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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 후마니타스 인간다운 고결한 품격,인간을 위한 가장 좋은 것이 종교인가 아니면 인간을 연구하고 인간을 우선시하는 휴머니즘인가

📚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

[!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세라_베이크웰
  • 번역: 번역/이다희
  • 출판사: 출판사/다산초당
  • 발행일: 2025-12-15
  • origin_title: Humanly Possible
  • 나의 평점: 10
  • 완독일: 2026-04-30 06:14:06

1. 🖐️ Before Reading (읽기 전)

1.1 동기와 기대

그믐 26/4월

2. 📜 Synopsis (LLM)

Summery

세라 베이크웰의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은 분열과 혐오, 기술 발전이 심화되는 시대에 ‘인간다움’의 가치를 탐구하는 책입니다. 르네상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700년간의 휴머니스트들의 삶을 조명하며, 종교적 탄압, 전쟁, 불평등 속에서도 타인을 이해하고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던 이들의 ‘태도’와 ‘실천적 선택’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휴머니즘이 이념이 아닌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비판적 사고, 공존, 연대를 통해 끊임없이 갱신되는 인간만의 가능성이라고 역설하며, 고립과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을 선택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있음을 일깨웁니다.

이책은

  1. 추상적 관념에서 구체적 ‘삶’으로의 전환
    1. 철학이 상아탑 안의 복잡한 수식이 아니라, ‘살아있는 경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
  2. ‘선택’이라는 숭고한 형벌
    1. 인간에게 주어진 ‘절대적 자유’ 가 축복인 동시에 고통임을 논리적으로 전개
  3. 역사적 맥락과 도덕적 참여
    1.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배경 속에서 실존주의가 어떻게 ‘참여(Engagement)‘의 철학으로 진화했는지를 보여줍

Keyword

#인간다움, #휴머니즘, #연결, #희망, #인간의가능성, #지성사, #철학, #공존, #타인이해, #세라베이크웰

Author

저자(글): 세라 베이크웰 (Sarah Bakewell)

  • 1963년 영국 본머스 출생, 어린 시절 호주 시드니에서 보냄.
  • 에식스대학교에서 철학 공부. 런던 도서관 고서 큐레이터, 옥스퍼드대학교 켈로그칼리지에서 문예 창작 강의.
  • 주요 저서: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 (더프 쿠퍼상, 미국 전미도서비평가상 수상),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윈덤-캠벨 문학상 수상.

번역: 이다희

  •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철학,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고전학 공부.
  • 주요 역서: 《토니 모리슨의 말》, 《타인의 기원》, 《보이지 않는 잉크》, 《일터의 소로》, 《거실의 사자》 등.
  • 2023년 첫 에세이 《사는 마음》 출간.

3. 🔆 Insight & Deep Dive

3.1 깨달은 점 (Aha Moment)

  • 커트 보니것의 말처럼, 죽음 다음에 올 상벌애 대한 어떤 기대나 불안을 내던저 버리고

  • 인간에게 좋은 것이 무엇이고, 같이 살아가는 서로간의 배려 내에서 온전한 자유를 누리며 이 지구에서의 삶을 고귀하게 지나가면 되는것이다

  • 제임스 볼드윈의 말처럼

  • 인간을 위함이라는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는 사상이나 종교의 발자취를 보면, 인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들이 그것들임을 부정할수 없다

  • 지구를 가장 어지럽고 교란하는 것 역시, 자본주의 과 권력,탐욕을 기반한 사상들 아닐까.

  • 2026 미국 트럼프의 행태와 각국의 민족주의, 돈과 권력의 , 초기업들의 무한 질주를 보면 다를게 없어보인다.

3.2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3.3 내 삶에 적용하기 (Action Item)

4. 🏆 Top Highlights

📌 첫 번째 문장

근현대의 휴머니스트들은 대부분 종교적 믿음 없이 살아가고, 도덕적 졀정을 할 때 공감력,이성, 다른 생물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들의 세계관은 작가 커트 보니것이 잘 요약한 바 있다 “나는 휴머니스트다. 죽은 다음에 올 상벌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이 인간답게 행동하려고 어느 정도 노력했다는 뜻이다”

📌 두 번째 문장

페트라르카는 무지는 선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신앙이 독실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직 신적인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경전만 읽는 삶, 혹은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삶이 기독교인의 삶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페트라르카는 지식과 배움의 편에 서 있었다. 말과 관념으로 이루어진 건전한 풍요를 원했다

📌 세 번째 문장

“스토아학파가 어떻게 에피쿠르스학파의 모든 의견에 반박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반대로 반박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존경과 복종이 아닌 논박과 반대가 지적 생활의 본질이다. 게다가 발라는 단지 틀린 점을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왜 틀렸는지를 설명했다. 로렌초 발라

📌 네 번째 문장

231 에라스뮈스는 우리를 몸과 정신의 세계로 안내하며, 우리가 가진 특징이 서로 싸우기보다 도움과 친절을 베푸는 삶에 어울린다고 말한다. 황소는 뿔이 있고 악어는 갑옷 같은 가죽이 있지만 우리의 피부는 부드럽고 팔은 포옹에 어울린다.게다가 “영혼을 보여주는 상냥한 두 눈"을 갖고 있다. 우리는 웃고 울면서 우리의 민감성을 드러낸다. 언어와 이성이 있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심지어 배움에 대한 타고난 애정이 있는데 이를 “우정을 엮어내는 가장 큰 힘” 이라고 말한다.

📌 다섯 번째 문장

23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본성에 있지만 관계와 사회, 정치를 다루는 법은 배워야 한다. 그 배움은 서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배운 것을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 교육이, 특히 시민 정신과 예절 교육이 휴머니즘 세계관에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여섯 번째 문장

333

연결, 소통, 온갖 도덕적.지적 유대, 다양성의 인정과 독단적인 규칙에 대한 의심은 모든 인류의 씨실과 날실이 된다. 우리가 태어난 곳의 문화적 맥락이 어떻든 이 땅에서 충만한 삶을 살게 해주고 서로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절망 속에 갇힌 각각의 영혼이 사후에 뒤바뀔 운명에 희망을 거는 신앙 체계보다는 세속에서의 번영을 추가하는 윤리를 권장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휴머니시트는 로버트 G. 잉거솔과 마찬가지로 행복은 여기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남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 일곱 번째 문장

유일한 선은 행복 행복할 때는 지금 행복할 곳은 여기 행복해지는 방법은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

  • 로버트 G. 잉거솔

6. 🖍️ Book Marks

서문 오직 연결

#휴머니즘 무엇인가? 데이비드 놉스의 1983년 희극 <포대 자루 달리기는 꼴찌에서 두 번째>에서 누군가 묻는다. 논쟁

  • 중세에서 벗어나려는 르네상스 시대의 노력을 의미한다고
    • 14세기와 15세기에 피렌체 같은 이탈리아 도시에서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활기 넘치는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문학적.문화적 부흥 운동…
  • 또다른, “착한 것, 동물을 상냥하게 대하며, 남에게 베플고 양로원을 방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또다른, 휴머니즘(인본주의)과 휴머니타리아니즘(인도주의)를 혼동해선 안도니다고 비판
  • 또다른, 휴머니즘은 초자연주의를 거부하며 인간을 자연물로 보는 철학이다
    • 이성과 과학적 탐구를 통해 자기 실현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 인간이 근본적으로 존엄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을 강조
  • 또다른, 어떤 사람들은 신을 믿지만 , 자신을 휴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 또다른 , 초자연주의를 거부하는 철학

8 근현대의 휴머니스트들은 대부분 종교적 믿음 없이 살아가고, 도덕적 졀정을 할 때 공감력,이성, 다른 생물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삼는다. 그들의 세계관은 작가 커트 보니것이 잘 요약한 바 있다 “나는 휴머니스트다. 죽은 다음에 올 상벌에 대한 어떤 기대도 없이 인간답게 행동하려고 어느 정도 노력했다는 뜻이다”

9 종교적인 문제와 전혀 상관 없는 정의, 휴머니즘 철학자는 살아 있는 인간 전체를 만물의 중아에 놓는 사람 인간을 해체해서 언어나 상징, 추상적 원리 체계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스투디아 후마니타스 Studia Humanitatis ![단어, 어휘 정리#스투디아 후마니타스 Studia Humanitatis](단어, 어휘 정리#스투디아 후마니타스 Studia Humanitatis)

11 과학자들이 물리적 세계를 연구하고 신학자들이 신의 세계를 연구한다면, 인문학자와 휴머니스트들은 예술과 역사,문화를 연구한다.

13 휴머니즘은 개인적인 문제고 그것이 핵심이다. 휴머니즘은 개인에 대한 것이기에 실로 개인적이다.

18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 그리스 데모크리토스는 자연은 모든 존재가 원자로 만들어져 있다고 가르쳤다. 원자는 나눌 수 없는 입자 단위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우리가 만지거나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을 구성한다. 우리 또한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원자의 결합이다. 원자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결합한 상태로 우리의 생각과 감각 경험을 형성하다가 우리가 죽으면 흩어져 다른 형태로 결합한다.거기서 생각과 경험은 끝나므로 우리도 끝난다. ….사후에 내가 남지 않는다면 공포 속에서 살 필요가 없다.

[데모크리토스 Democritus - 최초의 유물론자](데모크리토스 Democritus - 최초의 유물론자)

20 #에피쿠로스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이어받은 철학자)

  • 아테네에 정원garden 이라는 학교를 세우고 생각을 나눔
  •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주요 원인인 신들과 죽음에 대한 거짓된 생각을 피해야 한다고 편지에 쓴적있다

20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신들에 대해서라면 존재한다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 방법이 없다. 질문이 모호하다는 점, 인간의 생이 짧다는 점을 포함해 여러 가지 장애물이 이해를 가로 막는다.

신은 존재할 수 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불확실하고 느낄 수 없는 존재이니, 신들에 대해 걱정하며 짧은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이승에서 남은 인생이나 걱정하자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에게 적합한 잣대는 인간의 잣대라는 결론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내 존재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늘 변화하고 늘 움직이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으니 내 모든 동료 인간들이 주는 위안을 가질 수 없다면 종파와 교리가 무슨 필요인가? 우주라는 넓은 허리띠가 있는데 가락지는 무슨 수용인가. 나는 무궁한 우주와 하나이며 다른 확신은 필요치 않다. 1942년 조라닐 허스턴의 회고록 < 길 위의 먼지 자국>

영국에서 테렌스로 알려진 부플리우스 테렌티우스 아페르의 작품속

나는 인간이고, 인간의 그 어떤 일도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오

아프리카 대륙, 은구니족의 반투어 우분토ubuntu

우리는 한 생명 다발의 일부다.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야 비로소 사람일 수 있다.

공자의 <논어> 1인(仁)

우리의 도덕적 삶이 사람 간의 상호 연결에 뿌리를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33 #종교 #권위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1901 ~ 1902년 강연을 통해 종교에서 전략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분석했다. 먼저 이런 주장은 “현 상태의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처럼” 불편한 느낌이 들게 만든 다음 종교적 해결책을 제시한다 “더 높은 권위와 적절하게 연결됨으로써 그 그릇됨에서 구원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34 지도자나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양심, 자유,이성 위에 군림한다면 안티휴머니즘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34 종종 두 사상(휴머니즘과 안티휴머니즘)은 한 사람안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 이런 양면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안티휴머니즘은 우리가 허세를 부리거나 안주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 주며, 우리 안의 나약하고 흉악한 면에 대해 사실주의적 시각을 제공한다. 어수록하게 있지 말라고 경고하고, 나와 동료 인간이 언제든 어리석은 짓이나 악한 짓을 할 수 있음을 대비하게 만든다. 휴머니즘이 끊임없이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도록 만든다. 한편, 휴머니즘은 지상이든 천상이든 이상향에 대한 춘몽에 빠져 실제 세상에 놓인 과제를 등한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극단 주의자들의 중독성 있는 약속에 저항할 수 있게 돕고, 우리 자신의 결함에 지나치게 집착해 좌절에 빠지는 것을 막는다. 모든 문제를 하느님이나 인간 생리, 혹은 역사적 불가피성에 돌리며 패배주의에 젖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책임질 의무가 인간 자신에게 있음을 일깨우고 지상의 난관고 공동의 안녕에 관심을 돌릴것을 촉구한다

36 휴머니스트 들의 세가지 구요 사상

  • 자유사상 : 휴머니스트는 오직 권위에 호소하는 독단적 학설이나 교리 대신, 자신만의 도덕적 양심이나 물리적 증거, 혹은 타인에 대한 정치.사회적 책임을 기준으로 삼아 삶을 사는 쪽을 선호하기 때문
  • 탐구 : 휴머니스트는 연구와 교육의 가치를 믿으며 경전을 비롯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여겨지는 여러 자료에 대해서도 비판적 논증을 실천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 희망 : 휴머니스트는 인간이 무결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짧은 시간 동안 문학이나 예술, 역사 연구, 과학적 지식의 발전, 우리 자신과 다른 생명체의 복지 향상 등 어느 분야에서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하다 생각.

