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쇳돌

[!INFO] 책 정보
- 저자: 저자/이라영
- 번역:
- 출판사: 출판사/동녘
- 발행일: 2026-02-20
- origin_title: -
- 나의 평점: 9
- 완독일: 2026-06-04 05:38:47
1. 🖐️ Before Reading (읽기 전)
1.1 동기와 기대
2. 📜 Synopsis (LLM)
Summery
이 책은 한국의 사라져가는 광산 산업과 그 속에서 살아온 노동자, 특히 비가시화된 여성 노동자들의 삶과 목소리를 채굴하고 기록합니다. 저자는 자신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광산에서 일했던 조부모 세대부터 폐광 후 직업을 전환하며 살아남은 부모 세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노동 이동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산업의 변화 속에서 잊혀지고 소멸하는 존재들이 겪는 고통과 생존의 몸부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세계를 지탱해 온 그들의 구체적인 노동을 조명하며, 변방과 경계에 있는 목소리들을 낭만화하지 않고 치열하게 기록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망각된 역사를 복원하고자 합니다.
Keyword
#광산 #노동 #폐광 #여성노동 #가족사 #사회문제 #이라영 #채굴 #목소리 #역사
Author
이라영
- 직업: 문화예술평론가/칼럼니스트
- 경력: 197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강릉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서울, 부천, 프랑스, 미국 등으로 이동하며 학업과 직장 생활을 했다. 현재는 경기도 김포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 먹을 것을 고민하는 문화평론가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싸우는 사람의 목소리, 변방과 경계의 자리를 포착하려 노력하며, 주요 저서로는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정치적인 식탁》,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말을 부수는 말》 등이 있다. 연극 〈식사〉에 공동 창작자로 참여하는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Gemini
1.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위한 역사 기술
《쇳돌》은 거대 담론 중심의 역사학이 포착하지 못한 변방의 삶을 역사의 중심부로 끌어올립니다. 작가는 기지촌 주변부의 삶, 가난한 이들의 노동, 그리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서사를 구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복원합니다. 이는 공식 역사(History)가 배제했던 소수자들의 기억을 공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대안적 역사 기술의 역할을 합니다.
2. 물질성과 기억의 결합
책의 제목이기도 한 ‘쇳돌’처럼, 작가는 단단하고 차가우며 때로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물질적 상징을 통해 기억을 구체화합니다. 추상적인 피해 의식이나 감상주의에 빠지는 대신, 일상의 사물과 공간에 새겨진 고통과 저항의 흔적을 정밀하게 추적합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독자에게 단순한 감정적 동정을 넘어, 구조적 모순을 직시하게 만드는 지적 각성을 유도합니다.
3. 고통의 연대와 사회적 확장
이 작품은 개인의 상처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이 어떻게 구조적 폭력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기지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적 배경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분단 체제, 계급 격차, 그리고 성적 착취의 메커니즘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렌즈가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을 타인의 고통과 연결함으로써,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차별과 배제에 맞서는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를 구축합니다.
결론적으로 《쇳돌》은 사적인 기억의 공간에서 출발하여 한국 현대사의 모순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지워진 타자들의 존엄을 복원해내는, 실천적이고 기념비적인 서사입니다.
3. 🔆 Insight & Deep Dive
3.1 깨달은 점 (Aha Moment)
- 이 술술 잘 읽힌다.
- “‘폐광’이라는 간단한 어휘 속에 담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의 시간과 두께가 있다.” 이 간단한 단어를 정말 간단하게만 흘려 듣기만 -사용할 일도 없었던거 같지만 - 했는데 이제는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있는걸 알게되어 쉽게 흘리지 못할거 같다.
- 도시의 삶을 살아가며 이렇게 많은, 아직도 탄광이 있다는 것에 놀라는 구별된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돌아 보기도 했다.
- 잔잔하게 많은 것을 준 독서 시간이었다.
4. 🏆 Top Highlights
📌 첫 번째 문장
막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 두 번째 문장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쪽에 맞추고 저쪽에 맞춰야 했다
📌 세 번째 문장
모든 사람이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살 수는 없지만, 같은 시대를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차별이 심할수록 다른 계층 사이에서 ‘동시대인’의 감각이 형성되기 어렵다. 빈부격차는 이처럼 시대격차를 생산한다. 사회적 위계에 따라 시간은 차등적으로 부여되며 또한 서울과 지역 간에는 다른 시대가 형성된다. 노동자들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에 광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평범한 사 람들도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정치는 노동자들을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살도록 적극적으로 방치함으로써 문화적으로 밀어낸다. 이처럼 정치가 모든 사람의 시간을 동등하게 대우 하지 않음으로써 구조적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강화한다. 시간적 불평등은 기본적인 인권 침해 중 하나다.
