고리 설정 등이 성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억압’과 ‘터부’의 주체는 결국 섹슈얼리티 장치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될 정도였다. … 다시 말하면 ‘위반적’임을 자처하는 말들이 사실은 사람들을 예속시키는 기술을 작동시키기 위한 (즉 성적 개인화의 과정 속에서 복종하는 주체들을 생산해 내는) 권력 쪽의 효과적인 간계라는 것이다.
458 성을 말할 때 우리는 모두 다소간 어떤 포즈를 취하면서 말한다. 기존 질서에 도전한다는 의식을 갖거나, 자신이 전복적임을 과시하는 어조를 취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현실을 회피하고 미래를 재촉하는 열기를 보이는 것이다. 반항, 약속된 자유, 현재와는 다른 법이 지배하는 새 시대의 도래 같은 것들이 성의 억압이라는 담론 속에 손쉽게 끼어들어 온다. 예언이라는 과거 시대의 기능이 거기서 되살려진 듯이 보인다. 그 잘난 성이여, 안녕.
459 그는 무엇을 사고 싶었던가? “한 세기 전부터 떠들썩하게 자신에게 위선의 매질을 가하면서, 자신의 침묵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자신이 말하지 않는 것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자신이 행사하는 권력을 비판하고, 자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하는 그런 이상한 사회를 연구해 보는 것이다….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왜 우리가 억압을 당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왜 우리는 방금 전의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면서까지 우리가 억압당했다는 것을 그토록 원망 섞인 어조로 열렬하게 말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459 왜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가 성과 범죄를 연결했는가를 물어보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는 오늘날, 예전에 그것을 죄악시했다는 사실에 대해 왜 그토록 죄악감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459 그러나 이 ‘억압 가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서 그것이 이 가설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푸코는 자신의 직업이 한번 더 역사적·비판적·고고학적·계보학적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성에 대한 담론을 떠받치고 있는 ‘권력-앎-쾌락’의 체제가 어떤 기능과 존재 이유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
460 담론의 생산과 권력의 효과가 성에 대한 진실을 형성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그것을 은폐하는 거짓말을 만들어 냈는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담론들의 내용이며 동시에 도구 역할을 했던 ‘앎의 의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460 ‘지식의 고고학’과 ‘담론의 질서’에서 담론의 희소화 원칙을 조사했던 푸코는 여기서 그 접근방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지금 그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성의 담론화’, 말을 하라는 독촉이며 그 독촉의 형태다. 또 (말의) 증식의 역사와 그 역사를 떠받치고 있는 원칙들, 그리고 그 역사가 기대고 있는 심급들이다. …… “앎의 의지는 도저히 제거될 수 없는 금기 앞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가 결국 성 과학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정신분석에 대한 공격은 분명해 보였다. “하급담당자가 다른 사람의 성 고백을 들어 주는 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 있는 유일한 문명 안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461 권력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사회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큰 덩어리로 나뉘어, 위에서 아래로 서로 반향을 일으키며 점차 제한적인 그룹으로까지 내려와 결국 사회조직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그러한 전면적 이분법적 대립은 권력관계의 원칙이 아니며 그것의 일반적인 모태도 아니다. 차라리 생산기구나 가족, 또는 제한된 그룹이나 제도들 안에서 형성되고 행사되는 다양한 힘의 관계가 사회조직 전체를 둘로 쪼개는 단절의 효과를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462 이 책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은 정신분석과 푸코의 결별이었다. … 푸코는 “당신은 적수를 잘못 설정했다"는 반박이 나올 곳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억압과 금지를 말하면서 성을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프로이트와 맑스의 추종자들)과, 법의 차원에서 말하면서 사실은 “법은 욕망과 그 욕망을 성립시키는 결핍을 구성한다”… 라고 생가하는 사람들을 혼동하고 있다는 반박이다. 그러나 …. 비록 서로 다른 결론과 정반대의 선택으로 귀결된다고는 하나 그것들이 똑같은 ‘권력의 표상’을 나눠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유일한 중앙집권적 권력이라는 왕권적 모델에 집착하는 사법-정치적 개념이다.
464 결국 ‘앎의 의지’에서 우리는 초기부터 푸코의 책에 강박적으로 보이는, 과학의 개념에 대한 회의를 볼 수 있다. … 고백을 과학이라는 새로운 형태 속에서 가능하게 하는 이 모든 ‘권력장치’에 대한 그의 연구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수세기 동안 서구 문화가 이룩한 인간 예속의 거대한 작업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보여 주는 일이다.