1 산 자의 땅 - ‘인간’을 부활시킨 최초의 사람들

1
책을 좋아했던 페트라르카 - 이야기꾼이자 학자였던 조반니 보카치오 - 도통 알 수 없는 그리스어 - 덥수룩한 번역가 레온티우스 필라투스 - 역병(흑사병) - 상실과 위로 - 세련된 언어 - 운명의 부침에 대응하는 법 - 미래의 광휘

중세의 어둠을 걷어내고 ‘스투디아 후마니타스’를 꽃피운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거장들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개척자와 거장들

1. 선구자와 초기 인문주의자
이름 생몰연도 활동지역 주요 업적 주요 저서
단테 알리기에 1265–1321 피렌체, 라벤나 이탈리아 문학의 시조, 중세적 세계관의 집대성 <신곡>, <향연>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1304–1374 아비뇽, 피렌체 인문주의의 아버지, 고전 문헌 수집 및 부활 주도 <칸초니에레>, <나의 비밀>
조반니 보카치오 1313–1375 피렌체, 나폴리 근대 소설의 효시, 페트라르카와 교류하며 인문주의 전파 <데카메론>, <이교 신들의 계보>
레온티우스 필라투스 ?–1366 피렌체, 베네치아 서구에 호메로스를 소개(그리스어 번역)한 최초의 학자 중 한 명 호메로스 작품의 라틴어 번역
콜루초 살루타티 1331–1406 피렌체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장, 시민적 인문주의의 기틀 마련 <운명과 행운에 관하여>
2. 문헌 발굴과 예술의 혁신가
이름 생몰연도 활동지역 주요 업적 주요 저서
니콜로 니콜리 1364–1437 피렌체 고대 필사본 수집가, 이탤릭체 서체의 기초 마련 (저서보다 문헌 수집 및 필사로 공헌)
포조 브라촐리니 1380–1459 로마, 피렌체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등 고대 문헌 대량 발굴 <풍설집(Facetiae)>
도나텔로 1386–1466 피렌체 르네상스 조각의 선구자, 고전적 사실주의 부활 (작품) 다비드상, 가타멜라타 기마상
플라비오 비온도 1392–1463 로마 고고학적 역사 서술의 시초, ‘중세’라는 시대 구분 개념 도입 <복구된 로마>, <이탈리아 예찬>
잔노초 마네티 1396–1459 피렌체, 나폴리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인문주의 철학자 <인간의 존엄과 탁월함에 관하여>
레온바티스타 알베르티 1404–1472 피렌체, 로마 ‘보편적 인간(르네상스적 인간)‘의 전형, 예술 이론의 체계화 <회화론>, <건축론>
3. 지식의 확산과 여성 인문주의자
이름 생몰연도 활동지역 주요 업적 주요 저서
크리스틴 드 피장 1364–1430 프랑스(파리) 최초의 직업 여성 작가, 여성의 지적 능력을 옹호 <숙녀들의 도시>, <변호의 서>
알두스 마누티우스 1449–1515 베네치아 알디네 출판사 설립, 포켓북(문고본) 개발, 이탤릭체 고안 (편집/출판) 그리스 고전 전집
카산드라 페델레 1465–1558 베네치아 당대 가장 유명한 여성 인문주의 학자, 라틴어 연설가 <서한집 및 연설집>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1466–1536 네덜란드, 바젤 인문주의의 왕,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 인물 <우신예찬>, <격언집>
라우라 차레타 1469–1499 브레시아 여성의 교육권과 지적 자유를 주장한 서간 작가 <서한집>
피에트로 벰보 1470–1547 베네치아, 로마 이탈리아 표준어(토스카나어) 확립에 기여, 추기경 <아졸라니(Asolani)>, <베네치아사>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 1478–1529 우르비노, 만토바 르네상스 궁정인의 행동 규범과 품격 정의 <궁정론>

이 인물들은 중세의 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고전 문헌의 발굴, 예술적 혁신, 인쇄술을 통한 지식 전파, 그리고 여성의 지적 참여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현대 인문학의 토대를 닦은 주역들.


42 1300년대 전체에 걸쳐 회복과 부활의 정신으로 가득 찬 새 세대 작가들이 나타났다. (…) 이 새로운 작가들은 우정과 지혜, 도덕, 그리고 말의 힘과 재주가 좋은 삶의 기반이 되는 옛 방식을 되찾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요소들을 이용해 저들만의 문학을 다양한 장르로 창조해 냈다. 그들의 무기는 인문학 studia humanitatis이었다.

44 그는 새로운 리비우스 단편이 여러 다른 형태로 손에 들어올 때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단편과 합쳐 한 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다음 세기의 위대한 학자 로렌초 발라의 손에 들어갔다. 발라는 여기에 자신의 주석을 추가해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바로 이것이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문학자들이 계속해서 즐겨 한 일로, 지식을 확장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문헌을 더 풍요롭고 더 정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페트라르카였다.

50 그는 새로운 리비우스 단편이 여러 다른 형태로 손에 들어올 때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단편과 합쳐 한 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다음 세기의 위대한 학자 로렌초 발라의 손에 들어갔다. 발라는 여기에 자신의 주석을 추가해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바로 이것이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문학자들이 계속해서 즐겨 한 일로, 지식을 확장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문헌을 더 풍요롭고 더 정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페트라르카였다.

53 존경하는 고전 시대 작가들을 마치 제 친구인 양 수신인으로 삼아 쓴 편지도 있다. 그런 편지에는 늘 붙이는 맺음말 대신 “산 자들의 땅으로부터"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이제 페트라르카의 편지를 읽는 우리가 (당분간은) 산 자들의 땅에 있고, 그는 반대편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실제로 우리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두 번째 선집에 있는 마지막 편지는 “후대에게"쓰였다.

54 과거로 보내는 편지에 담긴 페트라르카의 재치와 지식 아래로 한 줄기 슬픔이 흐른다. 편지를 받아 보아야 할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고 그들의 시대도 떠나갔다. 그런 위대한 시대가, 인물이 다시 존재할 수 있을까? 페트라르카와 동료들은 바로 이 점을 궁금해했고 그들은 그런 시대를 다시 가능하게 만들고 싶었다.

[단테 알리기에가 왜 인문학의 선구자라고 평가 되는가](단테 알리기에가 왜 인문학의 선구자라고 평가 되는가)

[페트라르카 가 최초의 인문학자라고 평가 받는 이유](페트라르카 가 최초의 인문학자라고 평가 받는 이유)

60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는 않았지만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를 아버지처럼 존경했고 페트라르카 역시 이에 기꺼이 보답하며 보카치오를 아들처럼 여겼다.

60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처럼 필사본을 아꼈고 수도원을 샅샅이 뒤졌으며 귀중한 책을 찾아냈다.

61 페트라르카는 무지는 선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신앙이 독실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직 신적인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경전만 읽는 삶, 혹은 아무것도 읽지 않는 삶이 기독교인의 삶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페트라르카는 지식과 배움의 편에 서 있었다. 말과 관념으로 이루어진 건전한 풍요를 원했다

62 중세 학자 중에는 그리스어를 배운 사람들이 소수 있었지만 대체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원의 필사자들은 라틴어 문헌에서 그리스어가 나오면 “그리스어이므로 읽을 수 없다Graecum est, non legitur"라고 적었다.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이는 “나한테는 온통 그리스어로 들린다It’s all Greek to me"이다.

[1348년 피렌체 흑사병의 기록-보카치오](1348년 피렌체 흑사병의 기록-보카치오)

68 #흑사병 #피렌체 보카오의 설명에 따르면 도시는 파탄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친지들조차 돕지 않았으며, 부모조차 아이들을 만지지 않았다. 남은 하인들이 많지 않았기에 예절에 어긋남에도 귀족 여인들의 시중을 남자 하인들이 들게 했다. 평소 같으면 정숙한 귀분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과 거리에 시신이 쌓였고 장례 절차는 점점 간소해지다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 널빤지에 얹어 옮긴 시신은 구덩이 속에 이미 겹겹이 쌓인 시신들 위에 얹어 매장했다.

70 흑사병이 닥치자 인간의 기술과 발명은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간 조건을 향상해야 할 의술은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통치와 행정이라는 세련된 기술도 흑사병을 막지 못했다. 보카치오가 적었듯 “인간의 그 모든 지혜와 슬기도 소용없었다.” 이 질병은 하느님이 세우신 질서라는 기독교적 이상에도, 학문과 기술의 혜택을 받는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라는 고전 시대의 이상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원전 430년 아테네의 역병 기록-투키디데스](기원전 430년 아테네의 역병 기록-투키디데스)

71 투키디데스는 앞날에 대한 믿음을 잃은 아테네 사람들의 공동체가 어떻게 와해되었는지 글로 남겼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퀘락에 돈을 탕진했다. 처벌을 받을 만큼 오래 살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법을 어기기도 했다. “신을 숭배하든 말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다 죽었기 때문이다”

72 19세기 소설가 알렉산드르 만초니는 1630년 밀라노에서 흑사병이 발생했던 당시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공동체의 불행 속에서, 정상적인 질서가 장기적으로 무너지는 모든 사건 속에서 우리는 항상 성장을, 인간의 선함이 고조되는 양상을 목격한다. 불행하게도 인간의 악한 모습 역시 같이 증가한다.” 다르게 말하면 이렇다. 겁에 질린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 존재하는 반면 용감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나아가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도 있다.

78 그러므로 #언어 를 잘 사용하는 일은 장식적인 요소를 덧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사람들을 감화하고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도덕적인 활동이다. 뛰어난 소통의 기술은 후마니타스, 즉 가장 인간적으로 사는 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가장 인간적인 장르인 위로 편지에서 특히 잘 나타났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경험을 공유할 때 두사람은 우분투 정신으로 연결되고, 이때 인간다움이 특히 도드라진다.

82 페트라르카의 모든 글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던 행운의 변덕에 대한 저항(이자 방어)이다. 페트라르카는 상실에 저항하는 글을 썼다. 필사본을 발굴하고 자신이 쓴 편지를 모으고 위로 편지와 기타 작품을 저술하면서 그는 친구와 책을 비롯한 존재들의 멸망을 막아줄 방어벽을 쳤다.

84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의 후손들이 다시금 자신들의 세상을 밝게 조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의 바람은 그날을 앞당기는 것이었다. 발굴하거나 필사할 수 있는 내용은 보존하고, 옛 형태를 새로이 변주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위태로울지언정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었다. 등불이 다시 켜질 때까지.

2 난파선 인양하기 - 지식의 파편을 지키는 법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 부활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 미래를 준비하던 기록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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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9년부터, 그러나 1400년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대의 출현 - 소실과 발견 - 르네상스 이전의 르네상스 - 콜루초 살루타티, 니콜로 니콜리, 포조 브라촐리니와 그들의 휴머니스트 서체 - 로마의 유적과 네미호(네로의 침몰한배) - 감옥과 난파선 - 여성: 있기는 있었다 - 교육 - 우르비노 궁전, 카스틸리오네, 그리고 스프레차투라 - 더 많은 사본, 더 좋은 사본 - 인쇄업자, 그중에서도 알두스 마누티우스

91 그러나 대부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전 문헌은 길고 ‘어두웠던’ 중세 시대에 필사되었다. 인쇄술이 생긴 이후 더욱 명백해진 사실이지만 책을 살려두는 데는 수많은 사본을 만드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이런 방식의 필사는 6세기에서 8세기 사이 아일랜드와 영국의 외딴 수도회 공동체에서 특히 효율적으로 이루어졌다. 8세기 이후로는 아랍 세계가 수학, 의학, 철학에 관한 그리스어 문헌을 비롯한 방대한 문헌을 번역하고 보존했다. 바그다드에서는 아바스 칼리파국과 개인 후원자들이 수많은 번역가를 도서관에 모아놓았다. 9세기에 이들을 감독하던 사람이 바로 매력적인 알킨디였다. 지진에서 윤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고 집필한 알킨디는 어떤 관점에서든 휴머니스트라고 할 만하다. 특히 여러 전통 간에 다리를 놓고자 했던 “오직 연결!”을 주장했던 부류의 인문학자다. 알킨디는 철학과 신학, 그리스의 사상과 이슬람의 사상을 화해시키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시도였다. 그의 사상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든 그의 업적이 경쟁자들의 시기심을 부추겼든 알킨디는 자기 도서관에서 쫓겨나 폭행까지 당했다. 알킨디가 쓴 글도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93 그는 새로운 리비우스 단편이 여러 다른 형태로 손에 들어올 때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단편과 합쳐 한 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다음 세기의 위대한 학자 로렌초 발라의 손에 들어갔다. 발라는 여기에 자신의 주석을 추가해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바로 이것이 여러 세대에 걸친 인문학자들이 계속해서 즐겨 한 일로, 지식을 확장하고 근거를 바탕으로 문헌을 더 풍요롭고 더 정확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 시작은 페트라르카였다.