📌 네 번째 문장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질과 문명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 있다. 붉고 검은 흙이 정말 인간의 피로 보인다. 광물 탐사 인공지능의 활용도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감정이 없어 파업하지 않는 인공지능은 어쩌면 완벽한 노동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 훈련에는 상당한 양의 전기와 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리 첨단을 말해도 핵심 광물을 채굴하는 노동은 여전히 인간의 손을 떠나지 못했다.
📌 다섯 번째 문장
‘폐광’이라는 간단한 어휘 속에 담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의 시간과 두께가 있다.
📌 여섯 번째 문장
광물을 캐면 돈을 벌지만 사람을 캐면 돈이 들어간다. 끝내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다.
📌 일곱 번째 문장
사양산업이기에 노동자들에게 같은 직종으로의 이직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폐광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야 했다. 광산은 닫혀도 삶은 지속된다. 보이지 않는 직업, 더욱 보이지 않는 노동자. 이들은 원래 보이지 않았기에 이들이 일하던 장소의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다. 광산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들에게 광산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런 상실도 안기지 않는다. 단지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무관심 속에서 직장을 잃을 뿐이다.
6. 🖍️ Book Marks
서문 “다 죽었지”
1부 철광산을 중심으로 살펴본 어느 가정의 노동이동사
1장 광산촌
자철 광산, 양양광업소
장승리에 오다
2장 선광부
땅속의 여자들
57 #1943년 조선의 광산노동자는 18만 3,000명으로 이 중 8퍼센트가 ‘부인’이다.
61 1950년대 한국 수출품은 대부분 광산물이었다. 1위가 텅스텐이었고, 흑연과 철광석이 그 뒤를 잇는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1961년 한국의 5대 수출품은 철광석,중석,생사,무연탄,오징어였다. 아직 경공업과 제조업이 발달하기 전이라 1차 산업이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1970년대 5대 수출품은 의류,합판,가발,철광석, 전자제품이 되었다. 1970년대부터 경공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1차 산업의 비중이 줄었지만 여전히 철광석은 주요 수출품목이었다.
62 1965년 양양군의 철광석 수출액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0%를 차지할 정도였다.
쇳돌 고르는 여자들, 선광부
“거기 맨 젊은 여자지”
어둠 속, 여성의 밝은 노동
보물 같은 정조와 돌봄
가출하는 여자들 : 영희, 성미, 금숙, 미영 그리고……
3장 잡역부
폐석장
80 광산의 고용형태는 크게 임시부와 상시부로 나뉘었는데 임시부 중에서도 오늘날로 치면 단기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처럼 급이 나뉘었다. 상시부는 고입이라 부르는 정규직이다. 임시직 노동자들은 상당히 차별 받았다. 월급의 차이만이 아니라 각종 복지 혜택에서도 차이가 컸다
81 밥 먹는 자리까지 나뉠 정도였으니 임시부와 상시부는 하나의 신분제도나 다름없었다. 임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저런 설움도 많았지만 ‘빽이 있어야’ 상시직이 될 수 있었다. 인권의식도 부족하고 노조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던 1960년대 광산 폐석장에서 방학 때 임시로 일하는 ‘잡부’ 청소년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광석이 다니는 길
4장 채광과 궤도부
87 당시 그 지역 사람들에 양양광업소가 어떤 일자리였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군복무 중 땅굴을 발견한 사람이 일종의 포상으로 양양광업소에 취직한 사례다.
김 모씨는 1971년 땅굴을 발견해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최초 북한 땅굴을 발견한 공로로 제대하면서 가고 싶은 직장을 말하라고 하여 그때 양양에는 좋은 직장이 없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양양광산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 입사하게 되었다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포상으로 광산에 들어간다는 게 언뜻 낯설었지만 당시에 그만한 월급을 받는 다른 일자리가 없었다.
88 광물을 캐는 중요한 노동의 최전선인 #막장 은 갱도의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암석을 부수며 직접적으로 채굴이 어루어지는 장소라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막장은 언제나 갱도의 끝이며 채굴의 시작점이다.채굴의 최전선인 막장은 중요한 장소이며 그만큼 위험한 장소다.
90 생산직 광산노동자들은 대부분 8시간씩 하루 3교대로 일한다 ‘1번,2번,3번’ 혹은 ‘갑방,을방,병방’이라 부른다. 그래서 광산 노동자와 가족들은 “오늘 갑방이야?“하는 식으로 출근 시간을 묻곤 한다. 갑방은 오전 8시, 을방은 오후 4시, 병방은 밤 12시 출근이다. 노동자들은 1주일씩 근무 시간을 바꿔가며 일한다. 광산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광물을 캐내는 노동이 돌아가는 곳이다. 해가 뜨고 지는 것과 무관하게 컴컴한 땅속에서는 쉬지 않고 채굴노동이 이어진다.