465 언제나 그렇듯이 푸코는 이 역사적 조사를 자기 혼자서 직접 할 생각이었다. 그의 #역사 #연구 방법은 그런 것이었다. 즉 어떤 문제나 어떤 시기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없고, 자신이 직접 가서 보는 식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아마도 푸코가 철학적 사유방식에 도입한 가장 큰 단절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랫동안 ‘사변적’ ,이론적 성찰은 역사에 대해서 소원한, 어쩌면 약간 오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철학자들은 생생하고 ‘정밀한’ 1차 자료로 간주되는, 그리고 가끔은 매우 수준 높은 역사서를 읽고는 잠시 성찰한 후 자신이 직접 얻은 것이 아닌 진실과 의미를 거기에 부여하기 일쑤였다. 다른 사람의 연구성과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게 용납되는 관행이었다. 너무나 손쉽게 용납되었으므로 그 누구도 이미 되어 있는 연구결과를 기초로 자신이 연구를 한다는 것을 감추려 하지 않았고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그것을 인용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465 아마도 ‘맑시즘 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 때문이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남들이 저 아래 내려가서 본 사실을 위에 앉아 머리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여하튼 그와 똑같은 식의 변화가 “모든 사유의 대상을 손쉽게 역사학자들의 손에서 건네받지 않으려는 풍조를 일으켰다. 역사적 대상에 직접 접근하여 그것을 자신이 정의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나서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자신, 우리의 사상, 우리의 행동에 대한 성찰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또 반대로 역사의 암묵적인 가설에 우리도 모르게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것은 또한 성찰에 새로운 역사적 대상을 주는 한 방식이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역사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성찰인 것이다. 우리의 사유에 역사연구라는 훈련을 부과하는 방법이며, 또 한편으로는 역사연구에 개념적·이론적 테두리의 변화라는 시험을 부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466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자기가 광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고통을 요하는 일이다.”
468 ‘나는 욕망이라는 말을 참을 수 가 없어. 당신이 그 말을 다르게 사용한다 해도 나는 ‘욕망=결핍’ 혹은 ‘욕망은 곧 억압’이라는 생각과 느낌을 피할 수가 없어.’ … ‘내가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을 당신은 욕망이라고 부르지. 하지만 여하튼 나는 욕망이 아닌 다른 말이 필요해.’”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써놓았다. “물론 다시 한번 이것은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나는 ‘쾌락’이라는 단어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내게 있어 욕망은 아무런 결핍도 함축하지 않는다…. 나는 쾌락에 아무런 실증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쾌락은 욕망의 내재적 과정을 단절시키는 것으로 보이니까. 나에게 쾌락은 지층과 생체구조 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470 그러나 나는 성의 억압이 없었다고 주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권력·지식·성의 관계를 판독해 내기 위해 분석 전체를 억압의 개념 쪽으로 향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성의 금지·방해·거부·은폐 등을 좀더 복합적이고 좀더 전면적인 전략에 삽입시켜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실을 잘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현상들의 가장 기본적이고 주요한 목표가 단순히 억압에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71 평행선(les parallèles)이란 무한대 저편에서 합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이가 벌어지는 또 다른 평행선들을 상상해 보자. 그것들이 한데 만나는 지점은 없고 그것들을 회수할 자리도 없다. 가끔 서로를 비판하는 메아리만 들려올 뿐이다. 그들을 분리시키는 운동 속에서 그들을 포착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치닫고 있을 때, 또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의 단계로 향하고 있을 때, 그리고 ‘모든 평판’이 사라진 곳에서 그들이 남긴 흔적, 그 한순간의 반짝임을 재발견해야만 한다.
472 우리가 들어서 그들의 속마음을 간파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그들이 분노와 절망의 몸짓 속에서 권력과 나눈 말일 뿐이다. 즉 ‘이 불행한 사람들’이 다른 ‘불행한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달라고, 또는 가족이나 이웃 등 자신의 세계에서 뒤죽박죽이 된 모든 것에 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고 왕에게 청원하는 때의 말일 뿐이다.
473 글을 쓰는 것은 다소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요. 책을 한 권 끝낸다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책을 사랑하는 동안 책을 쓰지요. 그러나 일단 그것을 사랑하기를 그치면 그때 그 책을 쓰는 일도 그칩니다.