94 1100년대에는 필사와 연구, 지식의 공유가 아주 활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12세기 르네상스’라고 칭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아랍과 스페인을 거쳐 유럽으로 종이제작 기술이 전해진 덕분이기도 하다.

94 #종이 종이는 낡은 옷감을 재료로 삼아 만들었는데, 최근 마르코 모스테르트가 내놓은 훌륭한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옮겨 가던 시점이었고 도시에서는 속옷을 입는 사람을 더 세련된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낡은 옷감이 많이 나왔다. 속옷은 튼튼한 겉옷에 비해 더 빨리 닳아 버려졌기에 낡은 옷감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속바지가 문학을 낳은 셈이다.

112 휴머니스트 남성은 개인 사무실이나 군주의 가정 내에서 개인 교사나 비서로 일하거나 공적 영역에서 관리 혹은 사절로 일했다. 이 모든 역할에서 중요시 된 것이 인문학이다. 고전적으로 이 학문은 다섯 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법,수사학,시학,역사학,도덕철학이었다. 잘 쓰고 말하고, 역사적 사례와 도덕적철학을 잘 이해하는 능력은 공적 대화를 하고 글을 쓰고 정치를 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내리는 데 아주 좋은 발판이 되었다.

118 인문학을 떠받치는 세 개의 기둥, 도덕철학과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소통 능력은 세상 속에서 실천할 때 가장 밝은 빛을 발휘했다.

118 나아가 인문학 교육은 쾌적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만토바의 곤자가 가문은 초원 한가운데 아름다운 학교를 세우고 비토리노 다 펠트레를 교장으로 앉혔다. 학교의 이름은 라 조코사La Giocosa, 재미있는 혹은 즐거운 학교라는 뜻이다. 페라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환경에서 과리노 다 베로나와 그의 아들 바티스타 과리니가 에스테 가문과 그 지인들을 가르쳤다. 제자 레오넬로 데스테에게 쓴 편지에서 과리노는 야외에서 책을 읽는 일, 특히 강물에 띄운 배에서 책을 읽는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무릎 위에 책을 펼쳐놓고 노래하는 농부들로 가득한 들판과 포도밭을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기쁨을 칭송했다.

120 결국에는 좋은 신하는 담대하고 교양이 있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실천해야 한다는 데에 모두가 동의한다. 스프레차투라는 느긋하고 무심한 듯 태연한 자세를 말한다. 어려운 일을 할 때도 마치 타고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 너무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태도다.

121 여러 학자, 작가, 가정교사들의 업적 뒤에는 이런 은밀한 노력이 있었다. 귀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지만, 제자로 삼은 귀족들에 비해 보잘것없는 배경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처럼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신 인문학자의 길을 걷는 고통스러운 의식을 치른 사람도 많았다. 드물게 고용인이나 후원자를 찾으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당연히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노력과 창의력을 기울였고 무심한 듯한 태도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122 인간의 삶을 향상하는 발명품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인쇄기는 회의적인 시각과 저항에 부딪혔다. 우르비노 공작은 인쇄된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독일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는 『필경사 예찬』에서 필사본이 인쇄본보다 낫다고 주장하며, 필사는 매우 유용한 정신적 활동이므로 수도사들이 이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을 널리 읽히기 위해 인쇄본으로 출간했다.

124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인쇄된(현존하는) 책은 키케로의 1465년판 <수사학>인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밝은 서체로 인쇄됐다.

129 마누티우스는 (…) 그리스어 고전도 인쇄하기 시작했는데 그 무렵 이탈리아에는 그리스어 전문가가 아주 많았다. 학자들이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 그리스어를 가르치러 온 덕택이었는데, 특히 전 세계 기독교인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 이후 더 많은 이주가 이루어졌다. 바로 1453년 튀르키예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이었다. 주민들은 피난을 떠나야 했지만 필사본을 챙길 시간은 있었다. 철학, 수학, 공학 등에 대한 그리스어 문헌으로 가득한 필사본들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이탈리아의 문화적, 지적, 기술적 영역을 확장하고 마누티우스와 지인들을 더욱 풍족하게 했다.

130 휴머니스트들은 대체로 이런 역할을 꿈꿨다. 학문의 세계로 신선한 공기와 꽃을 가져오는 동시에 학문의 세계를 현실 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이다. 학자들은 여전히 난파선을 인양한다든가, 어둠에 빛을 비춘다든가, 수감자를 해방시킨다든가 하는 기존에 사랑받던 비유도 사용했다. 마누티우스는 자신이 만든 투키디데스의 <역사Histories>에 쓴 서문에서 “출판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좋은 책을 쓸쓸하고 음울한 감옥에서 해방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3 선동가와 이교도들 - 권력과 신앙에 맞선 사상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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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440 ~ 1550년
모든 것을 의심한 로렌초 발라 - 키케로 숭배, 이교 사상, 그리고 로마 - 교황의 화를 돋운 폼포니오 레토와 바르톨로메오 플라티나 - 토스카나, 그중에서도 피렌체 - 피코 델라 미란돌라와 카멜레온 인간 -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와 만능인 - 다시 척도로서의 인간 - 비트루비우스의 인간들 - 사치품을 불태운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 로마의 약탈 - 초상화 - 모든 것에 대한 의심

136 로렌초 빌라의 #1440년 논문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에 관하여>는 가낭 위대한 인문학적 성취 중 하나다

[1440년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와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에 관하여)](1440년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와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에 관하여)) [로렌초 발라 라틴어 그리스어 전문가 - 그 의의](로렌초 발라 라틴어 그리스어 전문가 - 그 의의)

139 발라는 라틴어를 야만인들의 속박에서 해방해 광명을 비추었다.

139 <라틴어의 기품>은 이 고대 언어에 붙은 중세의 따개비를 긁어낸 뒤 좀 더 진실하고 근본적인 형태에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과제를 도맡았다.

140 발라는 4세기에 히에로니무스가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표준 신약성경에 있는 오류를 정리했다. 빌라는 과정과 기원의 역사적 맥락을 사고하고 능력을 발휘해 단지 오류를 짚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류가 어떻게 발생했을지 추정했다.

140 구세대 아리스토텔레스 학자, 동시대의 인문학자, 교회의 권위자들이 적의를 보여도 발라는 꿈쩍하지 않았다. 특히 교회의 권위자들을 거스르는 일이 가장 위험했다.

142 1444년 나폴리 이단 심문소가 발라를 조사… 그러나 발라는 거의 즉시 구제받았는데 발라의 후원자이자 보호자였던 나폴리의 군주 알폰소가 개입해 심문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알폰소는 발라에게 빚이 있었다. 발라가 알폰소의 궁정 신하로 일하며 왕의 이익을 위해 뛰어난 언변을 발휘해왔기 때문이었다. 발라는 떠돌이 인문학자로서 페트라르카와 마찬가지로 후원자를 기쁘게 해애 했다. (…) 당시 알폰소는 자꾸만 경계를 침범하는 로마의 에우제니오 교황에 맞서 자신의 영토를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발라의 글은 로마의 영토권 주장을 전반적으로 약화함으로써 알폰소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142 발라는 어쨌든 원칙에 근거해서 문헌을 바로잡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위조된 기증장에 학문적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후원자를 기쁘게 했고, 덕분에 자신이 감행했던 모든 겁 없는 학문적 도전이 가져온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145 (발라) 그는 매사에 반대 의견을 내는 태도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며 이렇게 물었다. “학문이나 과학에 대해 글을 쓰면서 고연 먼저 온 사람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자이조 조카인 테오프라스토스의 비판을 받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스승 플라톤에게 문제를 제기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철학자들의 왕, 플라톤 말이다!”

146 “스토아학파가 어떻게 에피쿠르스학파의 모든 의견에 반박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반대로 반박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존경과 복종이 아닌 논박과 반대가 지적 생활의 본질이다. 게다가 발라는 단지 틀린 점을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왜 틀렸는지를 설명했다.

150 이교도 신전의 돌이 로마를 이루고 있었고, 로마와 그리스 신화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해서 특히 예술가들은 이를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하늘하늘한 반투명 옷을 입고 조개 속에서 태어나는 사랑의 여신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는가.

156 플라티나는 이후 바티칸 서고의 사서로 일하기도 했다. 문학도 계속할 수 있었다. 꽤 오랫동안 작업한 요리책도 출간했다. 제목이 ‘올바른 쾌락과 건강’으로 매우 에피쿠로스적이었다. 이 책에 수록된 요리 중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장어 구이가 얼마나 맛있어 보였는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벽화에 포함했을 정도였다. 플라티나는 모든 교황을 열거하는 긴 역사책도 집필했는데 아카데미아를 탄압했던 바오로 2세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담았다.

159 우리가 우리의 적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이렇다. 군대의 규율과 훈련에 집착하는 스파르타와는 달리 아테네는 자유와 조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스파라트는 폐쇄적이지만 우리는 공개적으로 세계와 무역을 한다. 저들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려고 가혹하게 다루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가르친다. 저들은 위계를 따지지만, 아테네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시정에 참여한다.

160 대체로 이 두 도시(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상황은 묘사된 것과 좀 달랐다. 아테네는 조화롭기는커녕 사회적 불안으로 역병과 폭동이 일어났고, 스파르타와 치른 전쟁에서도 결국 패배했다. 피렌체 역시 여러 왕가 간의 갈등, 모의, 정권 교체 등으로 엉망진창이었고 대체로 불안정했다.

161 피치노는 이 문제를 탐구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지만 새로운 연구 방식으로 이 주제에 접근했다. 또한 우주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과감한 주장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문학, 예술, 학문 연구, 자치 등의 분야에서 인간이 세운 업적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천지를 창조한 존재와 인간이 거의 같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인간에게 도구와 천지를 만들 재료를 준다면 인간 또한 어떻게든 천지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누가 반박하겠는가?” 이것은 엄청난 주장이었다.

179 16세기 인문학자들은 과거를 순수한 애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사회의 복잡성, 인간의 불완전성, 그리고 대규모 사건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점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발라를 비롯한 인문학자들이 인정받은 문헌에 국한된 연구를 거부하며 개척한 탐구 정신은 한층 진보했다. 미란돌라와 피치노가 보여준 변화무쌍한 인간 카멜레온에 관한 관심은 신학보다는 실용적 측면에서 지속되었다.

179 역사학지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는 사실 조사에 중점을 두는 엄격한 태도를 발전시켜 역사적 변화의 원인과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사유했다. 복잡한 인간에 대한 이런 종류의 관심 덕분에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또 다른 장르가 되살아났다. 개인의 삶 안에서 원인과 결과를 파고드는 전기 문학이다.

181 화가 조르조 바사리는 1550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출간했다. (…)문학이 아닌 시각 예술 분야에서는 페트라르카의 꿈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학문에서도 재탄생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작업을 섬세한 역사학자들의 업적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역사가 단지 사건의 건조한 나열이 아니라 진정 인간 삶을 비추는 거울임을(…) 인간의 판단, 의도, 결정, 계획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행위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수단임을 깨달았다. 이것이 역사의 진정한 본질이다.” #역사

181 인간의 행위, 좋은 판단의 어려움, 모든 일의 불확실성 등의 주제는 계속해서 16세기 저술가들의 흥미를 끌었다.

4 경이로운 망 - 과학으로 세계를 해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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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492년 ~ 1559년
책과 신체 -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와 끔찍한 질병에 대한 아름다운 시 - 니콜로 레오니체노: 형편없는 문헌은 사람을 죽인다. - 식물학자와 해부학자 - 죽임이 기꺼이 삶을 돕다 -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와 휴머니즘 대표작 - 놓친 것도 있다. - 모든 것은 변화한다. 

188 동료 인간의 고통 경감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휴머니즘의 목표다.의술은 대체로 과학과 인문학에 걸쳐있다. (…)의사로 활동하려면 환자의 말을 잘 듣고 대화를 잘해야 한다. 의술은 관찰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을 다룬다. 그러나 책에도 의존한다. (…) 특히 역사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과거를 돌아보고 접근법을 더 섬세하게 수정한다. 그러나 다른 과학 분야에 비해 의술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더 나아가 생물체로서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동시대 사람들의 견해에 훨씬 많이 의존한다. 그 답례로 의술은 우리라는 존재를 바꾸는 데 일조한다. 우리가 (바라건대) 우리 자신의 신체에 대해 더 많은 걸 알면 궁극적으로 우리 몸의 기본적인 구성과 작용에 약간이나마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9 에드먼드 D. 펠레그리노는 1979년 작 <휴머니즘과 의사>에서 의학이 “모든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라고 썻다

192 다른 분야와 달리 의학 인문학자들은 이런 작업의 시급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호메로스의 시 한 줄을 오독했다고 해서 사람이 죽을 가능성은 없다.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처럼 위조된 법이나 정치 관련 문서가 받아들여진다면 심각한 결과를 낳겠지만 생명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의학 문헌이 뒤죽박죽되면 사람들이 죽을 수 있다. 처음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1492년 『플리니우스와 기타 의학 저술가들의 오류에 대하여』를 펴낸 니콜로 레오니체노였다.