5장 진짜 일을 구할 때까지만
97 아버지는 얼굴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행방불명이 가족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위치에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알기 전에는 몰랐던 연좌제를 알게 되었다. 잠시 가졌던 희망은 두려움과 억울함을 넘어 분로로 바뀌었다. “그때는 연좌제가 무서웠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네 아버지가 이제 연좌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거야. 그때부터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6장 연좌제, 비국민 만들기
“다 지켜보고 있어”
미아리고개
103 서울이 육군에게 수복된 후 다시 북으로 쫓겨가던 인민군은 수많은 남한 사람을 끌고 갔고 할아버지도 그 때 끌려갔다. 많은 사람이 미아리고개에서 인민군에게 처형되거나 북으로 납북되었다 (…) 갑작스럽게 할아버지와 생이별한 할머니는 미아리고개에서 수많은 시신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1956년 발표된 가요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이러한 역사적 비극을 담은 노래다.
제 아버지를 사망자로 만들기
비국민 희생자 서사
연좌제는 비시민화시키기이다. 국가와 정부는 권력 유지를 위해 비국민을 꾸준히 발명해낸다. 중산층 지식인 남성의 위치는 가장 안정적인 시민이다. 한편 노동계층과 여성은 원래 비시민이기에 이들의 시민되기 탈락에는 극적인 요소가 없다. 농부가 농부로 살아가고, 노동계층이 노동자로 살아가고, 여성이 여성으로 살아갈 뿐이다. 탈락된 자들은 원래 자리가 없었기에 그들의 고통과 상실은 사회문제가 되지 못했다
7장 노조로 향하기
노조에 미쳐서
“그때는 다 어용”
삼겹살과 5 ·17
정화조치
127 기존의 산업별 노조를 기업별 노조로 만들면서 노조는 각 기업 안에 고립되고 연대가 약화되었다. 정화조치는 정부(전두환) 주도의 노조 파괴 정책이었다. 노동자들은 연행되고, 구속되고, 심지어는 삼청교육대로 보내졌다. 정화조치란 말 그대로 노동운동이라는 ‘불순한 것’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곧 권력의 입장에서 불순해 보이는 노동운동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전두환이 이처럼 노조 파괴에 열을 올렸던 이유는 앞서 4월에 사북에서 벌어진 사북항쟁과도 관련 있다. 아버지의 말 속에 “사북 사태 나고"가 나오는 이유도 5.17조치가 그 흐름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979년 12월 12 군사반란과 1980년 5월 광주항쟁 사이에 4월 사북항쟁이 있었다. 광주항쟁이 ‘광주사태’로 불렸듯이 사북항쟁도 오랜 세월 ‘사북사태’였다. 당시 언론은 “유혈난동”,“광부들의 집단 난동"이라는 제목으로 광부와 시민들의 항거를 폭동으로 알렸다. 사북 시민들은 폭도가 되었다.
#사북항쟁 은 #1980년 4월 21일에서 24일까지 나흘간 벌어진 광산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무력시위이다. 노동자들이 어용 노조 지부장 사퇴를 요구했으나 회사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았고 공권력이 개입되도록 만들면서 상황이 폭력적으로 전개되었다.
노조에 자리하기
8장 여자들의 부업
인형 옷 만들기
구멍가게
뜨개질
9장 폭력과 배신, 억울함
“서러워 마라”
출장
1987년
10장 속초항
철광석이 떠나는 항구
155 전쟁이 지속되면서 일본은 수탈 규모를 더 키우기 위해 군산기지가 있는 원산항을 이용해 철광석을 가져갔다. 양양에서 원산까지 이동하기 위해 양양역과 속초역을 신설했다.
155 일제강점기에 속초역을 통해 빼앗긴 것은 자원만이 아니다. 사람도 이곳을 통해 강제로 끌려갔다.
철광석을 나르는 트럭
157 속초는 어머니의 고향이다…. 어머니는 평안도 사람들이 시뻘건 음식을 안 좋아했다며 지금도 맑은 물김치에 밥을 말아 먹기를 좋아하고 평안도 사람들이 ‘박치기’ 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고 기억한다. 고향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정서적 친밀감에 따라 발명된다.