477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지든,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구이든 간에 모든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분연히 일어나 의연하게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주장할 수 있는 국제 시민권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피지배자며, 그런 점에서 강한 연대감을 느낍니다. 사회의 행복을 책임진다는 미명하에 모든 나라 정부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야기한, 그리고 자신들의 태만이 허용한 사람들의 불행을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권력 남용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그 정부들의 눈과 귀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 세계 시민의 의무입니다. 사람들의 불행이 결코 말없는 정치적 쓰레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권력자에 대항하여 말할 수 있는 절대적 권리의 기초가 바로 그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임무의 분산, 즉 개인들은 분노하고 말하며, 정부는 숙고하고 행동하는, 그런 식의 임무 분산을 거부합시다. …. 정부가 독점하고자 하는 현실 속에 개인들의 의지를 새겨 넣읍시다. 정부로부터 이 독점을 매일같이 조금씩 빼앗아 내야 하겠습니다.
6장 맨손으로 하는 저항
#1978년 1978년 초부터 1979년 초까지 팔라비 왕조의 독재와 서구화에 대한 불만, 이란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귀국 요구 등이 폭발하며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로, 이 봉기는 이란 혁명의 시작이며, 결국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으로 이어졌다
480 현대 세계는 어디선가 생겨나 활동하다가 사라져 버리고는 또는 어느 땐가 다시 나타나 사람과 사물을 뒤흔들어 놓는 이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것은 단지 지식인사회에서만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서유럽의 대학에서만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특히 이때까지 말하는 습관이 없었고, 남에게 자기 말을 듣게 만들 줄 몰랐던 소수파 그룹에서 생겨나고 있다.
481 이념이 생겨나는 곳, 그것들이 폭발하는 현장을 목격해야만 한다. 그것을 말하는 책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힘이 표출되는 사건들 속에서, 그리고 그 이념들의 주변에서, 그것들에 찬성하며 또는 반대하며 펼쳐지는 투쟁들 속에서 그것을 직접 보아야 한다.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이념들이 아니다. 그러나 세계를 지배하는 사람들, 또는 하나의 생각만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에 의해 세계가 수동적으로 움직이지만은 않는 것은 이 세계가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또는 끊임없이 이념들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르포르타주 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이 르포르타주에서는 사람들의 생각에 대한 분석이 현장에서 실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분석과 깊이 연결될 것이다.
484 “유럽에 앉아서 이 오래된 나라의 너무 현대적인 군주의 행, 불행을 말하지 않기 바란다. 이란 현지에서 낡은 것은 바로 샤이다. 그는 50년, 1백 년 뒤떨어져 있고, 약탈 군주 시대의 나이를 갖고 있다. 자기 나라를 세속화와 근대화에 의해 개국시키려는 낡은 꿈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날 과거회귀(archaisme)는 바로 그의 근대화 계획이며, 독재의 무기이고, 부패의 체계다.
486 ‘이슬람 정부’라는 이 의지 속에서 우리는 화해와 모순을 보아야 할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향하는 문턱을 보아야 할까? … 그 땅과 지하를 차지하기 위해 전 세계가 전략적 각축을 벌이고 있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생명의 희생까지도 감수하며 정치적 영성(spiritualité politique)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490 자기 나라의 온갖 언론매체의 지원을 받는 그 어떤 국가원수, 그 어떤 정치 지도자도 오늘날 자신이 그와 같이 강렬하고도 친밀한 애착의 대상이라고 자부할 수 없다. 이 끈끈한 애정의 관계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다. 우선 호메이니가 현장에 없기 때문이다. 15년 전부터 그는 망명생활을 하고 있으며 왕이 하야하기 전까지는 귀국하지 않을 생각이다. 두번째는 호메이니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안 돼’라는 말 이외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샤도 안 되고, 정부도 안 되고, 외세 의존도 안 된다. 마지막으로 호메이니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메이니 당은 없을 것이고 호메이니 정부도 없을 것이다. 호메이니는 집단의지를 결집시키는 하나의 구심점일 뿐이다.