193 니콜로 에오니체노의 <플리니우스와 기타 의학 저술가들의 오류에 대하여>

자연이 왜 우리에게 눈을 비롯한 감각을 주었겠는가? 우리가 자기 능력으로 사물을 보고 진실을 탐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능력을 포기하고 남의 발자취만 따라가면서 아무것도 관찰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남의 판단에 의지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 남의 눈으로 보고 남의 귀로 듣고 남의 코로 냄새 맡고 남의 정신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가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195 할 수만 있다만 반드시 인간의 몸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갈레노스도 대 찬성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는데 초기 로마,기독교,이슬람 시대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195 (…) 19세기 해부학의 부흥을 위해 애썼던 토머스 사우스우드 스미스는 “문제의 핵샘은 이렇다. 의사가 죽은 사람의 시신을 해부하여 지식을 얻도록 허용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산 사람들의 몸을 가지고 훈련하도록 만드느냐.”

196 깨끗하고 텅 빈 상태인 지금도 파도바대학교의 해부 극장은 단테의 지옥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단테의 지옥과 달리 해부 극장에는 이곳으로 들어가는 누구든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표지가 없었다. 도리어 이곳은 희망 어린 공간이었다. 2파도바 해부 극장의 입구에 새겨진 문구는 “죽음이 기꺼이 삶을 돕는 곳mors ubi gaudet succurrere vitae"이다. 해부학 실습실 그림 200

203 이런 존엄한 인간의 모델이 실은 사형당한 죄인이거나 가난한 삶을 살다가 죽어서 자기 시신의 앞날에 대해 어떤 결정권도 없었던 빈민이라는 점은 가슴 아프다.

206 우리 몸이 평생 변함없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술가도 해부학자도 잘 알고 있었다.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의 이미지와 달리 인간이 어때야 한다는 단일하고 고정적인 본보기는 없다. 우리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는다. 루크레티우스가 말했듯 정신과 육체에는 “생일과 장례식"이 있다. 이 두 사건을 잇는 길 위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정신도 예외가 아니다.

206 루크레티우스와 그의 사상의 궁극적 원천인 데모크리토스는 정신과 육체가 모두 감각, 그리고 우리 생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이 부드럽고 조용히 해체되면서 끝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16세기와 17세기의 저술가들은 이런 사유를 이어갔고, 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서가 형성되었다. 결국 책에도 몸에도 전적으로 의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5 인간의 일들 - 인간의 손으로 다시 빚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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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500년대
알프스 너머의 북부 휴머니스트들과 함께 - 콘라트 켈티스 - 로돌푸스 아그리콜라 - 문명적인 생활과 여럿과 나누는 우정을 장려했던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 휴머니즘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미셸 드 몽테뉴 - 소설가들

222 #교육 은 사람이 세상을 내 집처럼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에라스뮈스는 생각했다. 동료 인간들과 조화를 이루는 법, 친구를 사귀는 법, 현명하게 행동하는 법, 모두를 예의 있게 대하면서 지식의 광명을 나누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말해 후마니타스의 함양을 주장했다.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은 제목부터 모어의 이름을 이용한 언어유희이며 짓궂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는 책이다. 아주 과감한 생각을 담고 있지만 “우신”의 입을 통해서 말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거리를 둘 수 있다. 모어의 정치 풍자 『유토피아』는 상상 속의 섬나라로 떠나는 여행 이야기를 담고 있다.

223 곧 주변 사람을 편하게 만들고 전반적으로 쾌적한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법, 모든 의미에서 인간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을 안다는 의미다. 이런 태도는 모두를 인간답게 만든다. 옥스퍼드대학교 윈체스터칼리지와 뉴칼리지의 모토가 되기도 한 “예절이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라는 말은 사실 채택되기 200년 전쯤 만들어진 것이다

225 여행, 독서, 우정 세 가지는 에라스뮈스의 인생에 중요한 주제였으며 각 주제는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여행하면서 끝없이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친구들은 새로운 과제, 일, 추가 연구가 필요한 소재 등을 제안했으며 이로 인해 또 여행할 기회가 생기는 식이었다. 에라스뮈스는 주어진 기회를 따라다녔고, 때로는 한곳에 꽤 오래 머물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저 잠깐 스쳐 갔다. “내 집은 내 서고가 있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27 (에라스뮈스) 성경을 다시 번역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사람 중에는 앞서 만나본 로렌초 발라가 있다 <신약성경 주석>에서 히에로니무스 번역의 허점을 찾아냈던 발라는 교회가 변치 않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실은 인간이 저지른 오류의 결과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

229 (에라스뮈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으면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를 알아도 이단입니다. 세련된 언어를 구사해도 이단입니다. 자기와 다르면 이단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들의 악한 욕망에 대한 제재가 풀어지는 즉시 그들은 모든 선한 이들을 상대로 무분별한 분노를 표출할 것입니다

229 에라스뮈스는… “본질적으로 날카로운 문제의 경우에는 악의에 악의를 더하기보다 예의 바른 태도로 누구러뜨리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231 나는 너희를 신과 비슷하게 만들었다"라고 자연은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짐승처럼 변했는가?

232 나쁜 통치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되는 이유는 지배자가 어리석거나 무책임해서 인간의 가장 악한 감정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법률가와 신학자들은 일을 더 악화시킨다. 상황은 나빠지고 멈추기에는 너무 늦다. 전쟁은 실수다. 인간적으로 사는 데 실패한 결과다.

23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본성에 있지만 관계와 사회, 정치를 다루는 법은 배워야 한다. 그 배움은 서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배운 것을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 교육이, 특히 시민 정신과 예절 교육이 휴머니즘 세계관에서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39 몽테뉴는 앞서 온 에라스뮈스처럼 광적인 추종을 광적으로 멀리했다. “모든 종교가 보편적으로 용인하는 믿음, 즉 대량 학살과 살인을 저질러 하늘과 자연을 기쁘게 한다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240 좋은 인간이자 제대로 된 인간 역할을 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정당한 것은 없고, 이 삶을 어떻게 잘 살고 자연스럽게 살아야 할지 아는 것보다 구하기 어려운 지식은 없으며, 가장 미개한 질병은 우리 존재에 대한 혐오다.

241 (몽테뉴 , 글귀를 적어놓았다) 제일 좋은 자리에는 테렌티우스의 “나는 인간이고 인간의 그 어떤 일도 남의 일이 아니다“를 적었다.

242 대신 몽테뉴는 삶을 향상하고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책을 좋아했다. #전기 와 #역사 는 한 인간이 “그 어느 곳에서보다 더 온전하고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좋다고 했다. “내면의 다양성과 진실이 다량으로 상세하게 나타나고 한 인간이 어떤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되었으며 어떤 우연적인 사건들로 인해 위험에 처하는지 보여준다”라고도 덧붙였다

243 몽테뉴는 휴머니스트가 분명하다. 『에세』는 전형적인 휴머니즘의 주제들, 즉 도덕적 판단, 예절, 교육, 선행, 정치, 세련된 글쓰기, 수사학, 책과 문헌의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이 훌륭한가 미천한가의 문제로 끊임없이 되돌아온다. 그러나 회의적이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이런 주제를 하나씩 곱씹으면서 해체한다. 그리고 산산조각이 난 채 널브러진 파편들을 전보다 더 새롭고 더 황당하고 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다시 조합한다.

243 이런 새로운 관점드이 나오는 이유는 몽테뉴가 다양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다른 1000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고 믿고 상상한다.”

244 몽테뉴는 …다양한 관점에 대한 애정이 이처럼 컸기에 <에세>의 초판을 닫는 말로 다양성을 선택했다. 세상에 두 개의 완전히 똑같은 의견은 없다. 머리카락 두 올이나 알곡 두 알이 각기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은 다양성이다.

245 (몽테뉴)그가 자신의 근본적인 인간성을 글에 쏟아부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문주의 글쓰기의 혁신을 보여준다. 이 책은 인간적인 책이다. 고상한 학자적 연구라는 전통적인 의미에서도 그렇고, 철학적인 동시에 사적인 글이라는 혁신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 “나는 인간적인 생각, 나 자신의 생각을 여기 담는다. 그저 인간의 생각 그 자체를 말이다.”

246 #17세기 몽테뉴의 틀에 맞추어 쓴 개인 에세이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의 세계는 여전히 그런 글로 그득하다. …우리는 몽테뉴의 불멸의 삶이 주는 선물을 조금씩 받고 있다.

246 19세기 비평가 월터 페이터가 글의 “몽테뉴적 요소"라고 부른 이것은 무엇보다 매우 성공적인 문학 형태였던 소설로 흘러 들어갔다. 몽테뉴를 일종의 소설가라고 볼 수 있다. 비록 핵심 등장인물은 단 한 명, 즉 몽테뉴 자신이고, 삶이나 책 속에서 만나는 다른 인물에게는 즉흥적인 역할만 주어졌지만, 몽테뉴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사 기법을 개척했고, 이는 20세기 모더니즘이 이를 의식적으로 실험하기 오래전부터 현대 소설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247 조지 엘리엇은 허구적인 #소설 읽으면 실질적인 도덕적 이득이 생긴다고 믿었는데 연민의 고리, 즉 요즘 우리가 #공감 이라고 하는 것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한 에세이에 이렇게 쓰기도 했다. “우리가 예술가로부터 빚진 가장 큰 혜택은, 그것이 화가든 시인이든 소설가든, 바로 연민의 확장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그려낼 수 있는 인간 삶의 그림은 아무리 하찮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깜짝 놀라게 만들어 자기와 동떨어진 것에 관심을 두게 하는데 이것은 도덕 감정의 원재료라고 부를 수 있다”

6 무궁한 기적 - 생각할 용기가 발굴한 인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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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 ~ 1819년
계몽주의자들 - 무엇이 있든 있으면 옳다고? - 볼테르, 드니디드로 등 - 무신론자와 자연신론자 - 동료의식과 도덕적 취향 - 섀프츠베리 백작 - 피에르 벨 - 감옥과 필사본이 있는 모험 - 책을 지킨 검열관 말제르브 - 토머스 페인과 이성의 시대 - 친절하고 무자비한 데이비드 흄

#1755년 11월 1일 리스본 대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유럽의 지성사를 뒤흔들고 현대적 사고의 기틀을 마련한 결정적 사건 이 사건은 유럽 전역을 심리적으로 흔들었다. …사람들은 리스본처럼 운 좋은 도시가 그토록 순식간에 엄청나게 큰 피해를 보았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했다.

253 신은 대체 왜 그런 피해를 줬을까? 14세기 흑사병이 돌았을 때처럼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은 리스본 사태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예수회의 가브리엘 말라그리다는 지진이 음악을 좋아하고 극장이나 투우장에 가는 사람들에게 내려진 천벌이라고 했다.

258 수도원 창고를 뒤져 책을 찾아냈던 초기 휴머니스트들 … 그 인문학잗르은 자칭 구원자로서 문학을 인쇄술이 있고 자유로운 독서가 이루어지는 환한 세상으로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반면, 새로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사람을 밝은 곳으로 데리고 나오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더 나은 논증, 더 효과적인 과학과 기술, 더 이로운 정치 체계를 통해 동료 인간이 햇볕과 맑은 공기 속으로 나와 더 대담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다.

259 엘리엇의 전기 작가 로즈메리 애슈턴은 멜리오리즘(개선주의)을 “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세상 중에서 최선도 최악도 아니며 인간의 노력으로 어느정도까지는 향상할 수 있고 고통도 부분적으로는 줄 일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정의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계몽주의와 휴머니즘 사상가들은 다음 세상보다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며 신보다는 인간을 더 중요시 한다. 양쪽 다 이성과 과학적 앎을 사용하고, 기술과 정치의 향상을 이루는 것이 더 나은 삶을 향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262 돌바크 남작 폴 앙리 이트리히 1770년 <자연 체계> 라는 책에서 #종교 가 사람들을 “어둠의 안개” 속에 가두고 있으므로 여기서 벗어나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위로를 주기는 커녕, ….애써 죽음을 더 쓰라린 것으로 만들고 죽음의 멍에가 더 무겁게 내리누르게 만들며 수많은 소름 끼치는 망령들이 죽음과 동행하게 하여 다가오는 죽음을 더 무시무시하게 만든다” …우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즉, 세상이 근본적으로 물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해방될 수 있다.

263 볼테르는 자연신론자 였다.

264 볼테르는 이렇게 썼다. “기적은 본래 감탄할만한 일 이라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모든 것이 기적적이다. 자연의 놀라운 질서, 수백만 개의 태양 주변을 도는 수억 개의 구체, 빛의 활동, 동물의 생명 활동은 무궁한 기적이다.”

265 스피노자 , 신이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보편적으로 스며들어 거의 자연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유대교 공동체에서 추방당했다.

265 기도와 의식이 의미가 없다면, 자연의 일반적 질서 밖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인간의 문제다. 우리는 개인적인 관심과 기적을 잃는 대신 세상을 책임질 있고 위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향상할 수 있다는 이점을 얻는다.