감시
11장 양양을 떠나기
“광산과 노조에서 너희를 분리시키려고”
“여기서는 말조심해야 해”
174 양양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전쟁이 휴전되는 1953년까지 여러 차례 통치 주체가 바뀐 곳이다. 1945년 38선을 기준으로 미군정과 소련이 한반도를 부할 통치하게 되면서 양양 북부는 소련이, 남부는 미군이 통치하게 된다. 그러다 1948년 북한 정권이 수립되자 양양 북부는 북한에. 남부는 남한에 속하게 된다. 광산이 있었던 장승리는 북한이었다. 지금은 서핑 장소로 유명한 잔교 해수욕장이 있는 양양 잔교리에는 38평화휴양마을이 있다. 과거의 분단으로 인한 단절과 상처를 역사적으로 남기기 위해 ‘평화마을’이라 이름 붙였지만 끔찍한 시간이 지나간 마을이다. 같은마을에서 하루아침에 이웃은 물론이고 친척까지 남과 북으로 갈렸다. 심지어 한 집에서 방은 이남이 되고 부억은 이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강릉과 양양 사이에 있는 38선 휴게소에 적힌 설명처럼 분단은 “12개의 강과 75개 이상의 셋강을 단절시켰고 181개의 작은 우마차로, 104개의 지방도로, 15개의 전천후 도로, 8개의 상급고속도로,6개의 남북간 철로를 단절"시켰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이 경계가 무너지고 1953년 양양 전계가 남한으로 수복된다. 그러나 수복 후에도 한동안 미군정의 지배를 받다가 1954년 11월에야 남한으로 완전히 이양되었다.
175 양양뿐 아니라 철원, 고성, 속초, 인제 등 수복지역은 10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여러 주체가 지역을 통치했던 곳이다. 이들 지역에선느 이웃이나 친인척 간에도 서로를 의심하고 고발하고 숨고 숨기는 일이 허다했다.
177 양양이 수복지역으로서 겪은 역사는 지역민들의 문화와 의식에 중요한 역향을 끼쳤다. 의심하고 의심받는 관계 속에서 지역민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인민군이 왔을 때는 반동분자로 몰린 사람들이 총살당했고 국군이 왔을 때는 빨갱이로 몰려 총살 당했다.
177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쪽에 맞추고 저쪽에 맞춰야 했다.
양양하와이
당시에는 하와이는 이국적인 장소의 대명사처럼 알려졌던 곳…양양하와이는 과거에 지역에서 양양 사람들을 비하하던 표현이었다.
대물림의 고리를 끊기
183 다른 수단이 없는 노동계층의 자녀로 성장하는 사람들은 광산을 떠나 대도시에 가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높다. 타지에서 고생하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오곤 한다.
184
노동자의 자녀들은 자녀만큼은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바램을 저버리고, 도시의 공장 노동자가 되거나 2대 광부로의 길을 가게 된다. 태백지역 고교생의 대학 진학율은 지극히 낮다
- 안재성 < 타오르는 광산> -
12장 하숙촌
라스베가스의 여자들
“내 밥 먹은 애들”
13장 들불처럼 번지는 노동자대투쟁
그때 분위기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나”
첫 민주 노조 위원장
14장 언니들
미스 혹은 양
“말은 안 하지만 다 보고 있었지”
15장 밥상의 민주화
점심을 달라
도시락 노동
돼지고기
광부 밥상이라는 소재
16장 땅속의 시간과 공간의 정치
“우리는 언제 해를 보냐!”
247 햇빛을 볼 시간을 갖기 위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서 노동자들이 꾸준히 빼앗겨온 것은 그들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확인 한다. 노동자들의 시간은 자본의 시간으로 이전되어왔다. 시간은 돈이다.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그랬다. (노동자의)시가은 (사용자의) 돈이다. 자본은 노동자의 시간을 지배한다. 노동자들은 시간은 권력이 소유한 재화나 다름없다.
값싼 수입 철
수입 철광석이 값이 저렴해지고, 신규로 생산되는 탄광이 생산원가가 높다 - 오래된 탄광,철광은 더 깊이 들어가야 해서 원가가 높아진다.
250 국내 철강산업이 발전할수록 정작 철광산은 수입산에 밀려 사양산업이 되어갔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산업기지가 건설될수록 광산촌은 쇠락의 길로 향했다.
석탄산업합리화
251 1989년부터 시행한 ‘석탄산업합리화’란 공식적으로 말하면 ‘비경제탄광을 폐광하고 경제성 있는 탄광을 건전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정책이다 ‘비경제탄광’과 ‘경제성 있는 탄광’이라는 구별로 폐광이 결정될 때 이 ‘경제’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광산 회사의 ‘경제이지’ 광업소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경제’는 고려되지 않았다.
251 석탄산업합리화 여파로 탄광촌인 강원도의 태백시, 삼석시,정선군, 영월군 등은 인구가 급감했고, 광산 마을에는 폐교와 폐가가 늘어났다.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경제성, 합리화, 건전성 등의 언어로 포장된 정책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경제적이며 합리적이고 건전한 방향일지 모르나 개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붕괴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합리화’는 노동자들의 언어가 아니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라는 이름은 어떤 문제도 지시하지 않는다. 직장을 잃은 광부에게, 그의 가족들에게, 이들이 거주하던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합리화’는 어떤한 부적적 의미도 드러내지 않는다.