491 자신들을 내리 누르는 엄청난 무게를 맨손으로 들러 올리려는 사람들의 봉기다. 세계 전체의 질서라는 그 무게는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지만 특히 제국 국경의 농부며 석유 노동자인 그들을 더욱 힘겹게 짓누른다. 아마도 지구 전체의 체제에 대항하는 역사상 처음의 봉기가 아닐까. 그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저항이다. 그리고 가장 무모한 저항이기도 하고.
499 요즘에 지식인이라는 말은 별로 ‘인기’가 없다. 나는 이 말을 아주 정확한 의미에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가 지식인이 아니다’라고 말할 계제가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웃을 것이다. 나는 지식인이다. 사람들은 내가 나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을 것이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전체의 커다란 필연성에 비해 볼 때 그런 식의 죽음, 그런 식의 함성, 그런 식의 봉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의 일반원칙이 중요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전략가라면, 그 전략가가 정치인이든 역사가든 혁명가든, 또는 샤나 아야톨리의 추종자든 나는 개의치 앓는다. 나의 이론적인 도덕은 그와 정반대다. 그것은 ‘비전략적’이다. 개인이 봉기할 때는 그것을 존중하고, 권력이 보편적 법칙을 위반할 때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간단한 선택이고 불안한 작업이다. 왜냐하면 역시의 밑에서 역사를 단절시키고 뒤흔들어 놓는 어떤 것을 엿보아야 하고 동시에 정치의 뒤에서 무조건적으로 정치를 제한하는 어떤 것을 감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나의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첫 번째 사람도 아니고 유일한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499 …역사의 밑에서 역사를 단절시키고 뒤흔들어 놓는 어떤 것을 엿보아야 하고 동시에 정치의 뒤에서 무조건적으로 정치를 제한하는 어떤 것을 감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것은 나의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첫번째 사람도 아니고 유일한사람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푸코가 이란 혁명에 적극 참여하며- 왜 이란 혁명에 열광했는가](푸코가 이란 혁명에 적극 참여하며- 왜 이란 혁명에 열광했는가)
500 그것은 좌절된 소명감에 대한 고백이고,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채 확신을 수정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채로 남아 있으면서 판단의 전환을 해야 하는 그런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의 토로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확신에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지는 말 것“을 충고하는 메를로-퐁티의 교훈을 매일매일 지켜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500 그는(푸코) 자신들의 과거에서부터 열린 미래를 창조하고, 전통에서부터 새로운 역동성을 이끌어 내고, 고유의 원칙만으로도 개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이슬람 국가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507 논쟁의 조건들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진지한 작업들이 출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간에 세계 역사에 대해 아무것이나 이야기하고, 또 고정관념의 문구나 슬로건으로 근대사를 재구성하는 성급한 책들이 쇼윈도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507 서로 다른 이념들 사이의 교환, 토론, 요컨대 활발한 논쟁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잡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폐쇄적인 동인들의 잡지거나, 아니면 미적지근한 혼합의 형태일 뿐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잊혀지고 있는 것은 비판적 연구의 기능이다. …. 책을 한 권 읽고 그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또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훈련이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책에 대해 성실하게 말하거나 또는 자신이 너무 좋아하는 책을 충분한 거리를 두고 말하려는 그 노력은 글에서 글로, 책에서 책으로, 작품에서 평론으로 어떤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을 가능케 한다. … 그런데 비평은 이 기능을 잊어버리고 정치적, 사법적 기능으로만 향하고 있다. 정적을 비난하고 상대방을 판단하여 유죄선고를 내리거나 아니면 상대방을 잘 봐주면서 그에게 월계관을 엮어 준다. 참으로 빈약하며 재미없는 기능이다. 나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개인들의 반응이 제도의 메커니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책임은 바로 거기에 있다. 여하튼 오늘날 진정으로 비판의 기능을 담당하는 출판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평
510 존재의 문제이며 동시에 제도의 문제이고, 또 사유의 문제인 수많은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인 규정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사유 의 운동과 제도들을 분석하고, 일상적•인격적• 개인적 삶의 문제를 서로 소통시키는 것만이 정치라는 카테고리가 세워 놓은 장막을 찢어 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사상 과 #제도 들을 변화시키는 운동에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소통 이다. 우리가 미리 기호화하고, 정치적인 것을 미리 결정해 버리면, 지적인 삶과 정치적인 논쟁은 2불모화된다
7장 아깝게 놓친 만남
[푸코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과 폴란드 계엄령 사태](푸코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과 폴란드 계엄령 사태)
512 “이 선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승리로, 다시 말해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의 관계가 수정된 것으로 체험된 듯하다. 그렇다고 통치받는 자가 통치하는 자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다. 결국 정치계급 안에서의 자리바꿈이 있었을 뿐이다. 우리는 사회당이 포함하고 있는 위험과 함께 사회당 정부 안에 진입했다 그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한 정부에 협력하여 일하는 것은 전면적인 수락이나 복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협력하면서 동시에 비협조적일 수도 있다. 그 두 가지가 짝을 이룬다고까지 나는 생각한다.