266 휴머니스트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렇게 해서 오래된 생각으로 되돌아갔다. 이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세상을 위한 가장 좋은 기초는 동료 의식을 가지고 서로를 대하려는 우리의 타고난 경향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 동료의식은 ‘연민’이나 공감일 수도 있고, 인이나 우분투가 나타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일 수도 있다.

268 정직한 사람 프랑스어 오네트 옴므, 교양있고 인간적이며 균형 잡힌 사람, 세상을 편하게 느끼는 사람, 후마니타스를 갖춘 사람이다

270 피에르 벨 결국 #인간 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가치와 사회적 연결망을 지킬 능력이 전부일 수 있으며, 타인의 호감과 좋은 평가를 얻으려는 타고난 욕구가 개인을 인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82 영국에서 페인을 가장 열렬히 옹호했던 사람은 사회주의자이자 자연신론자 리처드 칼라일이었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판본을 비롯해 페인의 책을 인쇄한 대가로 총 10년 정도를 감옥에서 보냈다.

282 유죄 판결을 받은 칼라일은 도체스터 감옥에서 2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그가 수감되자 처음에는 아내 제인이 계속해서 인쇄기를 돌렸다. 그러다가 제인 역시 붙잡혀 남편이 있는 도체스터로 보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누이 메리 앤 칼라일이 인쇄를 맡았다. 그리고 결국 누이도 감옥에 갇혔다. 세 사람 모두 같은 방에 수감되었다. 칼라일은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냈고, 쓴 글은 몰래 반출하거나 나중을 위해 잘 보관해 두었다.

284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사상가 데이비드 흄 흄은 사람 좋기로 유명했다. 당대의 가장 지적으로 무자비한 사상가

288 신학 이론과 체계에 기반한 지극히 오만한 관점보다 꾸밈없는 정직함과 너그러움 한톨이 사람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데이비드 흄) 289쪽 이성은 도울 수 없을지 몰라도 자연이 즉시 일상의 즐거움으로 그를 현혹하여 “우울과 망상”을 치료해 준다. (데이비드 흄)

290 우리가 감정을 거울처럼 반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행복하다. 그래서 동료 인간들의 전반적인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승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데이비드 흄)

293 에든버러에서…친구 애덤 스미스가 병세가 악화되어가는 흄의 곁을 지켰다.

294 흄 “나에게 적이 있다면 그 적이 바라는 만큼 빨리 죽어가고 있다네. 그리고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바라는 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유쾌하게 죽어가고 있지”

294 수정한 글 중에는 오래도록 공개하지 않은 종교와 회의감에 관한 원고도 있었다. 흄은 사후에 이 책이 출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먼저 애덤 스미스에게 이 일을 맡아 주겠느냐고 물었지만 스미스가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데이비드 흄)

295 신중한 동시에 영웅적이고 친근한 태도로 사랑받았지만 형편없는 추론에 대한 공격에서는 무자비했던 사람, 놀이를 즐기는 동시에 인간 정신에 주어진 지적, 도덕적 도구를 향상하는 일에 몰두한 선한 데이비드는 흠잡을 데 없는 뤼미에르의 본보기였고 후마니타스를 아는 사람이었다.

7 모든 인간을 위한 지구 - 야만의 시대에 다시 쓰는 인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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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년 ~ 1971년
휴머니즘을 형성하고, 휴머니즘에 의해 형성된 네 가지 생각: 보편성,다양성,비판적 추론,도덕적 연결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해리엇 테일러 밀, 그리고 가장 크고 높은 영역 - 제러미 벤담, 오스카 와일드 , 그리고 예외 조항에 어울리는 사람 - 프레더릭 더글러스와 영원한 각성 - 다시 E.M.포스터 - 파편의 연결

301 전반적으로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일부 주제에 대해서는 뛰어나고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멍청한 사람들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305 네 가지 중요한 휴머니즘 사상 첫 번째 사상을 방금 언급했다.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으로 하나가 되는 존재들이므로 “인간의 그 어떤 일도 남의 일이 아니다.” 두 번째 사상은 반대로 보편성이 아닌 다양성을 강조한다. 세 번째는 비판적 사고와 탐구의 가치를 높이 매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네 번째는 인간성의 핵심인 우리의 도덕적 삶이 우리가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찾을수록 향상된다는 폭넓은 믿음이다.

305 프로타고라스의 인간 척도, 몽테뉴의 다양성, 로렌초 발라의 비판적 사고, 섀프츠베리나 흄의 공감을 기반으로 한 윤리학

308 남자 여러분, 인간으로서 여성은 당신들과 똑같은 것을 원합니다. 흥미로운 직업, 즐거움을 만끽할 적절한 정도의 자유, 감정을 충분히 분출할 수 있는 배출구를 원하지요.

308 세이어스는 이런 질문도 한다. 여성은 대학에 가야 할까? 여성은 대체로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요점은 세이어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대학교가 모든 여성에게 문을 열기 위해서는 어떤 집단적인 투쟁이 벌어져야 한다. 실제로 그랬다. 대학교들이 여학생을 받기 전까지 상당한 사회운동이 이루어졌고 1868년 진보적인 런던대학교가 최초로 여학생 아홉 명의 입학을 허가했다. 다른 대학교도 뒤따랐지만 여학생들이 학업의 결과로 실제로 학위를 받기까지는 더 많은 운동이 필요했다. 세이어스도 1915년에 학부 과정을 마쳤지만 학위를 받지 못했다. 옥스퍼드가 마침내 손을 들고 석사 학위까지 내준 1920년까지 기다려야 했다. 1938년 세이어스가 위의 연설을 할 때까지도 케임브리지는 고집을 피웠고 그 이후로도 10년 동안 여성에게 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이어스의 주장은 여성이 다 같이 들고 일어설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투쟁의 이유가 개인적이라는 의미였다.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309 이런 생각은 1851년 페미니스트 해리엇 테일러가 쓴 글에 유려하게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여성이 여성만의 “바람직한 영역"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인간의 일부가 다른 일부에게, 혹은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어떤 영역이 ‘바람직한 영역’인지 대신 결정해 줄 권리는 없다. 모든 인간에게 ‘바람직한 영역’은 그가 닿을 수 있는 가장 크고 높은 영역이다. 완전한 선택의 자유 없이는 이 영역이 무엇인지 알 방법이 없다.

310 인간성을 주장한다면 그다음 주장은 자연히 따라온다. 우리는 특정 집단에 허락된 미덕만이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미덕을 전부 다 열망할 수 있어야 한다.

312 다양성이 없는 보편성은 허황된 추상화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약간 비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반면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관념이 결여된 다양성은 우리 모두를 고립시켜 접점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315 제러미 벤담의 “행복 계산법 felicific calculus” 공리주의라는 윤리론의 핵심 이것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가? 고통을 유발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만약 관련된 사람들이 행복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세상에 있는 행복의 양이 줄어드는 대신 늘어난다는 게 중요하다.

320 누군가 나를 노예로 삼겠다는데 그러라고 할 사람은 하늘 아래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322 그(프레더릭 더글러스)가 또 다른 저서 『나의 예속과 나의 자유』에서 말했듯 인간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필연적이거나 자연적이지 않다. 심지어 잔인한 노예 소유주들에게도 이 원칙을 적용한다. 그는 만약 그들이 다른 맥락에서 살았다면 인도적이고 고상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도덕과 인간성의 측면에서 노예제도는 노예주 또한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노예뿐만 아니라 노예주도 노예제도의 피해자다.” 앞서 보았듯 이후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 역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서 비슷한 말을 했다. 제임스 볼드윈도 1960년에 같은 말을 했다. “끔찍하고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자신의 인간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타인의 인간성을 부인할 수 없는 법이다.” 더글러스는 일반적으로 “인간 인격의 모양과 빛깔은 주변에 있는 것들의 형태와 색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반면 본질적인 자유는 여전히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를 형성하는 힘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바로 이 노력에 더글러스는 생애를 바쳤다

326 과거의 휴머니스트, 그리고 모든 문화권의 연설가들이 잘 알고 있었듯 세련된 언어는 인간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그 자체다. 우리의 사회적 도덕적 생애의 기초가 된다. 언어 덕분에 기존 세계를 지적으로 세밀하게 평가할 수 있고 최선의 추론을 적용할 수 있으며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말을 통해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추론과 상상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다.

333 연결, 소통, 온갖 도덕적.지적 유대, 다양성의 인정과 독단적인 규칙에 대한 의심은 모든 인류의 씨실과 날실이 된다. 우리가 태어난 곳의 문화적 맥락이 어떻든 이 땅에서 충만한 삶을 살게 해주고 서로를 최대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절망 속에 갇힌 각각의 영혼이 사후에 뒤바뀔 운명에 희망을 거는 신앙 체계보다는 세속에서의 번영을 추가하는 윤리를 권장할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의 휴머니시트는 로버트 G. 잉거솔과 마찬가지로 행복은 여기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남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333 완벽하지는 않지만 휴머니즘을 구별하는 좋은 법칙은 이것이다. 말하지 말고 보이지도 말라는 소리가 듣기 싫다면, 노예로 살거나 학대당하기 싫다면, 아무도 경사로를 설치할 생각을 못 해서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싫다면, 인간 이하로 취급당하는 것이 싫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것이 싫을 것이다.

334 공자의 논어 “공자의 도는 최선을 다해 나의 인간다움을 이루는 것(충)과 타인을 대할 때 그들 또한 인간다움으로 살아 있음을 깨닫는 것(서)” 이다

[공자의 충서(忠恕) - 논어의 핵심](공자의 충서(忠恕) - 논어의 핵심)

8 인간성의 전개 - 과학과 인문이 함께 그린 인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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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800년대
새끼 곰과 새싹 - 위대한 자유주의 휴머니스트 세 명의 교육, 자유, 성장에 관한 생각 - 온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빌헬름 폰 품볼트 - 자유롭고 행복하고 싶은 존 스튜어트 밀 - 감미로움과 빛을 원하는 매슈 아널드

338 #교육 19세기에도 교육을 인간성의 전개로 보는 비슷한 이론이 이어졌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 빌둥bildung , ‘교육’을 뜻하지만 ‘그림 bild’을 뜻하는 말에서 파생, 그림을 그리거나 형성한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 그래서 빌둥은 사람을, 대개 젊은 남성을 만들거나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후마니무스 Humanismus

다면성, 전인적 조화를 목표로 한 교육….

340 [빌헬름 폰 홈볼트 - 자유주의 교육의 설계자](빌헬름 폰 홈볼트 - 자유주의 교육의 설계자)

342 빌헬름은 프랑스 혁명을 목격

344 홈볼트는 국가가 적어도 개인의 인간성과 도덕성의 문제에 관해서는 자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개입해서…사람들의 선택이 타인을 해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 우리는 국가가 제시하는 대단한 도덕적 이상이 필요하지 않다. 국가가 괜찮은 삶과 자유를 위한 기본 조건을 제공하길 바랄 뿐이다.

344 교육의 문제도 …인성은 “어떤 외부적인 영향이 강제하거나 끈질기게 암시할 때보다 영혼 속 내면의 삶에서 저절로 전개될 때” 가장 잘 성장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훌륭한 인문학 스승이 필요하지만, 국가의 주제넘은 규제는 필요하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347 홈볼트

삶에서 정복해야 할 정상은 단 하나. 모든 인간적인 것을 느끼고 판단하고 운명의 선물을 바닥까지 들이키기. 고요하고 상냥한 존재로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마음속에 저절로 깃들도록 허락하기

350 훔볼트는 무엇보다 언어 학습에 가장 큰 지적 열정을 기울였다. 훔볼트는 이것이 인류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대체로 상징과 관념, 말의 세계에서 사는 문화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카롤리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렇게 썼다.

“오직 언어 공부를 통해서만이 관념의 세계 전체,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이 모든 생각과 감정의 원천으로부터 나와 영혼 속으로 들어오며 그것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심지어 아름다움과 예술보다 뛰어나지.”

🤔 YG 빌헬름 폰 훔볼트는 저에게는 ‘언어 철학의 아버지’로 입력되어 있어요.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는 ‘언어적 세계관’을 제안한 선구적인 학자죠. 언어를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기관으로 본 그의 통찰은 여러 나라 언어와 각 언어 공동체의 인식 체계를 대조하는 ‘비교 언어학’의 개척으로 이어졌습니다.

1829년에는 카롤리네가 세상을 떠났고 훔볼트는 여생을 테겔에서 마지막 연구를 하면서 보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종교적이고 시적인 언어, 카위어를 공부한 것이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서문을 썼는데 이 서문이 보통의 책 한 권만큼 길어졌다. 여기서 훔볼트는 자신의 포괄적인 언어 이론을 설명했는데 이 이론은 각각의 언어를 해당 문화 세계관의 표현으로 보는 그만의 전체론적 접근 방식을 적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모자랐고 훔볼트는 책을 끝내지 못했다.