252 탄광이 문을닫기 시작한 1989년 이후부터 꾸준히 ‘합리화’의 ‘된바람’을 맞은 광산노동자들의 분노,억울함,절규가 시가 되었다. ….국가 정책에 따라 한때는 ‘산업역군’이라 불리던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합리화를 위해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되었다
253 일자리의 탄생과 소멸은 자연현상이기보다 사회변화에 따른 정책과 문화의 영향이다. 광업은 자연에서 광물을 캐는 일이지만 이 광물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문명이다. 석탄으로 일으킨 산업혁명이지만 그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고, 이제 인류는 오늘날 지속 가능한 세계를 위해 석탄 사용을 줄이기로 했다. 다시 말해 광물의 쓸모는 문명의 과정에서 언제든지 가치가 달라진다.
17장 광산이 닫히다
소문과 희망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났지”
“이제 다 같이 전사하는 거야”
267 1994년에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해고되었고 양양광업소는 1995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광산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던 1960년대 중반 양양의 인구는 5만 명을 넘어섰으나, 양양광업소가 문을 닫은 1995년에는 2만 8,000여명으로 급감했으며 현재까지 양양 인구는 이와 비슷하다.
“부인들이 다 나와 있었지”
광부들은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찍히기가 두려웠고, 잡힐 것이 두려웠다. 광부들의 아내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광부들의 아내는 스스로가 먼저 도로위에 누웠고, 누구보다 먼저 남편들의 분노를 대신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2부 광산 이후의 삶
1장 직업을 바꾸며
실직
차를 닦다
주택관리사
어머니의 밥, 밥, 밥……
2장 스스로 위로하기
나만 겪는 일이 아니야
서울 사람 되기
“우리는 공동체를 생각해”
일상의 싸움
301 우리 집에 두 배로 책정된 보상금을 부모님이 거부했다. …서류 만드는 일은 아버지 혼자 다 했따. 낮에 돌아다니는 일은 어머니가 했다. 우리집이 보상금을 더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걸 왜 거절하냐고 난리를 쳤다. 그때 아버지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이런 싸움을 할 때 명심해야 할 게 있어. 절대로 내가 앞서 싸웠다고 더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마. 그게 바로 저 회사가 원하는 거야. 그렇게 해야 내가 자기들 말을 들으니까. 저들은 계속 돈으로 회유하려고 한다고. 절대로 그러면 안 돼. 그리고, 참여하지 않은 주민들 미워하지 마. 어딜 가나 다들 그래. 우리끼리 미워해서 분열되는 게 저 회사가 원하는 거야. 미워하지마.
몇 푼 되지도 않는 보상금 던져주고 입을 막자는 술책을 그제야 인식했다.
나의 쓸모를 증명하기
305 아버지는 일흔을 넘기면서 이런 말을 종종 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나는 이 집에서 지금 당장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더 라고 내가 없어진다는 게 정말 이 집에서 더 이상 아무 문제도 만들지 않아. 그런데 네 엄마는 아니야. 지금 우리 집에 니 엄마가 없어지 잖아, 그럼 다 마비야. 엄마가 없으면 큰일이더라고.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쓸모가 없어.” 어머니는 아들네집 돌봄노동에 참여했기 때문 이다. 집 밖에서 임금노동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쓸모없음’을 느꼈고, 그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집 밖의 일을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이제 한 달에 29만 원을 받는 노인일자리에 의존한다. 집 밖에서 쓸모를 다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노인 일자리는 ‘일하러 밖으로 나간다’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한 달에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국민연금이나 노령연금 외에 수입이 전무하고 재산도 없는 노인들에게 노인일자리는 꽤 인기다. 어느 날 집 앞에서 아버지는 우연히 옛날 양양광업소 동료와 마주쳤다. 그는 폐지 줍는 일을 했다.
서 있는 자리가 변하면
307 이념이 현실과 약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는 이념을 외치지만 정작 이념이 현실에 적용되려고 하면 한 발짝 물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라 주장하는 얼굴을 본다. 그렇게 한때의 급진적 인물들은 보수화되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대사를 읊는다.
투쟁이 세대를 거듭하며 뒤에 오는 세대의 방식을 앞선 세대가 불편해하곤 한다. 아버지는 서서히 전보 정치를 비판했다. 더 좋은 방향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입장에서 비판했다.
3부 주검 위에 쌓은 문명
1장 광물은 캐도 시신은 캐지 않기
노동자의 주검
311
- 1897년 9월 10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파업을 벌이는 비무장 광산노 동자들을 치안대가 살해했다. 19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부상당했다 대부분 이주노동자였다. 살인자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학살을 계기로 대부분 이주노동자였던 광산노동자들이 미국광산노동 자연합United Mine Workers of America, UMWA에 많이 가입했다.