523 동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옆에 나란히 걷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것이다
527 사실 나는 이 에피소드 내내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카드 게임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에 푸코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했던 부르디외의 전략은 두 이름을 고의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었고, 푸코의 전략은, 좀더 큰 전체 속에서 용해시키기 위해서건(‘지식인 그룹’) 아니면 자신이 노조 지도부의 유일한 상대가 되기 위해서건, 이 두 이름의 연합을 깨는 것이었다.
529 1981년 12월에 내가 말하려 했을 때는 말을 못하게 하더니, 내가 침묵을 지키니까 사람들은 내 침묵에 놀라고 있다. 그 결론은 한 가지뿐이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과 같은 견해일 때에만 내게 말할 권리를 준다.
529 우리가 당신들에게 담론을 바꾸라고 말했을 때 당신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호를 내세우며 우리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제 과거에 당신들이 감지할 능력이 없었던 현실의 압력으로 할 수 없이 전선을 바꾸게 되자 당신들은 우리에게 사상을 제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현실에 대적할 사상이 아니라 당신들의 변화를 은폐시킬 가면을 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지식인들이 더 이상 맑시스트가 아닌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지식인들과 연대하는 것을 꺼리는 망설임 때문에 적당한 시기에 당신들의 통치 작업에 유용할 수도 있는 사유의 작업을 지식인들로쿠터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530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이 사회당 사람들의 의식구조의 탐사였기 때문이다. 그 몇 년 사이에 여기저기서 발표된 전체주의 현상에 대한 간략한 분석들을 보고 그는 몹시 화를 냈다. “‘전체주의’라는 것은 적절한 개념이 아니다. 그런 조잡한 도구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연구해야 할 대상은 당(Parti)이며 당으로서의 기능이다.”
‘아깝게 놓친 만남’, 푸코라는 거대한 지적 에너지가 기존의 정치 시스템(정당) 속으로 들어가 체제 전복의 도구가 될 뻔했으나, 푸코가 권력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의심을 가졌기에 결국 정당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저항의 길을 걷게 된 사건을 말합니다.
8장 선(禪)과 캘리포니아
536 기독교적 영성과 그 테크닉에서 아주 인상적인 것은, 거기서는 항상 개인화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영혼 밑바닥에 있는 것을 포착하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요 ‘네가 누구인지 내개 말해 달라’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영성주의 입니다. 그런데 선에서는(선사,절,일본) 영성과 연결된 모든 테크닉이 개인을 지우는 경향이 있는것처럼 보입니다.
538 전통 사회학, 다시 말해 뒤르켐식의 사회학은 ‘사회가 어떻게 개인들을 한데 응집시키는가? 개인들 사이에 수립되는 관계의 형태 또는 감정적이고 상징적인 소통의 형태는 무엇인가? 사회가 하나의 전체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조직의 체계는 무엇인가?라는 등등의 질문을 제기했다. 나는 그 반대의 질문에 관심이 있다. 또는 그 문제의 반대 대답에 관심이 있다. 즉 ‘누구를 제외하고, 어떻게 분리를 하면서, 그 어떤 배제의 체계를 통해, 그리고 어떤 부정과 거부의 작용을 통해 사회는 가능하는가?‘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는 반대의 질문을 하겠다. 감옥은 배제라는 수동적 기능으로만 축소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조직이다. 그 비용과 규모,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는 데 들이는 노력과 그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이론들, 이 모든 것은 감옥이 포지티브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시하고 있는 듯하다.
539 60년대 이후 지식인의 역할은 자기 경험과 능력 그리고 개인적인 선택과 욕망에 따라 그 파시즘의 형태들을 드러내게 할 수 있는 지점에 자리 잡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그는 불행하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또는 너무 쉽게 용인된 파시즘의 형태들을 드러내고, 묘사하고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부각시키며, 그것들을 타도하기 위한 투쟁의 적당한 형태가 무엇인지를 규정해야 한다. …. ‘당신은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투쟁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하튼 최근에 지식인들이 행하는 특정 지점에서의 참여는 이론적·역사적 분석이 구체적 투쟁과 별개의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다.