352 홈볼트가 제시한 교육론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고 독일어권 대부분에서 20세기까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33년 권력을 잡은 나치는 그의 교육 이론과 휴머니즘적 이상을 완전히 폐기했다. 그리고 홈볼트의 방식을 거대한 세뇌 기구로 대체했다. 남학생은 전사로, 여학생은 더 많은 전사를 생산하기 위한 어머니로 만들기 위해 설계된 기구였다.

355 (존 스튜어트 밀) 우리는 우리를 확장해 줄 경험이 필요하고 이것은 “실험적인 삶을 산다"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홈볼트도 우리가 획일적인 삶의 본보기를 지향점으로 삼기보다 “다양한 상황"을 통해 가장 잘 배운다고 썼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경험하면 더욱 관용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356 밀은 자유로은 사회가 “그것이 실용적이든 생각이든 사변적인 생각이든, 과학이든 도덕이든 종교든, 모든 주제에 대한 모든 생각과 감정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362 훔볼트와 밀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유 사회의 초석으로 남아 있다. 자유에 관한 사상뿐만 아니라 둘의 휴머니즘도 그렇다. 두 사람 모두 인간의 만족에 기초한 사회를 꿈꾸었고 그런 사회에서 개인은 최대한으로 삶을 전개하고 인간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그 어떤 사회도 이런 이상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고정된 완벽한 이상에 다다르는 것은 결코 자유주의나 공리주의의 목표가 아니다. 휴머니즘의 목표도 아니다. 세 가지 사상의 목표는 모두 삶에서 좋은 것은 좀 더 늘리고 나쁜 것은 줄이는 것이다.

368 출판산업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과 영국에서는 매우 아널드적인 출판물들이 나오는 시기가 있었다. ‘서양 사상 대전집Great Books’ 같은 시리즈는 출판사에 많은 돈을 벌어주었다. 셰익스피어나 밀턴에게 저작권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번역가가 필요한 번역서도 흥행했다. ‘본 스탠더드 라이브러리Bohn’s Standard Library’ 같은 초기 시리즈는 여러 그리스와 로마 고전을 영어로 번역해서 펴냈다. 다만 성적인 내용을 죄다 원어로 남겨두어 독자들의 짜증을 유발했다.

368 영국에서는 노동자계급 도색공의 아들로 태어난 J. M. 덴트가 만든 ‘보통 사람의 서가Everyman’s Library’가 있었다. 불행히도 덴트는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이런 나귀 같은 녀석!“이라고 외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정작 자신은 보통 사람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덴트가 성공한 것은 이 직원들 덕분이었다. 특히 시리즈 편집자였던 어니스트 리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래 석탄 광산의 기술자였던 그는 출판계로 옮기기 전에 탄부들을 위한 독서 모임을 열곤 했다. ‘보통 사람의 서가’ 시리즈 특유의 정신을 불어넣은 사람이 바로 리스였다. 책은 저렴하면서도 최고의 기준에 맞추어 디자인되었다. 모든 표지에는 매력 있는 목판화와 알두스 마누티우스를 상징하는 돌고래와 닻 도안이 찍혀 있었다. 깔끔하고 명확하게 인쇄된 책을 휴대할 수 있게 해준 개척자에게 보내는 존경의 인사였다.

370 노동자계급 사람들도 저마다 독서와 교양을 통한 만족에 대한 아널드의 믿음을 사유했고 그 반응은 엇갈렸다. 한때 면직 공장 노동자였던 급진주의 작가 에설 카니는 1914년 《코튼 팩토리 타임스Cotton Factory Times》에 기고한 편지에 너무 많은 교양은 노동자계급에게 “클로로포름” 같은 마취제로 작용해서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사회운동에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공자나 새우의 일생이 아닌 카를 마르크스를 읽고 삶의 조건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인 정치 활동에 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떤 모순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착취에 눈을 뜨고 저항할 준비를 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잠을 재우는 클로로포름이 아니라 잠을 깨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조지 W. 노리스는 우체국 직원이자 노조 간부로서 노동자교육협회에서 22년간 수업을 들었는데 그 효과를 돌아보며 이렇게 썼다. “사유하는 기술을 훈련한 뒤로 나는 이 시대 신문의 자극적인 헤드라인 뒤에 숨은 허세와 기만을, 부정직한 정당 정치가와 독재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사를, 증오의 씨앗을 뿌리며 세계를 활보하는 독단적인 사상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또 다른 요소도 고려해야 했다. 공부, 독서, 예술을 관람하고 비판적 능력을 사용하는 일은 모두 즐거움을 가져온다는 사실이었다.

9 어느 꿈의 세상 - 새로운 세계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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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859 ~ 1910년
과학적으로 변한 휴머니즘 - 찰스 다운과 토머스 헨리 헉슬리 - 불가지론자에 대하여 - 레슬리 스티븐의 알프스산맥에서의 5분 - "의만사를 가진 목사,회의감이 생긴 목사" - 메리 워드의 <로버트 엘스미어> - 인류의 물음에 답하는 기이한 방식 - 에르네스트 르낭과 오귀스트 콩트 - 인류의 전환기

386 헉슬리 #교육 목적이 풍요로운 내저 삶과 세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이해를 가진 원만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널드와 홈볼트의 시각에도 동의했다. …과학이 더 좋은 기초를 마련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387 #과학 은 아이들에게 물리적인 세계의 기초를 알려주는 동시에 인문학적 능력도 키워준다. 바로 탐구 정신이다.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능동적인 학습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고대 문헌, 심지어 선생님이 하는 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결국 그런 문헌과 선생님의 말을 이해할 능력이 생긴다.

388 이것은 실로 훌륭한 논리다. 아널드는 과학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간에 대해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선의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해 교양을 탄탄하게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헉슬리의 논리도 훌륭하다. 헉슬리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기초가 탄탄해야 그런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얼 가지고 이야기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과학 교육만 받아도 사실을 오해하거나 과학적 근거나 실험의 의미를 곡해하지 않을 수 있고 어리석은 해석을 되풀이하는 경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389 이때부터 “인문학적 휴머니즘"과 계몽주의 시대의 멜리오리즘은 새로이 당도한 과학적 휴머니즘과 함께 하게 된다. 최신 과학의 논증과 방법론에 관한 관심을 지속하면서 자연이라는 큰 그림 속 인간의 자리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과학적 휴머니즘의 원칙은 우리 시대에도 광범위한 휴머니즘 세계관의 일부로 남아 있다.

389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휴머니즘 윤리는 우리가 정신적이고 문화적이며 도덕적인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물리적인 본성뿐만 아니라 인간적 환경이 우리를 형성한다. 과학적 휴머니즘은 우리가 동물이기도 하며 엄청나게 큰 우주 속 변화하는 지구 위에서 끊임없는 변이 과정을 거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390 (다윈)그는 자기 삶에서도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도덕론을 길잡이로 삼았다. 기독교인이었으나 젊을 때 믿음을 버렸는데 무엇보다 지옥이 있다는 몰인정한 생각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타인을 도왔을 때, 그래서 타인이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을 때, 특히 그 타인이 가까운 사람일 때 가장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고 사적인 노트에 쓰기도 했다. 다윈에게 이런 만족감은 사라진 신의 관념을 벌충하고도 남았다.

396 #의무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의무는 그 자체로 단일한 실체이 가까웠다.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실체였다. 신이 보장해줄 필요가 없고 우리 자신의 도덕적 본성에서 나온 것이다. 옳은 일을 하려는 인간 중심의 바람이었다. 타인에게 옳은 일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옳은 일,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옳은 일을 하려는 바람이었다.

405 다윈이나 헉슬리를 읽은 로버트에게 세상은 달라 보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인간적인 요구는 여전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약과 하수구가 필요했고, 여전히 확신과 의미를 추구했다. 로버트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휴머니즘적 가치 혹은 ‘인간적인 그리스도’가 전통적인 신학이 제공하던 것들을 똑같이, 어쩌면 그보다 더 잘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419 19세기는 과학의 영역에서나 인문학의 영역에서나 전환기였으므로 의외의 반응이 나왔던 것도 놀랍지 않다. 예수의 인간화와 인류교는 단지 두 가지 사례일 뿐이고 더 많은 가능성이 존재했다.

휴머니즘이 단지 하나의 종교를 다른 종교로 대체하려고 하며 인류를 우상으로 삼고 다른 모든 종을 열등하다고 여기고 무시한다는 오해는 오늘날에도 흔하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콩트가 만들어낸 종교에 해당하는 사실이다. 현대 휴머니즘은 이와 다르다. 현대 휴머니즘은 모든 종류의 독단적인 교리 체계를 거부하고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 생물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다.

420 (빅토리아 시대, 런던)급진론자와 진화론자, 자유 사상가, 불가지론자, 실증주의자로 가득한 이곳에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도 아니라는 의미"였다. “신의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 신앙의 상실이 초래한 방향 감각의 상실, 대체 종교를 찾으려는 엉뚱한 시도, 도덕적 스승에 대한 갈망, 과학을 향한 열광등이 모두 뒤섞여 휴머니즘의 이야기 속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420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물음을 갖고 있지만 다른 방법으로 질문한다. 여러 다양한 생명체 사이에서, 혹은 물리적인 우주 전체에서 인간의 위치는 어디인가? 과학적 논증에서 나온 결론과 종교적인 사유의 전통에서 나온 생각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우리에게는 영웅이나 성인, 도덕적 지도자가 필요한가?

421 러셀은 인류가 번영하려면, 아니 그저 살아남기라도 하려면 두려움을 현명하게 다루고 희망의 자취나마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10 희망찬 박사 - 언어로 세상을 연결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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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870년대 이후
희망의 시대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던 세 명의 휴머니스트 - 언어를 만든 루드비크 라자로 자멘호프 - 행복을 믿은 로버트 G. 잉거솔 - 활기찬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던 비트런드 러셀

425 19세기에 희망을 품을 방법은 많았다. 정치 혁명에 기대를 건 사람도 있었고 인류 전체가 연국 남성을 따라 진보의 사다리를 오르는 꿈을 꾸는 사람도 있었다. 민족주의의 승리나 종교적 초월을 믿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특별한 낙관론자들도 있었다. 인간이 혐오나 미신, 전쟁 없이 모두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기 위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427 어딜 가든 사람들은 러시아인, 폴란드인, 독일인, 유대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코 그냥 ‘사람’을 논하지는 않았다.

429 라틴어..동사와 명사 어미 변화가 복잡해서 배우기가 고통스럽다…현대의 물건을 표현할 명사가 없었다. 키케로 추종자들도 겪는 문제였다.

436

유일한 선은 행복 행복할 때는 지금 행복할 곳은 여기 행복해지는 방법은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

  • 로버트 G. 잉거솔

438 잉거솔은 실로 할 말이 아주 많아서….기사를 쓰기도 하고 강연을 하러 길을 떠나기도 했다. …희망과 진보, 행복 이외에도 그는 기성 종교가 인간 삶을 망치고 그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를 통해 스스로 자유를 찾는 일의 바람직함 등을 주제로 삼았다.

441

삶은 살 가치가 있는가? 내 경험에 비추어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살아있는 게, 공기를 마시고, 풍경을, 구름을, 별을 바라보는 게, 옛 시를 외고, 그림과 조각을 보고, 음악을 듣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좋다. 음식도 담배도 즐긴다. 시원한 물도 좋다. 아내와 딸들, 손주들과 대화도 좋다. 잠도 좋고 꿈도 좋다. 내 경우에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잉거솔)

441

나는 인간 본성의 고귀함을 믿는다. 사랑과 가정, 친절, 인간성을 믿는다. 좋은 동지 관계, 유쾌한 태도, 아내와 자녀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의 가치를 믿는다. 좋은 본성을 믿는다. (…) 자유로운 사상을 믿고 이성. 관찰, 경험을 믿는다. 자립을 믿고 솔직한 생각의 표현을 믿는다. 나는 인류 전체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다. (잉거솔)

442 천국을 위해 풍요로운 삶을 아껴두는 일은 이 땅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말하자면 오렌지를 족쪽 빨아먹고 싶습니다. 죽을 때가 오면 껍질밖에 남아 있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살자!’ 라고 말합니다.!”

442 1980년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한 남자에게 그가 쓴 편지. 잉거솔은 이렇게 조언했다.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안 됩니다. 돕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면 착한 강아지라도 찾아 돌보십시오. 기분이 놀랄 만큼 나아질 것입니다”

443 잉거솔의 행복 강령은 휴머니즘 단체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높다. 일련의 답변으로 이루어진 강령이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자문하게 만든다. 우리는 왜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가? 왜 종교가 주는 불안, 가부장제의 학대, 비이성이라는 불행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지 않는가? 이것이 자멘호프가 언어를 만들어서 하려고 했던 일이다.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이 썼듯 “인간이 의무를 다하려면 하느님의 분노를 피하며 세상을 그저 스치듯 지나가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은 우리 세상이며 천국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우리가 정한다.

445 러셀은 18세에 밀의 전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 가졌던 기독교적 믿음의 마지막 잔여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말했다.