- 1906년 3월 10일 프랑스에서 ‘쿠리에르 광산 대참사Catastrophe de Courrieres’라 불리는 20세기 최악의 광산 사고가 발생했다. 석탄 분진이 폭발하여 1,06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 1907년 12월 21일 칠레에서 최악의 파업 노동자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파업 중이던 광부와 어린 자녀를 포함한 가족 등 2,000여 명을 군인들이 살해했다.
- 1914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 광산노동자 1만 2,000명이 록펠러가 소유한 제철 사를 상대로 파업을 벌였다, 록펠러는 노동자와 가족들을 사택에서 쫓아냈고 노동자들은 천막 생활을 시작했다.군대가 동원되어 천막을 기관총으로 공격해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들 66명이 사망했다(러들로 학살 사건),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 1921년 8원 25일 광부 1만 명이 군인들과 전투를 벌였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최대 규 문의 무장 투쟁이었다. 노동자와 지지자들이 살해되었다(불레어산 전투)
- 2012년 8원 16일 남아공에서 영국의 백금 회사 론민Lonmin이 운영하는 광산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34명이 살해되었고 78명이 다쳤다.아파르 트헤이트가 페지된 이후 남아공에서 벌어진 최악의 경찰 폭력이다
- 2012년 12원 18일 시에라리온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노동조건 개선 과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광부들이 파업을 벌였으나 군대에 의해 2명이 살해되었다.
- 2024년 9월 22일 이란 탄광 메탄가스 폭발로 51명 이 사망했다. 문명은 노동자들의 주검 위에 세워졌다. 광산은 위험한 노동 현장 중에서도 죽음과 가까운 일터이며 장소의 특정상 시신 수습이 쉽지 않다.
313 “소장은 시체를 물을 경우와 캐낼 경 우. 그 소요되는 경비를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하는데 그나마 노조의 압력으로 갈등이라도 한다. “그까짓 시체 하나 캐낼려고 소나기처럼 몰리는 대도시의 연료 구입비를 딴 탄광촌으로 뺏길” 생각을 하면 “정말 그 자본의 손실은 졸지에 자식을 잃어버린 것만큼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었다”. 광물을 캐면 돈을 벌지만 사람을 캐면 돈이 들어간다. 끝내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광물을 캐다가 목숨을 잃지만 그 노동자들의 시신은 제대로 구조되지 못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 ‘마이너miner’는 캐는 사람이건만 그들은 묻힌다.
314 양양 장승리 부근에는 쉰패랭이골이라 불렸던 마을이 있다. 점차 잊히는 마을 이름에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쉰패랭이골은 장승리의 탑동이라고도 불리는 골짜기 이름인데, 조선시대에 사람 쉰 명이 철광석을 캐러 굴 안에 들어갔다가 굴이 무너지는 바람에 모두 사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때 그들이 굴 밖에 벗어놓고 간 패랭이 모자가 쉰 개 정도 되었다고 해서 쉰패랭이골이라 이름 붙었다. 일제에 의해 본격적으로 광산이 개발되기 전에도 이 지역에 철광석을 캐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쉰패랭이라는 지명은 그런데 양양에만 있지 않다. 광맥이 발달한 영월과 봉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물을 캐는 갱안에는 광물만 있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묻혀 있다.
증산보국增産保國
“이미 다 죽어서”
조력자 아내, 금기의 대상인 여성
325
‘광부인 남편은 막장에서 탄을 캐고 아내는 어려운 생활여건을 헤치고 자녀교육, 남편 뒷바라지로 고달프다. 그들의 얘기를 들 으면서 우리는 깨달았다. 그네들은 소망을 캐고 있음을 (후략)…
기독교광산지역사회개발복지회, <소망을 캐는 여인들>, <막장의 빛> 여름호, 1985년 6월1일.
327 여성에 대한 성적 우월감으로 남성에게 자부심을 주는 구조는 계층을 막론하고 이 사회에 뿌리가 깊다.
귀신이 되어
생환이 주는 감동
위령제, 죽음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기
죽음과 동료애, “언제 사망할지 모르니까”
344 노동자의 이동은 꾸준히 한 사회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오가며 보이지 않게 문명사회를 받쳐 든다. 노동계층의 이주는 특정 산업에 의지하는 구조이다. 서비스직이 아닌 축산업,어업,농업,건설업 등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현지인의 일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2장 노동의 몸
기침과 위장병
보람에 산다
우리는 산업폐기물이 아니다
3장 광산문학에서의 재해
분노의 도화선이 되는 사고
개항 이후 본격적인 광산 개발로 근대문학에서 광산이나 광산 노동자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식민지 조선은 1939년 세계에서 여섯 번째 산금국이었다. 땅에서 소외된 농민이 땅을 파며 살아남으려 한다.