544 푸코는 많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프랑스에 돌아올 때마다 근느 유능한 수많은 직원들이 보물 같은 수천 권의 장서를 완벽하게 정리해 놓은 미국의 도서관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푸코는 끊임없이 읽고 노트하고 색인 카드를 만드느라고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545 미셸 푸코에게 있어서 미국은 연구의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냥 즐거움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는 동성애 잡지, 신문, 동성애자들의 바와 나이트클럽 등이 번창하고 있는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546 우리를 방어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게이)과 창조적 힘을 확고하게 주장해야 한다. ….우리의 육체를 수많은 쾌락의 가능한 근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 가능성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548 그러니까 마약은 푸코가 실행하고 발전시키려 했던 쾌락의 ‘증식과 강화’에 기여하는 조직자였다.
550 프코는 미국에서 행복을 느꼈다. 자신과의 화해가 마침내 실현된 것이다. 일하는 것도 즐거웠고 육체적 쾌락에서도 행복했다. ….천국 같은 캘리포니아네서 살고 싶다는 꿈을 공공연히 사람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태양이 빛나는 멋진 캘리포니아….
9장 예술작품으로서의 인생
552 1979~80년의 콜레주드 프랑스 강의 ‘생명체의 통치에 관하여’에서… 서구 기독교 문화에서 인간에 대한 통치는 왜 사람들에게 단순한 복종과 순종만이 아니라 ‘진실의 작업’을 요구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주체는 단순히 진실을 말하도록 요구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과오에 대해, 자신의 욕망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영혼의 상태 등에 대해 말하도록 요구되는 것이다. 단순히 복종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그것을 말로 표현하도록 요구하는 그런 유형의 인간에 대한 통치는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552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는 진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 관리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보인다.
553 이교 문화 속에서 중요한 문제는 금욕의 엄격한 규칙이 아니라 ‘자기 수양’(formation de soi)과 ‘자기 테크닉’….이었다. ‘자기에의 배려’와 ‘쾌락의 활용’을 고대철학 속에서 찾으러 떠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기독교 문화가 발전하기 이전에 이교 문화가 어떻게 ‘예속의 양식’(즉 주체의 형성)을 형성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554 여기서 우리는 낡은 억압 가설과 그 상투적인 질문(왜 그리고 어떻게 욕망은 억압되었는가?) 주변에 성의 역사를 설치하는 것이 얼마나 진실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행동과 쾌락이 문제이지, 욕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삶의 기술을 통한 자기 수양의 문제이지, 억압이나 법의 금지는 아니다. 성이 어떻게 멀리 배제되었는가를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성과 주체를 연결 지슨 그 오랜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 주어야만 한다.
556 육체의 대한 기독교적 윤리의 주요 요소가 형성된 것은 후기 고대 사회에서이기 때문이다.
558 근대사회에서부터 기독교를 거쳐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미셸 푸코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총체적인 의문에 부딪쳤다. 그것은 왜 성적 행동이, 다시 말해서 성에 관련된 쾌락과 행동이 도덕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시대에 따라서 이 윤리적 관심이 음식을 먹는 행위나 혹은 공민적 의무의 수행 같은 개인이나 집단의 다른 생활 영역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중요하게 보였던 이유는 무엇인가?
561 무진 애를 쓰면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시작하고,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주저하는 발걸음을 떼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똑같이 불안과 망설임 속에서 작업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의무를 포기하는 사람들, 그렇다. 우리들은 같은 별 위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564 그 누구도 위대한 책의 형식…과 내용을 미리 재단할 수는 없다. 기껏해야 독자는 ‘그가 그런 방법을 썼어야 하는데’라는 정도의 꿈을 꿀 수 있을 뿐이다.