446

…하지만 그런 찻주전자의 존재를 아주 오래된 책이 확인해 주고 있고 매주 일요일 그 존재를 성스러운 진실로써 가르치는 데 더해 학교에서 아이들의 머릿속에 주입했다면 그런 존재를 믿기 꺼리는 자는 유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며 의심하는 자는 계몽 이후 시대라면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자, 이전 시대라면 종교재판으로 보내야 마땅한 자로 여겼을 것이다.

  • 러셀 -

447 오직 권위에 따라서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 결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은 러셀이 가진 가장 강력한 확신 중 하나였다

448 자멘호프, 잉거솔과 마찬가지로 러셀은 왜 세상이 좀 더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어리둥절했다. 행복과 안녕으로 가는 길이 이처럼 논리적인데 사람들은 왜 그 길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그러나 러셀 자신의 삶조차도 이성이나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러셀은 때때로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도 이런 감정에 빠져 일몰을 바라보다가 자살을 생각했다. 하지만 수학을 좀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러셀은 말했다.

455 러셀도 교육을 자유로운 성장의 관점에서 보는 이런 시각을 공유했다. 또한 헉슬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대한 탐구 정신을 키우는 데 과학 교육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적 이해력은 비합리적인 믿음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고 상상력을 자극해서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 “앞으로 가능한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전에 기초한 학습은 고대의 학자들을 영원히 완벽하고 개선할 수 없는 존재로 보지만 과학자들에게는 모든 관념이 발전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456 규칙을 따르거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사실에 매달리는 대신 새로운 것을 탐구하도록 교육받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 “종속의 대가"로 “안정감"을 제공하는 사상에 끌릴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고 러셀은 생각했다.

450 아주 오래전의 에피쿠로스학파니 계몽주의 시대인 돌바크 남작처럼, 그리고 좀 더 최근에는 잉거솔처럼 러셀은 인간이 행복하려면 종교로 인한 불안, 특히 내세에 대한 불안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행복의 가장 큰 적이고 종교는 두려움의 가장 큰 원천이었다.

450 현대인의 삶에서 우리는 대체로 두려움보다 용기가 더 필요하다. “우리는 일어서서 세상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454 전쟁이 끝나기 전부터 러셀에게 가장 시급한 물음은 인간에게 공포와 호전성을 불어넣는 힘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454-455 우리는 욕구를 없애는 방법이 아니라 전쟁이나 광신주의보다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충동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충동을 죽음과 쇠퇴가 아닌 생명과 성장의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절망이 아닌 희망으로 돌려아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떻게? 러셀의 생각은 선대와 후대의 수많은 휴머니스트의 생각과 같았다.아이들을 키우는 방법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전 생애에 걸쳐 돌보는 전반적인 방법을 바꾸는 것이 핵심이었다. 교육이 변화해야 했다.

455 #과학 적 이해력은 비합리적인 믿음을 갖지 않도록 도와주고 상상력을 자극해서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 아닌 “앞으로 가능한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고전 에 기초한 학습은 고대의 학자들을 영원히 완벽하고 개선할 수 없는 존재로 보지만 #과학 자들에게는 모든 관념이 발전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

459 히틀러의 사상은 러셀이 증오하는 모든 것을, 인종주의, 군국주의, 국가주의, 질 낮은 행패, 우매함을 극한의 수준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11 인간의 얼굴 -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찾은 존엄과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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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1919 ~ 1979년
안티휴머니즘의 상승 - 인간 영혼을 만지는 기술자 - 조반니 젠틸레와 베네데토 크로세 - 휴머니시트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 토마스 만과 가족들 - 망명자들 - 아비 바르부르크의 도서관을 비롯한 문명의 구출 - 끝나지 않는 참상과 좌절 - 국제기구와 실질적인 복구 노력 -다시 희망을 찾은 러셀

469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 “전체주의 교육의 목표는 결코 확신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라 확신을 가질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471 크로체가 말하는 종교…“진실에 대한 사랑, 정의에 대한 희망, 인간과 사회에 대한 너그러운 시각, 지적이고 도덕적인 교육에 대한 열망, 자유를 향한 적극성”

472 크로체는 독자들에게 인간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잘 간직하라고 충고했다. 때로 멀리 우회하더라도 역사의 긴 흐름은 여전히 더 큰 자유와 진보를 향하고 있다고 믿었다. 1937년에 쓴 에세이에서는 가끔 우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발생했을 때 절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시절이 저절로 돌아오기를 앉아서 기다릴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자유는 삶과 같다. 언제나 싸워서 얻어야 한다. 싸움이 끝나지 않더라도. 희망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도.

493 인의 고향인 중국에서 마오쩌둥 정권은 “최선을 다해 나의 인간다움을 이루고 타인을 대할 때 그들 또한 인간다움으로 살아 있음을 깨닫는 것” 이라는 철학의 흔적을 깡그리 지워버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494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 인간성을 소거한 극단적 교조주의의 참극](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 인간성을 소거한 극단적 교조주의의 참극) 200만명의 사망자, 당시 캄보디아 전체 인구가 겨우 700만명,

497 이런 이유에서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1951년 에세이에서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야만적"이라고 말했다. 곧잘 인용되는 이 말과 그가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전쟁 막바지에 쓴 『계몽의 변증법』에 나오는 보다 긴 주장은 문화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자기만족에 빠진 서구적 사유를 극도로 비판적인 입장에서 재평가해야 한다는 권유였다. 계몽주의 사상을, 발라의 말을 빌려 “다시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쓸모 있는 활동은 자유주의, 휴머니즘, 계몽주의적 가치관의 전면적인 거부 같은 것으로 뒤바뀌기도 했다. 이런 가치관들의 실패를 자업자득으로 여긴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이 본능, 폭력, 국가주의, 전쟁을 긍정하기 위해 이성, 국제주의, 개인주의, 인도주의, 멜리오리즘의 원칙을 노골적으로 거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기이한 왜곡이다.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는 반휴머니즘적이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휴머니즘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휴머니스트에게 이렇게 들린다. 신호등이 있어도 자동차 사고가 생기므로 신호등이 잘못했다.

이런 왜곡은 극단적인 사건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는 데 지식인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느꼈던 현실을 반영한다. 문명적 가치관이 해체되고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었던 지식인들은 적절한 답변보다는 훨씬 더 극단적인 가치관의 해체로 기울었다.

500 인간 본성은 신도 누구도 설계하지 않았고 애초에 설계도가 없다는 생각

500 우리가 무엇일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리고 모든 선택의 순간에 “인간을 창조해야"한다.

500 [미셸 푸코 19261984](미셸 푸코 19261984) 는 계몽주의가 만든 인간이 이제 제거될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는 사회적, 역사적 영향에 의해 형성된 인간으로서의 우리에 대한 좀 더 비판적인 이해가 들어선다. 종교 사상가들은 인간성의 중심에 신을 놓았고 하이데거 학자들은 존재를 놓았다. 이제 그 중심에는 구조와 과정이 있다. 구조와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인간적이지만 그 속에 사는 실제 인간들보다 더 중요한 대접을 받는다.

501 탈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 1961년 파농은 “(…) 우리는 더 연결되어야 하고 더 다양한 소통의 방식을 마련해야 하며 재인간화된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도 따라잡고 싶지 않다. 우리는 그저 밤낮을, 매 순간을 인간의 곁에서, 모든 인간의 곁에서 전진하고 싶을 뿐이다.”

503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역사와 인간 세상은 안정적이고 선하기만 한 곳도 아니고 절망적인 비극도 아니다 세상은 우리 자신의 작업 결과이기 때문에 잘되길 바란다면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504 UN에서 파생된 조직에는 유네스코, 즉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있다. 에라스뮈스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 설립 목표문에는 전쟁이 인간 정신에서 시작되므로 평화 또한 인간 정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평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도서관,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과학연구기관, 대학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야심 찬 정책을 시작했다.

[에라스뮈스 Erasmus 1466 -1536 의 휴머니즘](에라스뮈스 Erasmus 1466 -1536 의 휴머니즘)

512 버트런드 러셀 1954년

우리가 선택한다면 앞으로 행복과 지식, 지혜를 계속해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데도 서로 싸운 기억을 잊지 못해 죽음을 선택할 것입니까? 인간으로서 인간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인간성을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으십시오. 새로운 낙원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 앞에는 공통된 죽음 말고는 없습니다.

516 러셀의 자서전 마지막 글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의 세상으로 가는 길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먼 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지만 그런 세상이 가능하고 그런 세상을 앞당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삶이 가치 있다는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개인과 사회에 대한 바람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개인적으로는 고귀한 것, 아름다운 것, 상냥한 것을 돌볼 수 있기를, 풍파가 심할 때는 순간의 통찰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고 혐오와 탐욕과 질시가 굶주려 죽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믿는 것은 이런 것들이고 세상은 그 모든 참혹에도 나를 흔들어놓지 못 했다.

12 행복할 곳 - 휴머니스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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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부터 현재

휴머니스트 단체와 선언문, 그리고 활동 - 마리아의 자녀들 -법정과 의회, 그리고 학교 - 걱정하지 말아요! - 덧셈의 기쁨 - 휴머니즘의 적 - 건축과 도시 계획 - 바실리 그로스만 - 기계와 의식 -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 - 아서 C.클라크와 오버마인드 - 휴머니즘이라는 돛단배 - 언제 어디서 어떻게 행복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520 1933년 세계 최초의 휴머니스트 선언이 제정되었다. 34명이 선언문에 서명했다. 선언문은 휴머니즘을 종교라고 하면서도 휴머니스트들은 우주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고 “인간의 가치를 보장하는 어떤 초자연적이나 우주적인 힘"도 상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휴머니스트는 “종교적 감정"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것은 대체로 “개인의 삶의 의미를 중시하는 태도와 사회적 안녕을 추구하려는 공동의 노력에 대한 믿음"의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휴머니스트는 “노동,예술,과학,철학,사랑,우정,놀이 등 정도는 달라도 지적으로 충만한 인간 생활을 나타내는 모든 행위"에 관심을 갖는다. 간단히 말하면 휴머니스트는 “삶의 즐거움"을 중시하며 (테렌티우스를 인용하자면)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524 휴머니스트는 “온갖 다양성과 갯어을 가진 인류의 번영과 우애"를 희망하는 사람이다.

525 “우리는 누구도 전지적이지 않고 누구든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세계와 인류에 대한 지식은 오직 관찰과 학습, 그리고 반복되는 고민이라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검증을 회피하는 것도, 우리의 시각을 모든 인류가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대의를 위해 틀에 갇히지 않는 사상의 표현과 교류를 보장하는 데 힘쓸 것이며 우리와 가치관을 공유하지만 믿음 체계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고자 한다” (2022년 선언문 )

530 신성모독법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은 여전히 휴머니즘 단체들의 핵심 활동에 속한다.

539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담은 허스턴의 글

나는 말로도 행동으로도 결코 타인에게서 그것이 주는 위로를 빼앗고자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나에게 필요치 않을 뿐이다. 황홀경에 빠져 대천사를 바라보는 일은 양보할 수 있다. 나로서는 깊은 안개 속 새벽으로부터 불거져 나온 노란 아침 한 올의 기쁨이면 충분하다

539 나의 경우(저자) 복잡한 우주를 상상하는 데서 황홀감과 기쁨을 느낀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는 약 1250억 개의 은하계가 있고, 우리 은하계에만 약 1000억 개의 별이 있으며, 그중에서 우리의 별은 우리 행성을 비추고, 우리가 사는 행성을 8700만 종의 다양한 생물로 가득 채우는데, 이 생물 중 단 하나의 종이 이를 연구하고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1.3KG 정도 나가는 말랑말랑한 뇌 물질로 이 모든 지식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의식, 감정, 자기반성으로 이루어진 온전한 작은 우주를 생성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다.

539 왜 인간의 정신적 지형은 우리가 이때까지 우주와 그 안의 생명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얻어낸 지식을 마치 투명하고 왜곡이 없는 거울처럼 반영하지 않는가?

541 1968년 영국 휴머니스트계의 원로 해럴드 J. 블래컴

기독교인이든 휴머니스트든 모든 혐오주의자, 파벌주의자, 교조주의자, 광신자, 위선자. 어떤 꼬리표를 달고 있든 인간을 속이고 구속하고 조종하고 세뇌하는 등 인간으로부터 독립심과 책임감을 빼앗고, 특히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자. 휴머니즘의 대의는 가장 폭넓고 가장 모호한 언어로 말하자면 “생과 자유"며 적의 전선에는 생과 자유에 적대적인 모든 교리, 제도, 관습과 사람이 있다.

[해럴드 J. 블래컴 Harold J. Blackham 1968년 선언](해럴드 J. 블래컴 Harold J. Blackham 1968년 선언)

542 광범위한 정치적 캔버스뿐만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머니즘 건축이나 휴머니즘 도시 계획이란 무엇일까? 적절하고 만족스러운 인간 삶의 향유를 끊임없이 박살 내지 않는 건축이자 도시 계획이다. 휴머니즘적 공공 설계자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사용하고 무엇이 사람들을 편하게 만드는지 고민한다.