〈인두지주〉: 비인간으로서의 노동자, 몸과 말
364 자본주의와 함께 이주노동자는 늘어났다. 언어를 갖추지 못할 수록 위험하고 더러운 저임금 노동 현장으로 향한다. 창오가 일본에서 광산에 가게 된 것은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였기 때문이 다. 오늘날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한국어 능력 시험 점수에 따라 취업하는 분야가 나뉜다.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들의 혀를 자르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는 지시를 알아들어야 하지만 목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탈출을 위한 말은 미처 배우지 못한 채 업무에 투입된다.
혀가 없는 인간
4부 목소리들, 들을 수 있을 때 듣기
1장 이중기, 1943년생: “죽어도 여기서 죽지”
“보청기 빼면 아무것도 못 들어”
전쟁의 기억들
광업소 훈련생
“다들 그렇게 어렵지”
양양을 떠나지 않기
“그냥 아내라고 해주세요”
2장 이인수, 1952년생: 광업은 내게 하늘이 준 직업
48년의 광업 인생
백운석 광산
채굴노동자에서 현장을 관리하는 소장으로
광산은 하늘이 준 직업
403
…나는 잡초 같지. 여기서 한 우물 파면서 짧은 지식이지만 내가 배웠던 걸 현장에 접목시켰어. 첫째 안전이지. 그다음 생산. 그리고 중요한 게 종업원들 화합이잖아. 그게 화합이 잘 안 이루어지면 안전사고도 많이 생기고 생산도 잘 안나오고 그래. 경험해보니. 사람을 데리고 일을해야 되잔아. 개성을 잘 파악해가지고, 채찍질도 하지만 격려가 더 많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힘든 일을 하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그는 여전히 옛 동지들을 그리워했다.
“노동자의 노 자도 싹 잊었어”
다슬기국을 먹으며
‘인수 아줌마’ 김주영, 1957년생
3장 김기영, 1947년생: “고한의 산증인이죠”
라미란은 어떻게 고한 금융권에서 날렸을까
“고한의 산증인이죠”
“노가다 일을 엄청 했죠”
“하필이면 이 광산촌 골짜기에”
“강원랜드가 내 인생에서 최고 황금기”
“가끔 교실에서 공부하는 꿈을 꿨었어요”
“출세하면 고향에 가지 말라 그랬어”
“지금은 터를 잘 잡았다 생각하지”
900항 앞에서
4장 김신애, 1984년생: “광부의 딸, 나를 찾아 돌아왔다”
귀향의 엘리트적 서사
물닭갈비를 먹으며
탈출하고 귀환하기, “나를 찾아서 돌아왔다”
정신적 유전
보이지 않는 문턱
“광산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요”
강원랜드 이후
5장 그리고 광부댁들: 빨래터 수다를 증언과 연대의 목소리로
“정선아리랑 다 할 줄 알아요”
서울의 봄과 탄광촌의 봄
전국의 모든 광부댁
고통의 연대, 기억의 연결, 이산이 연대가 될 때
우리 이야기
6장 지금. 여기의 광산
“요즘은 안전점검 나오는 사람들도 여자야”
마늘과 석회석
생산 원가의 구조
“광산에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람이 광산을 기피하죠”
스마트마인? 무전이 중요해!
인식 개선의 필요
어둠이 아니라 암흑
산초 두부를 먹으며
5부 ‘없어질 직업’의 사람들
1장 노동이동
2장 “어차피 없어질 직업”
사라지지 않는다
517 사양산업이기에 노동자들에게 같은 직종으로의 이직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폐광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야 했다. 광산은 닫혀도 삶은 지속된다. 보이지 않는 직업, 더욱 보이지 않는 노동자. 이들은 원래 보이지 않았기에 이들이 일하던 장소의 사라짐도 보이지 않는다. 광산이 있다는 것도 몰랐던 사람들에게 광산이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런 상실도 안기지 않는다. 단지 보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무관심 속에서 직장을 잃을 뿐이다.
519 자원이 되어버린 인간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다만 소모될 뿐이다. ‘안전보다 생산’,‘제철보국’,‘증산보국’ 자원이었던 사람이 몸담은 세계가 사양산업이 되면 사람은 폐기처분해야 할 귀찮은 골칫덩어리, 산업의 짐, 곧 산업폐기물이 된다. 광산노동자는 대표적인 산업폐기물이 되었다. 돌이 돈이 되는 동안 사람은 돌처럼 내팽개쳐졌다.