571 나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에이즈라는 건 정말 있는 거야, 아니면 교훈을 주기 위해 꾸며진 소문이야?”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조용히 “나도 그 문제를 생각해 보았어. 그것에 대한 자료도 많이 읽어 보았고. 그래, 틀림없이 그건 존재해. 소문이 아니야. 미국인들이 아주 자세히 연구를 해놓았어.” (….) 돌이켜 보면 내 바보 같은 질문에 대한 그의 침착함은 지금도 숨이 막히도록 놀랍다. 그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 틀림없고, 언젠가 내가 그것을 기억해 낼 것이라는 계산에서 씁쓸한 위안감과 함께 심사숙고 끝에 그런 대답을 생각해 냈음에 틀림없다. 살아 있는 ‘모범’을 보이는 것은 고대철학의 또 하나의 전통이었다….
574 그는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념 등의 전통적인 구분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살아 있는 존재의 영역에 관찰대를 설치했다. 광기·성·범죄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서 그의 시선은 마치 등대처럼, 아무리 불확실한 것이라도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채, 그리고 정통이라는 교조에 머무르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채, 역사에서 현재로 서서히 빛을 비추었다. 수많은 중심점을 갖춘 지성,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거울이 달린 그의 지성 안에서 생겨나는 그의 판단들은 그 반대 이론에 부딪혀도 파괴되거나 물러남 없이 오히려 더욱 두터워졌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 모든 것은 극도의 호의와 선량함의 기초 위에 놓여져 있었다.
578 (푸코, 드레이퓌스와 라비노에게)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예술 이 더 이상 개인들 혹은 인생과 관계를 맺지 않고 오로지 사물과만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인생은 모두 하나의 예술작품이 아닐까?
부록
부록 1 문학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논문 인쇄허가를 얻기 위해 함부르크의 프랑스 문화원장인 미셸 푸코 씨가 제출한 원고에 대한 조르주 캉길렘의 보고문
부록 2 미셸 푸코의 연구업적
부록 3 콜레주 드 프랑스 1969년 11월 30일 교수회의 -‘사유체계의 역사’ 강좌 개설을 위한 쥘 뷔유맹의 보고서
부록 4 콜레주 드 프랑스 1970년 4월 12일 교수회의 -‘사유체계의 역사’ 강의를 맡을 미셸 푸코의 업적 소개를 위한 쥘 뷔유맹의 보고서
부록 5 자유로운 사상 -피에르 부르디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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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주요 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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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Ramb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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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집안에서 테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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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그와 같은 이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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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니는 푸코의 교육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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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로 힘들어한 그는 스스로 유배를 선택하고
- 그곳에서 정말로 열심히 책을 읽고 노트를 정리하고 자신만의 사유의 시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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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2차대전-이 끝나고 맑시즘이 환산되고 공산주의에 열광, 푸코도 공산당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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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실력에도 그는 교수자격시험 첫번째 시험에 낙방한다
- 2번째 도전했고 시험에서 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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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이성이 광기를 제단하고 억압하는 부조리를 설명했다. 그의 <광기의 역사>를 통해서.
- 4장에서 푸코는 정신병원에서 보조리 일하면서 과학적 , 의학측정하는 것을 경험했고
- 감옥에서도 일하면서 뇌촬영등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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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말하는 인간의 심리적 병, 정신의 병은
- 언젠가 환자가 소외의 운명을 겪지 않게 되는 날이 올 때, 우리는 비로소 정신병을 인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라고 말한다. 이 사회의 경젱과 계급 체계가 인간을 소외 시키고, 그것이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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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위대한 작품이라고 부르는 니체와 고흐의 작품들
- 우리가 광인으로 분류하거나 경계에 있었던 예술가들, 이성적인 세계가 그들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광인의 예술’을 들여다 보는 역설, 이성(세계)은 작품들의 거대한 힘과 진실 앞에서 자신의 합리성이 얼마나 좁고 편협했는지를 시험해야 합니다
- 푸코는 이런 현실을 알아차린 것이였다.. 역시 천재는 다르다!!
- 우리는 우리세계의 부조리를 광인이나 광인의 경계에 있는 자들의 작품을 통해서 깨달게 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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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에게 맑스의 무거운 이데올로기가, 그 한정된 테두리를 벗어난 것들을 볼수 있는 눈을 가려버렸다 209
- 이데올리가. 신앙 , 믿음.. 강한 신념일 수록 세상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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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프랑스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되었을때 …그는 강한 반대,비난에 휩싸였다…..335
- 유명해 질 수록 삶은 더 강한 인내력과 맨탈을 요구하는 것 같다.