543 휴머니즘적 도시 설계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위대한 미국인 제인 제이컵스 ~ 1958년 로버트 모지스가 워싱턴스퀘어파크를 없애고 맨해튼 남부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매 제이컵스가 나서서 이를 막았다. 나아가 사람들이 도시 안에서 실제로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지 연구하고 집필 활동도 했다. 예를 들어 도시 변두리에 커다란 공원을 만드는 것이 좋은 생각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람들은 매일 일터나 가게로 가는 길에 보기 좋은 곳을 지나가길 원하지 특별히 시간을 내서 찾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555 제임스 볼드윈

우리는 삶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낳았고 다시 우리가 돌아갈 그 두려운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작은 등불이다. 우리는 이 길을 가능한 한 고귀하게 빠져나가야 한다. 우리 뒤에 올 이들을 위해서.

555 나는(세라 베이크웨 저자) 자유사상,탐구,희망이라는 휴머니스트의 조합을 선호한다.

감사의 말

부록 휴머니스트 인터내셔널 현대 휴머니즘 선언문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는 대의를 위해 틀에 갇히지 않는 사상의 표현과 교류를 보장하는 데 힘쓸것. 우리는 인류가 평화와 인간 번영을 추구하기 위해 벌이는 자유로운 탐구, 과학, 연민, 상상력으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현대 휴머니즘 선언문 2022 (암스테르담 선언 2022)

— 글래스고 총회 만장일치 합의

배경

2022년 글래스고에서 열린 휴머니스트 인터내셔널 창립 70주년 총회에서 현대 휴머니즘의 근본 원칙을 담은 선언문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The Washington Post

휴머니스트의 믿음과 가치는 문명만큼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 대부분의 사회에서 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 휴머니즘은 의미와 윤리에 관한 이 긴 추론 전통의 결정체이며,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인도주의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고, 근대 과학의 발흥과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Kirkus Reviews

핵심 원칙 — 4가지

① 휴머니즘은 윤리적입니다

도덕은 인간의 조건에 내재되어 있으며, 살아있는 존재가 고통받고 번영할 수 있는 능력에 근거하고, 돕고 해치지 않는 것의 이로움에 의해 동기 부여되며, 이성과 공감으로 실현되고, 인류 밖에서 어떤 원천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가치와 존엄성, 그리고 모든 인간이 타인의 권리와 양립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와 가장 완전한 발전을 누릴 권리를 확언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평화, 민주주의, 법치, 보편적 인권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과 편견, 그로 인한 불의를 거부합니다. Kirkus Reviews

② 휴머니즘은 이성적입니다

세계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인간의 이성과 행동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과학과 자유로운 탐구를 이 문제들에 적용할 것을 옹호하되, 과학이 수단을 제공하는 반면 인간의 가치가 목적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을 인간의 복지 향상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며, 결코 무감각하거나 파괴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Kirkus Reviews

③ 휴머니스트는 삶에서 성취를 추구합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모든 개인적 기쁨과 성취의 원천을 소중히 여기며, 창의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개발을 통한 개인의 성장은 평생에 걸친 과업이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술적 창의성과 상상력을 소중히 여기고, 문학, 음악, 시각 예술과 공연 예술의 변혁적 힘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경외감, 고요함을 가져다줄 잠재력을 소중히 여깁니다. Kirkus Reviews

④ 휴머니즘은 독단적 종교의 대안입니다

휴머니즘은 독단적 종교,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부족적 종파주의의 대안으로서 의미와 목적의 원천에 대한 광범위한 요구를 충족시킵니다. Los Angeles Review of Books

특히 중요한 두 가지 선언

인류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

우리는 인류가 자유로운 탐구, 과학, 공감, 상상력을 통해 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위하여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해결할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이 고무적인 노력에 동참하도록 이 신념을 공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호소합니다. Los Angeles Review of Books

지식의 겸손함:

우리는 인류의 안녕에 대한 헌신이 영원하다고 믿지만, 우리의 특정 견해는 모든 시대를 위해 고정된 계시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휴머니스트는 누구도 무오류하거나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세계와 인류에 대한 지식은 지속적인 관찰, 학습, 재고의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Los Angeles Review of Books


7. 🤔 Rambling

선언 내용 연결되는 인물
도덕은 인간 안에 내재한다 테렌티우스 → 몽테뉴
이성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발라의 문헌 비판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훔볼트의 빌둥
독단적 교조주의를 거부한다 블래컴의 선언
과학은 수단, 가치가 목적 에라스뮈스의 기독교 인문주의
예술과 자연의 변혁적 힘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누구도 무오류하지 않다 크메르루주의 반면교사
  • 휴머니즘… 지극히 개인적인 개념

    • 연결
      • 우리는 우리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를 찾아야 한다
      • 자신의 세계관 뿐 아니라 타인의 세계관 이해위해 노력해야 한다..왜?
    •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나약한 생물학적 특징이로
      • 우리는 적어도 성인이 되기 까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 성인이되어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를 위해 도와야한다
      • 이런 사회적 무리생활 종이 살아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 우리는 서로 같이 공존 생활을 위해 이타적 마음을 갖는 휴머니즘을 보유해야 할것이다.
      • 이것은 종교나,철학과는 다른 개념일까.
  • 실존주의적 휴머니즘과 종교·전통 철학이 말하는 이타주의는 ‘행위’는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 ‘동기(Why)’‘근거(On what basis)’ 에서 극명한 차이가 있다

  • #인문학 의 선구자

    • 단테
      • [단테 알리기에가 왜 인문학의 선구자라고 평가 되는가](단테 알리기에가 왜 인문학의 선구자라고 평가 되는가)
    • 페트라르카
      • 최초의 인문학자 [페트라르카 가 최초의 인문학자라고 평가 받는 이유](페트라르카 가 최초의 인문학자라고 평가 받는 이유)
    • 보카치오
      • 페트라의 편지 교류
        • 페트라르카가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을 때, 젊은 보카치오는 그를 거의 숭배했습니다. 1350년경 처음 만난 후 두 사람은 평생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작업을 격려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 지식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인문주의적 문화의 첫 번째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 로렌초 빌라 1440년경
      • 교황이 콘스탄티누스 의 기증장을 거짓으로 만들어 낸것을
        • 역사적,수사적으로 까발리고
        • 가장 중요한 언어학 적으로 당시는 그런 단어를 쓸리 없다는 주장을 하게된다.
  • 1455년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로 찍어낸 성경을,

    • 당시 수도원에서는 쳐다보지도 않은 곳도 있었다
    • 신기술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 발라는…떠돌이 인문학자로…후원자를 기쁘게 해야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 …. 기술직이 아니면 ..이것은 숙명인가… 학자의 삶은 현실적 배고품을 감당해야 하는것인가 보다. 고대나 중세나 지금이나…
  • 4장

    • 의술도 인문학이다. 신의 미라클을 의지하기보다
      • 몸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대응하는것, 인간의 몸에 대한 역사를 알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어야 한다.
    • 인간이 살려면 인간의 몸을 열어야 한다. 해부학
      • 하지만 , 종교는 이걸 허락하지 않는다.
      • 종교의 교리를 거부한 용감한 의사들은 인간의 몸을 이해했다
      • 지금 우리는 그런 의학의 역사와 지식에 근거에 치료를 받고 생명을 연장 받는다.
      • 이런 아이러니 상황을 종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설명 되어야 하는가.
  • 5장

    • “나는 인간이고 인간의 그 어떤 일도 남의 일이 아니다” , 매우 싱거운 문장인데, 계속 생각하게 된다.
      • 인간임을 잊지말고, 인간의 일을 다른 사람의 일을 내일 처럼, 더블어 살아야 한다.
    • 몽테뉴
      • 몽테뉴… 정치적이지만 의견을 피력하는 방식은 회피하고, 사적 자유를 고집하고 순응을 거부하는 방식
      • 아주 극렬히 공감된다.
  • 6장

    • 1477년 리스본에 지진이… 2001년 9월 미국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은 것처럼, 그 위대한 도시가 큰 피해를 본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신의 심판이라 생각했을까.
        • 전례 없는 대재앙과 ‘낙관주의’의 붕괴
        • 신의 섭리에 의존하던 중세적 낙관주의를 무너뜨림으로써, 인간이 이성과 과학을 통해 스스로 재난에 맞서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해야 한다는 근대적 휴머니즘을 탄생시킨 결정적 촉매제가 되었다.
    • 몽테뉴와 흄,,, 멋진 생각을 가진 휴머니스트
  • 8장

    • 훔볼트가 위대한 이유는 단순히 좋은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페트라르카, 발라, 몽테뉴가 개인으로서 인문주의를 실천했다면 — 훔볼트는 그것을 제도로 만들었습니다. 인문주의 교육을 소수 엘리트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받아야 할 권리로 전환시킨 것 — 이것이 베이크웰이 그를 “최초의 대규모 실행자"라고 부르는 이유
    • 형인 빌헬름이 언어를 통해 인간 정신의 지도를 그렸다면, 동생인 알렉산더는 전 세계를 누비며 자연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지도를 그렸습니다.
  • 9장

    • 기독교인이 었던 다윈,
      • 그시절 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만 낙오된다거나, 신의 노를 산다거나, 자신의 삶을 잘 못 살지 않을까 라는 불안, 불안에 휩싸일 수 있을 것이다
      • 그런건 불안을 그는 타인, 아주 가까운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만좀감을 느낀것, 사람과의 교류, 그 감정들로 신의 관념과 불안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390
      • 시대적 거대한 흐름에 반대하는건 쉽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많한 무언가를 가진 큰자여야 한다.
    • 그시대 회의감, 신을 버리려면… 가족과 연을 끊을 각오를 해야한다.
  • 10장

    • 언어를 통일하면 서로 이해하기 쉬워질 것이라는 아이디어, - 자멘호프
  • 11장

    • 인간이 살아갈 세상은 인간이 선택한 결과들이다
    • 내 삶을 어떻게 살건지 내가 선택하는 것처럼
      • 개인들의 선택들이 모이고
      • 집단을 위한 선택들이 모이고
      • 모여서 우리의 미래가 된다.
      • 그 미래를 살아갈 또 다른 우리들.
      • 우리는 선택을 잘 해야한다.
      • 나를 위해 , 우리를 위해, 미래의 나와 우리를 위해
    • 러트런드 러셀
      • 그의 삶도 참 아이러니하고 숨막히는 순간들이 많았다.
      • 진정 행운아인가.
  • 12장

    • 신성모독법
      • 신을 거부하고나 부정하는것을 , 모독하는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심리
      • 휴머니스트는 신성모독법을 폐기를 원한다
    • 인간이 신,종교가 없어지만 불안하다.
      • 그들은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살아내야할지 모른다.
      • 그래서 종교를 더욱 붇들고, 의미를 부여하고,의미를 찾는다.
    • 인간은 휴머니즘을 만들고 공동체로 살기 위한 가치관을 공유한다
      • 신,종교,휴머니즘..우리는 어떤 공동의 가치관을 공유해야함 협력하고,같이 살아갈 수 있다.
      • 우리가 서로와 같이 지내기 위한 공통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은, 그래서 시대마다 변화되는 것일까
    • 지금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이 휴머니즘의 가치관들이, 지금으로 부터 몇세기기 지나면 또 어떤 가치관으로 변화할까.
      • 그때는 또 지금의 휴머니즘의 생각과 싸울 것인가
    • 어찌되었든 21세기 지금은 종교로 인한 - 그 본성과 뜻을 - 이용하는 권력을 쥔자들로 이해 , 거부당하고 있다.
      • 우리는 휴머니즘적 가치관을 공유해야 더블어 살아갈수 있는 더 유익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 “우리는 덧셈만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내 삶에 풍요가 더해지는 삶.
      • 아침의 해를 맞는 기쁨, 그거면 된다. 거창한 천사를 만날 필요가 없다.

8. 🔗 References

페트라르카는 여생을 남아 있는 고전을 구해내는 데 헌신하게 된다. 그는 못 말리는 여행가이기도 해서 1330년대에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오가고 폴랑드르와 브라방,라인란트를 가로질렀다. 여행 중에 수도원을 발견하면, 거미줄이 쳐진 서가에서 어떤 보물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곳의 도서관에 들렀다. 그는 오랫동안 소실된 작가들의 사본, 이를테면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여태껏 글을 한 줄이라도 쓴 작가들 전부만큼, 아니 그들 모두를 함친 것보다 더” 칭송한다고 주장한 키케로의 저작 사본을 발견해 자신의 필사본 컬렉션에 추가하는 등 놀라운 발견을 여러 차계 해냈다. 34


  1. 인(仁)은 ‘사람(人)이 두 명(二) 이상 모였을 때 갖추어야 할 따뜻한 사랑과 도덕적 인격’ ↩︎

  2. https://m.blog.naver.com/europareise/223561600802 https://en.wikipedia.org/wiki/Anatomical_Theatre_of_Padua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파도바 해부학 극장 ( 이탈리아어 : Teatro Anatomico di Padova ) 은 세계 최초의 상설 해부학 극장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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