막장, 노동의 장소가 윤리적 비난의 언어로
3장 닫히는 광산, 열리는 광산
정동진, ‘성공적으로’ 사라지다
광명, 황금 동굴이 되다
동해, 거대한 테마파크가 된 노천 광산
철암, 남겨야 하나, 부숴야 하나
보령, 꽃 피는 탄광마을
정선, 기억은 문화가 되어
문경, 생태를 화두로
도계, 반복되는 폐광 투쟁
철강왕을 만들어낸 붉은 땅
채굴은 멈추지 않는다
558 기후위기에 대응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그에 따라 광산들이 폐쇄된느 절차는 응당 필요한 절차로 보인다. 그런데 기후와 환경을 위해 어떤 국가의 광산은 닫히지만 어떤 국가의 광산은 활발하게 열린다. 친환경을 위해 각광받는 광물이 생겨나고 중국이나 아프리카에서 희토류나 리튬 광산을 열심히 개발 중이다. “아프리카 자원부국과 핵심 광물 협력 모색”,“중, 리툼 등 핵심 광물 이미 장악, 일은 아프리카에 42조 투자”…독일과 영국 등에서 ‘마지막 광선 폐쇄’ 소식을 전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남미와 아프르카에서는 북반구의 많은 나라들이 앞다투어 광산에 투자하며 자원을 확보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 철광석의 99퍼센트는 수입산이다.
559 막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을 뿐이다.
560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질과 문명에는 보이지 않는 인간들의 피와 땀이 스며들어 있다. 붉고 검은 흙이 정말 인간의 피로 보인다. 광물 탐사 인공지능의 활용도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감정이 없어 파업하지 않는 인공지능은 어쩌면 완벽한 노동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 훈련에는 상당한 양의 전기와 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소비하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무리 첨단을 말해도 핵심 광물을 채굴하는 노동은 여전히 인간의 손을 떠나지 못했다.
4장 함께 가지 못하는 정치
563 사회의 많은 고통들이 연결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방치된 고통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개인의 고통은 정치적이고 제도적으로 발생하지만 무책임한 정치는 이 사회적 고통의 결과를 사적으로 감당하도록 방치한다.
564 고통을 개별적으로 지닌 채 고립되어 살아온 이들은 자신들의 희생과 고통이 소외되는 데 비해 다른 희생자들만 주목을 받는다고 여겨 억울한 감정을 느낀다.
566 모든 사람이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살 수는 없지만, 같은 시대를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차별이 심할수록 다른 계층 사이에서 ‘동시대인’의 감각이 형성되기 어렵다. 빈부격차는 이처럼 시대격차를 생산한다. 사회적 위계에 따라 시간은 차등적으로 부여되며 또한 서울과 지역 간에는 다른 시대가 형성된다. 노동자들을 비롯해 사회적 소수자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에 광산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평범한 사 람들도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정치는 노동자들을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에 살도록 적극적으로 방치함으로써 문화적으로 밀어낸다. 이처럼 정치가 모든 사람의 시간을 동등하게 대우 하지 않음으로써 구조적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강화한다. 시간적 불평등은 기본적인 인권 침해 중 하나다.
567 없어질 직업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방치함으로써 사실상 사회구조적으로 보이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5장 부고들: 다들 일찍 죽었어
6장 살아가는 사람들
나오며 다시 장승리에서
593 목소리 내지 않았던 적이 없으나 꾸준히 그들의 목소리는 철거되었다. 굵직한 역사 속에서 가지치기 된 잔가지 같은 이야기들을 함부로 버리고 싶지 않다.
593 사라지는 사람들, 사라지는 직업들, 최종적으로는 사라지는 세계들. 그러나 광업은 사라지는 세계가 아니다. 점점 보이지 않는 세계일 뿐이다. 우리 생활에 배터리는 점점 늘어났다. 땅속의 광물은 여전히 인간에게 많이 사용된다. 자본주의는 채굴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또한 광산이 없어져도 또 다른 막장이 만들어진다. “철 든 동네 였지만 철 없어진 지 오래인 장승리"에서 여전히 채굴의 소리가 들린다.
이 책을 쓰기까지 아래로부터, 변두리에서, 경계선의 역사
현재 대한민국에 300여 개의 광산이 가행 중이다. 2022년 기준 가행 광산은 328개이다.
‘폐광’이라는 간단한 어휘 속에 담을 수 없는 노동자들의 삶의 시간과 두께가 있다. 🧏 이것이 독서의 가장 매력적인 함의 같다.
621 약자성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약자성을 경쟁하면 고립되지만 연대하면 끝없이 연결되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익명 속에서 그렇게 계속 쓰여지는 중이다.
감사의 글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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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Rambling
- 탄광,철광에서 생계를 이루던 사람들.
- 해외수입산이 저렴해지고, 중화학공업으로 나라 경제 축이 이동됨
- 그것에 직접적 피해를 받는다.
- 노동자들은 더 열학한 노동 현장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다.
- 국가의 정책이 결정되거나 산업의 흐름이 바뀔때, 그 속에서 삶을 바친 노동자들의 재취업, 직업전환에 대한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 그들이 산업의 흐름을 보고서 미래를 준비할 시간적, 마음적, 유체적 여유가 없다.
- AI시대에 생각해볼 역사적 사건, 우리나라의 사례이다.