- 나를 비난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속에 내 멘탈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전문성,실력, 나만의 철학은 확고해야할거 같다
- 유명해 질 수록 삶은 더 강한 인내력과 맨탈을 요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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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이란 어떤 장소일까. 감옥에 가면 범죄자들이 회계하고 새사람이 되어서 나오는가? 아니지 않은가? 454
- 감옥의 목적은 오로지 사회에서의 격리인가?
- 벌을 준다? 벌을 주는 방법이 감옥에 보내는 것만 있는 것인가?
- “직업 교육도 없고, 재취업의 교육도 없으며, 그저 ‘범죄 환경’의 강화가 있을 뿐이다”
- “수천 프랑의 돈을 훔진 죄로 감옥에 들어온 사람은 감옥에서 큰 도둑이 되어 나갈 가능성이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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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근본적 생각의 틀이 있었구나
- 근대 사회는 성(Sex)을 단순히 억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네 성적 취향이 무엇인지 말하라” 며 끊임없이 담론화했습니다.
- 왜 그런가?: 내가 어떤 성적 욕망을 가졌는지가 곧 ‘내가 누구인가(정체성)’ 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동성애적 행위’가 있었다면, 근대 권력은 그것을 ‘동성애자’라는 하나의 삶의 양식(인간 유형) 으로 분류해 버립니다.
- 근대 사회는 성(Sex)을 단순히 억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네 성적 취향이 무엇인지 말하라” 며 끊임없이 담론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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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위에서 너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지만
- 먼저,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자기가 광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야한다. 그것은 많은 시간과 고통을 요하는 일이다.” 466
- 그것에 대해 자신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에 어떤 편견이나 다른 해석이, 오류가 있을수 도 …
- #이어령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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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스의 3차원 권력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와 푸코의 결정적 차이점이 있습니다. 룩스와 알튀세르에게는 국가의 배후가 있습니다. 룩스에게는 ‘지배 권력’이고, 알튀세르는 자본주의의 집행 기관인 ‘국가’죠. 하지만 푸코에게는 권력의 관계망이 있을 뿐, 그 권력을 만들어서 행사하는 배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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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계엄 사태, 푸코는 폴란드의 폭력적 계엄을 들어내고자 노력한다. 비록 다른 나라 이지만
- 5.18 우리나라 광주 사태때도 외국인의 역할이 컸는데, 비슷한 상황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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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푸코가 숨겨져있던 권력의 모습들을 드러내는 책들을 통해 - GPT의 도움으로 이해하면서 읽고 있는데 , ‘와’ 라는 탄성이 계속되어 집니다. 정말 내가 서 있는 이 사회에 형성되고 ‘나’에게 영향을 주는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8. 🔗 References
YG님의 코멘트 국내에 나온 이런 책들이 모두 푸코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들이죠. 얼른 생각난 게 다섯 권이고 훨씬 많습니다. :(
정신병을 팝니다 -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가 영국 의료인류학자 제임스 데이비스는 이 책에서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에 일어난 거대한 변동이 정신 건강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정신질환이 약물로 치료해야 하는 한 개인의 뇌의 문제로만 비춰질 때, 정신적 고통을 둘러싼 맥락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정신병의 신화 반정신의학의 선구자이자 정신의학의 전복자 토머스 사스는 《정신병의 신화》에서 “정신병은 은유”라고 선언하며 자기 분야에 가장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들이댔다. 사스는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병 개념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근본적으로 억압하고 훼손하는 방식을 꿰뚫어봄으로써 정신의학의 토대를 뒤흔들었다.
우울증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 - 일본에서 우울증의 탄생 의료인류학자 기타나카 준코가 일본에서 우울증이 폭발적으로 급증하게 된 과정과 이유를 심층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1990년대 말 북미 친구들에게 받은 질문, “일본 사람들은 왜 우울증에 걸릴 만큼 일을 하느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25년간 우울증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한 정신 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 내부자의 시선으로 현대 정신 의학계의 문제점을 폭로하는 내부 고발서인 동시에, 진단의 기준을 대폭 넓힘으로써 그릇된 정신병의 유행을 일으키는 데 스스로도 일조한 데 대한 일종의 양심선언이다.
프로작 네이션 - 우울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 보고서 <비치 : 음탕한 계집> 등의 저서를 통해 제3세대 페미니즘을 대변했던 엘리자베스 워첼의 자전적 회고록.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사르트르와 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